- 소설

휘연
- 작성일
- 2020.7.20
위대한 개츠비
- 글쓴이
-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민음사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다. 정확히는 몰라도 제목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테고, 책이
아니라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소설 책을 보진
않고, 디카프리오가 나와서 영화만 봤던 기억이 있다. 영화를
보고는 그저 사랑에 미친 불법을 일삼는 사람이 결국 살해 당하는 이야기로만 여겼다. 역시 고전책은 책으로
봐야 한다. 영화가 많은 영상면에서도, 스토리 면에서도 좋은
장점을 보여주긴 하지만, 한 줄 한 줄 살아있는 묘사를 따라갈 수 없다. 작가가 의도하는 내밀한 내용을 영화에 스며들게 하긴 어렵다. 나
또한 디카프리오 얼굴만 보다가 그저 사랑놀음이구나 쉽게 치부하곤 책에는 영 손이 가지 않았다.
일고십 도서로 만나 발제할 거리를 고민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짚을
게 많아서 힘들었다. 이 얇은 책에, 줄 긋게 되는 문장들도
곱씹어 생각해보니 내용이 확장되는 부분들도 많았다. 게다가 작품 해설을 읽으며 더 큰 범위, 사회적 관점에서 미국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생각해 볼 점도 많아서 흥미로웠다.
시대적 관점과 지역적 관점은 아직 좁은 곳에 살고 있는 내게 생각의 확장을 이끄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특히 요즘 <총균쇠> 재독과 함께
<지리의 힘>을 읽고 있어서 지역으로 인해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들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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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과 나는 모두 서부
출신이었고, 어쩌면 우리는 왠지 동부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어떤 결함을 공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47)
그저 이야기를 통해서나 타인의 입을 빌어서 알게 되는 지식이다
보니 워낙 얕고 불완전한 느낌이라 어설프게 알고 있는 기분이지만, 미국 동부 특유의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지역인 느낌. 작 중 인물들도 그 곳에서 적응하고 싶었으나 결국 후퇴하게 된다. 개인적인 사유든, 사회적인 사유든.
나중에 좀 더 구체적으로 알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단순히 사랑으로 치부하기엔 무서운 관계다. 개츠비와 데이지는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엔 어딘가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 그들의 사랑 놀음은 뭔가 은밀하며 깊고 깊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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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은밀한 고백, 아니면 적어도 그런
고백을 하면서 사용하는 표현이란 흔히 남의 말을 표절한 경우가 많고, 그것을 억지로 숨기려고 하다 보니
대개 흠이 나있게 마련이다. 판단을 유보하면 무한한 희망을 갖게 된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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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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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졋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 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172)
그 당시 미국 사람들이 노래한 사랑은 그저 흔해빠진 클리쉐의 반복이었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들여다보려고 하니, 지속적으로 흠이 나기 시작했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완성점으로 여겼고,
데이지는 사랑도 좋지만, 돈이 우선이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했다. 그랬기에 그들이 뒤에 끌고 오는 것이
악취를 풍기는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앞 모습만 보며 함께 하고자 재촉하고, 졸랐다. 그들의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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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술에 닿자 그녀는 그를 위해 한 송이 꽃처럼 활짝 피어났고, 비로소 화신이 완성되었다.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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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 그녀는 눈에 띄게 내키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중략) “우리 둘만 있게 되더라도 난 톰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비참한 목소리로 인정했다. (188-189)
데이지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성공했다는, 동부에서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여신에게 간택받은 것처럼 그녀가 자신을 선택한다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 된다고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정신나간 사랑이라고 부를지언정 그는 맹목적으로 그 사랑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제 그녀는 여신은커녕 돈의 노예였으며,
그가 그리는 순수하고 지속적인 완벽한 사랑을 줄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게 그들에겐 사랑이었을까?
이미 뷰캐넌 부부에게는 사랑이 없다. 비록 닉과 함께했던 시간에 있었던 문제들은 적당히 얼버무려 졌을지 몰라도, 뷰캐넌
부부가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될 순 없었을 거다. 그들은 당장 눈 앞에 놓인 욕망에 휘둘렸고, 당장 즐기며 살기에
급급했다. 이렇게 안타깝게 죽은 개츠비가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이후에 더러운 꼴을 보지 않아도 되고, 데이지의 배신을 더 깊이 깨닫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어쩌면 그걸 배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황에 자신이 놓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보다는.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제이
개츠비를 보며 우주가 온 힘을 다해 도와준다는 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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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아일랜드 웨스트에그의 제이 개츠비는 스스로 만들어 낸 이상적인 모습에서 솟아 나온 인물이었다. (중략) 거대하고 세속적이며 겉만 번지르르한 아름다움을 섬기는 일을
떠맡아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열일곱 살의 청년이 만들어 낼 법한 제이 개츠비 같은 인물을 만들어 낸
뒤 이 이미지에 끝까지 충실했던 것이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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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남다르게 받은 적절한 교육뿐이었다.
제이 개츠비의 모호한 윤곽이 비로소 구체적인 한 인간의 실체로 채워졌던 것이다. (146)
비록 돈은 전혀 상속 받지 못했지만, 그 보다 더 귀한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개츠비. 그 계층의 삶의 방식을 알았고,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기에 불법적인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자신은 그저 부자가
되어 데이지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소원을 우주에게 빌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방법을 써도 된다고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열망하는 바가 무척 컸기에, 그 초점인
‘데이지’를 얻기 위한 이상향을 만들어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아닌가 모르겠다. 비록 손이 더러워져 정작 잡을 순 없었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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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그 옛날의 따뜻한 세계를 상실했다고, 단 하나의 꿈을 품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느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장미꽃이란 얼마나 기괴한 것인지, 또 거의 가꾸지 않은 잔디
위에 쏟아지는 햇살이 얼마나 생경한지 깨달으면서, 무시무시한 나뭇잎 사이로 낯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틀림없이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227)
정직함이라는
요소가 지속적으로 대두된다. 닉은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 여기고, 서부
사람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이미 서부와 동부 사람들이 나뉘어져 있고, 그 관계에는 정직의 유무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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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기본 덕목 중 적어도 한 가지는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에게도
그러한 덕목이 있다. 즉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정직한 사람 중 하나이다.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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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의한 운전자는 또 다른 부주의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지요? 그래요, 나는 또 다른 서툰 운전자를 만났던 거예요. 안 그런가요? 내 말은요, 그렇게
잘못 추측을 하다니 나도 참 부주의했지요. 난 당신이 오히려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당신의 은밀한 자부심이라고요. (249)
닉은 조던과 만남을 지속하면서 점점 잊게 되었지만, 초반에는 그녀가
부정직하다는 걸 은연중에 꺼려했다. 어쩌다 시간이 흐르며 자신도 모르게 조던과 만남을 지속하게 되었지만, 결국은 그만둔다. 이는 닉이 동부의 환상에 젖어 들었다가 자신도
모르게 정직함이라는 덕목을 잊었고, 결국은 서부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면 자신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건
아닐까 싶다. 이 작품 안에서 그 누구도 정직한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정직하지 않았고, 정직한 사람마저 뒤흔들어 놓았다. 다행히
다시 자신을 찾고 애초에 중요시하던 가치로 돌아온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동부의 그 화려함은 결국 정직함을 버려야만 가능했던 걸까? 닉이
바라던 그런 동부의 화려함은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정직함에선 불가능했던 걸까? 어려운 인과관계다. 애초에 인과관계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자의
개츠비는 어떤 인물일까? 저자는 어떤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개츠비를
정말 위대하다고 해도 될까? 반어법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나마 가장 순수한 인물은 개츠비밖에 없구나 싶은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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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별로 문제 될
것은 없다 ?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날 아침에…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253-254)
마지막 문단은 개츠비와 같이 우리도 결국은 별을 보며 지속적으로 앞으로 가리라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놓여 있어도, 스쳐 지나갈 것이고, 우리를 방해하더라도 우리는 결국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개츠비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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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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