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에세이

청현밍구
- 작성일
- 2020.7.27
오늘도 쾌변
- 글쓴이
- 박준형 저
웅진지식하우스
사실 고백하건대 이 책을 이름이 비슷한 재심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님의 책인줄 알고 읽게 됐다. 저자한테 미안한 일이다.
나는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했고 많이 친하지는 않지만(친해질것을...후회하고 있다) 동기나 친구중에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판사, 변호사로 활동중인 친구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법조인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의 유쾌한 필치와 진짜 변호사의 속깊은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었다.
박준영 변호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내 또래의 진짜 살아가는 생계인으로 변호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서초동, '대한민국 법조 1번지'라는 말은 서초동에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기 때문이다. 말그대로 검찰과 법원의 최상급 기관이 있다.
또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법원이 있다. 사실 남부지방법원이 있는 것이 맞지 않냐 하는 생각이 있는데 중앙지방법원이 종로구, 중구, 강남구, 서초구, 관악구, 동작구 등 6개 구의 민형사 및 파산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종로, 중구, 강남, 서초 등 서울에 가장 많은 회사와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관할하는 곳이기에 1심 법원 중 꽃중의 꽃으로 불린다. 말 그대로 중앙검찰청, 중앙법원 아닌가!
저자는 대전 출신으로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다. 저자의 법무법인 소개글을 봤다. 이 책을 읽고나서 공식적인 소개글을 보니 좀 웃겼다. 책의 필치와 사무적인 글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저자도 먹고 살아야지, 맞다.
'법무법인 해Song 손해배상전문센터는 개별 의뢰인의 특수한 사정을 깊이 공감하고 최적의 해결책만 제시해 드릴 것입니다. 당신이 보여준 신뢰가 헛되지 않도록 능동적인 서비스, 찾아가는 서비스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안되는 걸 되게 해주는 게 변호사 아닌가요?' 라는 무리한 명령(?)에 네, 아닌데요 라고 속으로 소리쳤던 그 필치와 다르다. 가인 김병로 선생이 변호사로 부활하셔도, 또 변호사로 안되는 걸 되게 해줄 수 있었다면 진작 만수르 뺨치게 됐을 것이라는 그말을 하던 사람과 달랐다.
많은 사람이 재판을 통해 자신이 믿는 ‘진실’이 아주 쉽게 그리고 당연히 밝혀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든지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따위의 허무맹랑한 소리만 믿고 재판에 임하면 언제나, 반드시 패하며 그때까지 믿었던 진실은 순식간에 거짓으로 둔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공식적 소개글이 생동하게 다가왔다.
저자가 속한 법인은 소위 우리가 아는 김앤O, 율마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 그리고 충O, 바른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그런 메이저 법무법인은 아니다.
학사는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로스쿨 1기로 변호사가 됐다. 나 역시 이 로스쿨 1기 시절 로스쿨 진학과 취업을 놓고 고민했고, 친구나 후배들중에도 취업을 했다가 로스쿨 2기, 3기로 가서 지금 변호사가 된 친구나 후배도 있다.
바쁜 그들과 그들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대기업에서 전공과는 전혀 다른 마케팅을 하느라 또 결혼도 하고 애도 낳느라(아, 내가 낳은건 아니다) 바빠서 많이 만나지 못하기는 했다. 특히 최근 몇년간은.
그래서 저자의 글을 보며 변호사도 별거 없구나 하는 안도감도 얻었다가, 그래도 변호사는 때려치우고 딴데 갈데라도 있지 하는 부러움도 동시에 느끼면서 읽었다.
저자의 책에는 소위 내가 법학과를 진학하기 전 알던 폼나는 변호사는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건 많지 않다, 또는 어렵다는 것도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평범한 직장인인 그리고 대기업의 큰 조직속에서 언제 나가도 '그 친구 왜 안왔지?' 하거나 또는 곧바로 대체자를 찾을 수 있는 곳과는 다를 수도 있다. 특히 전문직은 나가도 다시 오라는데가 많으니까 말이다.
저자의 재미난 필치의 글을 보며, 진지하고 점잔만 빼는 변호사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며 적어도 돈 문제에 관해서는 진리에 가깝다. 이 바닥 생활을 하면서 원래 가족과도 같은 사이였다는 사람들이 계약 때문에 좀 더 까놓고 말하면 돈 때문에 원수만도 못한 사이가 되는 걸 숱하게 봤다. 한 때는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더니 이제는 미워서 죽고 못 살게 된 그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서로가 그냥 하는 말을 너무 쉽게 믿었던 것이다. ---p.43
순식간에 '딱히 한 것도 없으면서 '돈돈'거리는 변호사 놈'이 된 나는 제법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다소 울컥하기도 해서 사장의 생떼에 조목조목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장 사장은 "아유 그래도 저는 뭐 소송해가지고 돈 받은 건 하나도 없는데......" 라며 상처뿐인 승자 흉내를 냈다. 하지만 애초 장사장의 사건 목표는 똘이 엄마의 터무니 없는 청구를 기각시키는 것, 즉 더이상 주지 않아도 될 돈을 주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이지 똘이 엄마가 기왕에 받아먹은 돈까지 깡그리 토해내도록 하려던 게 아니다. ---p.77
이런 한탄 아닌 한탄도 많이 보게 된다.
2008년이었던 것 같다. 법조실무 과목을 들으면서 나는 당시 구 서울동부지방법원 참관을 가게 됐다. 일단 지금은 법원 건물이 이전했기에 시설도 좋고 뭔가 폼나 보이지만 그 때는 구의역과 강변역 사이에 허름하디 허름한 건물에 어두침친한 복도를 지나야 법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법정에서는 지금은 대학 교수가 되신 모 부장판사님이 온갖 잡범을 상대하며 얼마 안되는 돈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 등의 심리를 하고 있었다.
소위 법정 드라마에서 보던 드라마틱하고 멋진 변호사와 검사의 대결이 아닌, 지루한 공방과 판사님의 '그래서 말하는 요지가 뭔가요?' 같은 핀잔이 왔다갔다 하는 곳이었다.
나는 물론 공부를 많이 안하고, 또 못했지만 한편으로 보면 죽어라 공부해서 평생 만나는 사람이 이런 사적인 채무관계 또는 온갖 잡범이나 만나고 사는게 과연 좋은 삶일까 하는 회의를 가졌다.
아니면 앞의 저자처럼 안되는 일을 되게 만들어 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이나 만나야 했다. 적어도 법정 들락거리고, 변호사 찾아올 정도면 다 급하다. 절박하다.
결국은 그런 사람들 상대로 또 돈을 얻어내야 나도 먹고 살 수 있다.
지금 나는 소위 말하는 법조 물(水)을 먹는 것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날의 법정 분위기는 내 인생의 길을 바꾸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을 보며 또 어떤 사람은 변호사의 꿈을 꿀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지고 있던 변호사에 대한 로망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이런 진솔한 이야기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실과 현실, 즉 Fact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저자는 로펌의 구성원 변호사다. 변호사나 회계사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다. 영업도 뛰어야 하고 인맥관리도 많이 해야한다.
이런 로펌의 로펌 시스템에서는 특히 비용 분담이 아주 예민한 이슈다. 심한 경우 사무실 복사기에 들어가는 토너와 종잇값 분담을 놓고도 변호사끼리 크게 다퉈 법인이 깨지는 다소 어이없는 일까지 생긴다. 벌어들이는 수입도 변호사 각자의 능력에 따라 편차가 아주 크다. 어떤 이는 늘 돈 쌓을 곳을 못 찾아 억 소리를 내고 어떤 이는 늘 자기가 쓰는 방값 내는 것조차 힘겨워 악 소리를 낸다.
하지만 또 저자가 말했듯이 승진 걱정없는 직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직장도 승진의 체계가 깨져가고 있기는 하다.
2019년 변호사 수가 3만명을 돌파하며 늘어나는 수임 경쟁과 불황속에서 변호사가 파산 걱정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하지만 대형 로펌의 폼나는 변호사들의 삶은 또 다르다. 또한 그들은 많은 정보가 왔다갔다하는 곳에 있다.
어지간한 청춘보다 내가 더 아프지만 그렇다고 영 못 해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고, 크게 낭패 보는 일 없이 살아온 날들에 안도하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솔직담백, 유쾌재미발랄한 에세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걸로 족하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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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