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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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글쓴이
이주영 저
나비클럽
평균
별점8.8 (56)
지니

 

할말이 없다. 그는 매일 밤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읽느라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다른 것을 할 시간이라고는 전혀 없다. 이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덕분에 나는 매일 밤 산만하고, 매일 아침 정신이 나간다.     p.23

 

에두아르는 '그 일' 이외엔 대부분의 것들을 잊어버린다. 정신을 오직 '그 일'에만 쏟아 부으니, 일상의 모든 일들에 신경을 꺼놓고 있어 자주 뭔가를 잃어 버리고, 깜박하기 일쑤이다. 그가 만사를 제치고 늘 서둘러 해야 할 중요한 '그 일'은 바로 책을 읽는 일이다. 모두가 바람직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독서'라는 것. 하지만 책을 읽느라 다른 물건들은 챙길 겨를이 없어 뭐든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인, 심지어 취침시간까지 잊어버리고 책을 읽어대는 나사 빠진 남자와 결혼한 여자에겐, 이 모든 일이 결코 웃어 넘길 수 없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저자가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로마의 한 언어학교였다. 저자는 20대 도쿄, 30대 로마, 40대 파리를 떠돌며 온몸으로 글을 써왔는데, 지구 최강 오지랖 책벌레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고등학교 라틴어 선생인 남편은 월급의 대부분을 책을 사느라 오늘도 닳아빠진 셔츠를 입고 출근하며,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늦잠을 자기 일쑤이다. '책을 읽느라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다른 것을 할 시간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이 남자의 일상이 너무 공감이 되어서 읽는 내내 다른 사람의 눈에 어쩌면 나도 에두아르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에두아르처럼 정신줄 놓고 일상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아침저녁으로 정신 없이 바쁜 이유가 바로 책을 읽기 때문이라는 점이 너무도 똑같으니 말이다.

 

 

알랭이 준 책 옆에는 며칠 전 제자에게 선물 받은 책과 외삼촌이 주신 책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 있다. 책상 위에 탑처럼 쌓여 있는 책들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심란하다 못해 울화가 치민다.
"이게 뭐야? 서재가 쓰레기통이야? 이 책들 오늘 안에 다 정리해! 밤을 새워서라도 다! 버릴 책은 버리고, 두세 권씩 있는 같은 책은 선택해서 버리고! 알았어? 만약 안 그러면 내가 내일 다! 모조리 다! 갖다 버릴 거야! 명심해! 정말이니까!"
에두아르는 내가 거품을 물고 발작하자 오늘 중에 정리하겠다고 맹세한다.    p.292~294

 

이들 부부는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책을 놔둘 공간이 마땅치 않아 침실과 거실에 나누어 배치를 했다. 판형이 제각각인 책들이 마구 섞여 있어 무척 지저분해 보이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저자는, 책장 한 칸에 있는 책들끼리 판형을 고려해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책장을 보며 비명을 지른다. 책장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책이 장식품이냐고. 장르별, 작가별, 알파벳순으로 다 정리해놓은 건데 어떻게 판형에 맞춰서 책을 꽂을 수 있냐고 말이다. 어떤 날에는 무려 두 시간에 걸쳐서 이런 저런 재료를 다듬고 만들어 점심 준비를 해놨더니, 감동하기는커녕 두 시간을 요리하는 데 쓰는 것보다는 더 흥미로운 일에 쓰는 게 낫지 않냐며. 그가 말하는 흥미로운 일이란 당연히 책을 읽는 일이다. 머릿속에 책 생각밖에 안 들어있는 이 남자와 한 집에서 사는 일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 깨가 쏟아지는 달콤한 신혼 생활은커녕 매번 이러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티격태격 조차 유쾌한 알콩달콩으로 느껴질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 바라보는 책벌레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기도 했고 말이다. 남편을 ‘걸어 다니는 책’ 이동서점이라 칭하는 아내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사실 나는 바로 그 책벌레 남편에 가까운 사람이라 나도 모르게 저자보다는 에두아르 쪽에서 그를 두둔해주고 싶었다. 책에 미쳐 있는, 그래서 책과 삶이 거의 동일한 것이 되어 버린 그가 읽는 책들, 독서습관, 책에 대한 태도 등등이 모두 너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인에게 자주 혼나고, 그녀에게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이 “그만” “조~용” “시끄러워”라니 어쩐지 애처로우면서도, 귀엽기도 했고 말이다. 책의 말미에는 저자의 남편인 에두아르가 쓴 글이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다. 물론 남편이 쓴 글은 저자가 번역을 했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프랑스 책벌레와 함께 사는 이 귀여운 부부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유머스러운 상황들 곳곳에 책벌레가 읊어대는 책의 구절들이 구석구석 포진하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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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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