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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코로나 리포트
글쓴이
허윤정 저
동아시아
평균
별점8.7 (9)
bec5483

[서평] 코로나 리포트


1.


내가 사는 사우디는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기도 전인 3월 14일에 선제적으로 국제선 운항을 중지하고 국경을 폐쇄했다. 당시 한국은 하루 850명까지 치솟았던 신규 감염자가 100명 수준으로 이미 떨어진 상태였다. 사우디 정부에서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선제 조치를 취했는데도 이후 감염자가 하루 3천 명 가까이 발생했고(5/16), 잠시 1천 명 대로 꺾였다가(5/30) 다시 5천 명 가까이 치솟았다(6/17). 다행히 그 이후로 조금씩 줄어들어 지금은 하루 1천5백 명 정도 발생하고 있다. 오늘까지 28만5천 명 감염자가 발생해 인구 백만 명 당 감염자 수가 8천5백 명에 이르는데, 이는 한국(280명)의 30배 가까운 수치이다.


사우디는 국제선 항공 운항을 중지하고, 국경을 폐쇄하고, 도시를 봉쇄했으며, 24시간 통행금지라는 극약처방을 했는데도 이 정도인데, 한국은 어떻게 도시봉쇄 한 번 하지 않고 이렇게 잘 대처했는지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의아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으로 일하다가 지난 1월 민주당 비례대표를 승계한 허윤정 의원이 방역 현장에서, 정책 결정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정리해 지난달에 <코로나 리포트>를 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책당국자가 아닌 정치인의 시각에서 쓴 글이어서 굳이 읽을 생각이 없었지만, 정은경 본부장의 추천사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예상했던 대로 칭찬은 안으로 들이고 책임은 밖으로 미루는 모습이 군데군데 보였다. 의정보고서로 쓴 걸 책으로 엮은 것이라니 그러려니 여겼다.


2.


지난 몇 달 동안 3천여 명 교민 중에 970명이 특별기로 한국으로 돌아갔다. 감염 위험이 현저하게 낮다는 게 큰 이유이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걸려도 산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우디 정부에서는 하루 수 만 건을 검사하고 감염이 확인되는 대로 입원시킨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실제로 교우 중에 증상이 있다고 신고했는데 검사 받는 데만 며칠 걸렸고, 확진 판정 받고도 입원하지 못해 결국 자가 치료로 이겨낸 분이 있다. 끝내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음성으로 끝난 분도 있다. 그러니 “걸려도 산다”는 믿음은 안도감이요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냈을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우왕좌왕하던 보건당국이 어떻게 그리도 빠르게 진단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환자들을 어떻게 추적했는지, 누구도 검사비나 치료비를 냈다는 말이 없던데 그렇다면 비용은 어디서 부담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결국 외국인 입국을 통제하고 위기 등급을 조정할 것을 굳이 여론을 외면했던 것이나 마스크에 대한 지침이 오락가락 한 것도 아쉬웠고,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합리화하는 모습은 볼썽사납기도 했다. 물론 일일이 다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고, 정치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총체적으로는 칭찬할 만하고 자랑할 만하다.


저자는 코로나19가 “치명률이 낮은 대신 전파율이 높아 격리와 독자생존을 선택해야 하는 ‘분리’를 요구하지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방역수칙을 지키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연대’가 필요한 감염병”이라며 이의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는 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코로나19로 분리된 세상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건 점점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이미 철저한 대비로 코로나라는 큰 고비를 잘 넘었으니 그 자세를 잃지 않아 코로나 이후의 고비도 잘 넘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3.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한다. 그래서일까,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고,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매번 같은 고통을 겪는다. 이번에는 달랐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지리멸렬했던 경험을 그저 기억으로 남기지 않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에서 폐렴 소식이 들려올 때 질병관리본부는 이미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가상훈련’을 마친 상태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WHO에 폐렴을 보고한 직후인 1월 3일에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을 꾸리고 24시간 긴급상황실 운영체제를 가동할 수 있었다.


메르스의 쓰디쓴 경험은 ‘필요할 경우 방역당국이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이 덕분에 확진 판정 후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역학조사관들이 감염자의 세부 동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금융기관도 이동통신회사도 적극 협력했다. 특히 카드 사용정보를 활용한 역학조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된 바 없는 독보적인 기법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확진이 되면 당사자에게서 진술을 받고, 카드 내역을 확인하고, 그렇게 찾아낸 동선을 일일이 CCTV로 확인해야 했다. 처음 몇 명이야 그렇지만, 대상자가 수 백 명 단위가 되었을 때에도 차질 없이 진행된 것은 아직도 불가사의한 일로 남아 있다. 훗날 그것이 사람을 ‘갈아 넣은’ 일이라는 게 밝혀졌지만.


이런 기법은 외국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진국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방문한 곳이 사회상규로 용인되기 힘든 곳이거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일 경우 “동선을 공개하느니 차라리 병에 걸려 죽겠다”는 반발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자칫 동선 공개로 비난받는 게 두려워 자진신고를 기피하면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질병관리본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주소나 직장은 밝히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이동경로와 방문 장소도 꼭 필요한 만큼만 공개하는 것으로 조정해 해결하였다.


메르스 사태 이후 방역당국에서는 감염병분석센터를 만들어 진단검사 관련학회와 함께 진단검사의 신뢰성을 유지하면서 진단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노력을 해왔다. 그 결과 국내에 코로나 감염자가 발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1~2일 소요되는 Pan Corona 검사법 대신 6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는 ‘실시간 유전자증폭검사(Real Time RT-PCR)’ 방식에 대한 평가를 마칠 수 있었고, 이 정보를 진단키트 생산업체와 공유해 발 빠르게 진단키트를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정부에서도 진단키트 사용허가 기간을 80일에서 7일로 줄이는 ‘긴급사용승인제도’를 도입해 발을 맞췄다. 하루 진단키트 13만 세트를 생산할 수 있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사우디에서도 코로나 증세가 나타나면 공식적으로는 당국에 신고하고 지정병원에서 검사받은 후 절차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검사받기도 어렵고 확진 판정이 나도 제대로 치료받기도 어렵다. 그래서 50여만 원 가까운 돈을 들여 민간병원에서 검사를 받는다. 돈도 돈이지만 검사결과 신뢰도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신고하는 것만으로 상황이 정리된다. 검사비는 물론이고, 치료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강보험공단에서 80%, 국가에서 20% 부담한다지만 본인 부담금이 없으니 도무지 신경 쓸 일이 없다. 참고로, 검사비는 한국이 16만 원, 미국이 900달러라고 한다.


4.


감염병에는 누가 전문가일까? 의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의학과 방역은 관점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의사는 당연히 의학적으로 생각한다.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라면 국경폐쇄도 불사할 것이다. 국가의 모든 자원을 감염병 대응에 투입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방역은 모든 사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건의료 뿐 아니라 경제, 외교까지 고려해야 한다. 가장 옳은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가장 가능한 방법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 역시 방역당국이 의학계의 요구와 다르게 대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 일로 의학과 방역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위기 대응단계를 격상하는 일도 그렇다. 의학계에서는 그들의 관점에서 위기단계를 격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방역당국으로서는 최악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응단계를 격상할 경우, 한정된 의료 인력과 의료 자원을 쏟아 부어야 하며, 그 결과 정작 필요할 때 이를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5.


코로나 발생 초기에 외국인 입국을 막아야 하느니 마느니 하는 일로 소란스러웠다. 정부에서는 막을 수도 없고, 막는 것이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야당에서 중국인 입국을 막자는 요구가 나오자 이를 외국인 혐오 프레임을 걸어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근거를 들었다. 그러나 코로나 발생 16일차인 2월 4일에 결국 후베이성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특별입국절차를 만들고, 무비자 입국을 중단했다.


물론 중국인 입국을 막는 건 옳지 않은 일이었다. 막아야 할 것은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의 코로나 창궐지역을 방문한 외국인이 되어야 했다. 사우디에서는 3월 17일 첫 감염자가 확인되었는데 이보다 사흘이나 앞선 3월 14일에 국경과 공항을 폐쇄했다. 한창 신규 감염자가 늘어날 때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한국 방문 기록이 있는 모든 이들의 입국을 막았다. 사우디는 왕정국가이니,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그렇다고 하자. 한국 방문 기록이 있는 이들의 입국을 막은 다른 선진국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은 우리 정부도 코로나 창궐지역을 방문한 모든 이들을 막지 않았나.


방역당국은 초기에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지침을 따라 여러 사람과 접촉하는 업무 종사자는 마스크 사용을 권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반드시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권고했다. 꼭 쓰겠다면 실외보다는 실내에서 쓰기를 권고하기도 했다. 면 마스크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이름난 과학전문 기자 한 사람은 여러 가지 수치와 논리를 들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마스크 사용을 절제하자는 전도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정부의 권고도 그렇게 과학전문기자의 논리도 설득력이 있어서 (비록 한국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고, 마스크 착용을 집착하는 이웃에게 그 논리를 들어 그럴 필요가 없다고 권했다.


그러다 마스크 대란이 터졌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가 슬그머니 규격 KF80 이상 마스크 착용을 장려하는 것으로 말을 바꾼 정부는, 면 마스크만으로도 전염을 막을 수 있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실험결과 면 마스크에 필터만 추가해도 KF80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국민들은 마스크 대란을 회피하기 위한 정부의 변명으로 여기는 것이 당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염자 발생도 줄어들고 마스크 생산도 궤도에 올라 마스크 대란이 해결되었다. 이후로 마스크 착용은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의무로 받아들여졌다.


K-방역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방역당국의 대응은 탁월했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고, 때로 혼란과 정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응한 결과는 그 모든 걸 덮을 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류를 복기하지 않아도 좋은 건 아니다. 비록 성과로 덮을 수 있는 작은 오류라고는 하지만,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어느 누구도 오류를 인정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그런 부끄러운 기록 가운데 단 한 번 오류를 철저하게 복기하고 바로잡은 예외적인 경우가 있었으니, 그것이 메르스 파동을 겪고 난 방역당국의 대응이었다. 그 한 번의 예외가 국민을 살리고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더 큰 성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5.


진단검사를 하고 감염자의 동선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해 쏟아지는 감염자를 격리하고 치료하는 일은 엄청난 의료 인력과 의료 자원이 투입되어야 할 일이었다. 병원에는 늘 환자가 있고 의료 인력은 겨우 그 규모를 감당할 수준이었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서 그 엄청난 인력과 자원을 끌어왔는지 궁금했다.


사실 궁금할 것도 없다. 누구든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니. 인신공양(人身供養). 급하니 그렇게라도 불을 꺼야했지만, 불을 껐으면 동원된 인력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보상은 고사하고 의료 현장에 자원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 어디에서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부 책임도 아니요, 방역당국 책임도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니 굳이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성공적인 K-방역의 역사는? 그것은 정부와 방역당국의 덕택이고? 그래가지고 같은 상황을 다시 마주했을 때 이 체계가 다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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