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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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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글쓴이
정아은 저
천년의상상
평균
별점9.4 (30)
중국통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얼마 전 남편과 심하게 다퉜다. 

보통 우리는 하루 안에 화를 풀어낼 만큼 대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편인데 

그날 저녁만큼은 부아가 치밀어 고레고레 목청을 높이고 말도없이 먼저 집을 나갔더랬다.

동네를 벗어나 어두 깜깜해진 인도를 터벅터벅 걷고 또 걷는데 막상 나오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더 짜증이 올라왔다. 동네 친구를 불러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드라이브나 오면 딱 좋겠다 싶어도

'아, 내일 니모 도시락 쌀 준비를 아직 못 했는데 어쩌지? 니모가 엄마 없이 맘 편히 잘란가?'

내 정체성은 이미 뼛속까지 '엄마'였다.

내 상황, 내 위치. 이런 상황이 가끔 내 발목을 잡는다. 

엄마로서 행복하면서도 답답한 그 현실. 

니모가 갓 돌이 지나고 '내 일을 시작하고 싶다.'라고 했을 때 

' 넓은 세상에 나가서 네 꿈을 펼쳐라' 며 중국에 나홀로 유학을 보내 준 아빠의 입에서는 정색을 띤 채로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 너 아이 키우는 것만큼 세상에 중요한 건 없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아이 키우는데 집중해야지."

친지들이 모인 어느 명절 날.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던 작은아빠는 아기띠로 니모를 안은 채 밥 먹고 있는 나를 향해 가시를 던졌다.

"너 백수라며? 집에서 놀고 먹으니 좋아?"

작은아빠의 얼굴은 너무 해맑았다. 본인이 어떤 무례한 말을 던진지 모르는 얼굴에 반박하지 못한 채

그 말은 한동안 가슴속을 떠다니면서 순간 울컥함을 만들어냈다.

그 다음 해에도 나는 어김없이 똑같은 농담(?)을 받아냈다.

아무 생각 없이 뱉은 질문은 정말 '생각이 없어서' 폭력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뿐일까.

엄마라는 이유로 '성'역할에 대한 불합리한, 불공평한 일을 자의로 혹은 타의로 만들어냈던 날들.

그래서 우리는 그 날밤에도 목청을 높여 서로에게 가시 돋친 말을 어김없이 날렸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조차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난 엄마니까~ 해야 해.'라는 내 안의 성편견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집에서 노동을 하면서도 돈을 못 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과 5년간의 경력단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을 똑똑히 들여다보자 속이 다 쓰려 흐느꼈다.

물론이다.

남편은 나에게 단 한번도 '엄마니깐, 여자니깐~ 한다.~를 해줘.'라고 말을 꺼낸 적이 없는 사람이다.오히려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주는 남자다.

하지만 양육의 무게가 내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 나는 그것에 대해 이미 불공평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그 상황을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이런 고민을 숱하게 해왔고 남편과 가사일 분담으로 수없이 협의해왔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남편이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서로의 문제를 들춰내고 조정하며 나는 이제 불만하기를 멈추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에 초점을 두고 살았다.

하지만 가끔씩 성 역할에 대한 불합리한, 불공평한 말들이 들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발끈한다.

책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여성 문제가 곧 남성 문제라는 생각.

남성 문제가 곧 여성 문제라는 생각. '

남성'은 가상의 균질한 적군이 아니라 현실 속 내 아들이고,내 남편이고, 내 아버지이며 오빠라는 생각이 찾아온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은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안착했다.

해맑은 얼굴로 '너 백수냐?'라고 매년 같은 농담을 던졌던 작은아빠에게 이 작고 강력한 선물해주고 싶다.

작은아빠 딸 민지도 언젠간 '엄마'가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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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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