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리뷰

목연공식계정
- 작성일
- 2020.8.20
어린 왕자 : 0629 에디션
- 글쓴이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
문예출판사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 이벤트를 통해서 받은 책이다. 리뷰어클럽에서는 서평단에 지원한 이들에게 이 책에 대한 기대평을 댓글로 남기기를 요구했고, 나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황현산 선생은 『어린 왕자』를 37종을 구매했다고 하는데,
나는 거기에는 따르지 못하지만 5종정도를
10여 권 이상은 구매한 듯하다.
대학 시절에 처음 만나면서 감동을 받은 뒤에
교단 시절 초기에는 제자들에게 자주 선물한 책이었다.
어린 왕자의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잘 모르겠다.
다만 초창기 어린 왕자에는
법정스님이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있었는데,
그 글에게 매력을 느꼈던 듯하다.
(법정스님의 편지가 실린 책이 문예출판사판이 아니었나 싶다.)
법정 스님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당연히 좋은 책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까?
황현산 선생의 추천사에서
법정 스님의 편지처럼 매력을 느꼈다.
이 책이 보다 많은 독자를 만났으면 좋겠다.
어린 왕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보다 순수해질 것 같아서이다.
이 책에 대한 생각은 댓글 그대로이다. 어린 왕자는 나의 학창 시절과 교단 시절의 추억이었다. 그런 향수 때문에 서평단을 신청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책을 받으면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열 번 이상 읽었고, 교과서에 일부가 실려 있으니 거의 매년 부분적으로 읽었다. 그뿐만 아니라 리뷰도 여러 판본에 걸쳐서 서너 번 쓴 듯하다. 그런 책을 또 읽었다고 한들 무슨 리뷰를 다시 쓸 것인가?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우리 집에 서너 권은 있을 것이다. 또 한 권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2015년에 썼던 리뷰의 소제목을 보니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째, 예상외로 서평을 쓰기가 힘들었다.
둘째, 뱀과 장미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셋째,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것을 느끼는 책이다.
넷째, 소장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2010년에 썼던 리뷰의 소제목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첫째, 읽을수록 새로움이 느껴졌다.
둘째, 예전에 읽었던 책과 다른 용어를 쓴 곳이 몇 곳 있었다.
셋째, 번역이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006년에 썼던 리뷰의 소제목은 이런 내용이었다.
첫째, 역시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둘째,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셋째, 지금도 어린 왕자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다.
그 이전에 썼던 리뷰는 사라진 듯하다. 나의 첫 홈피인 edu홈피에 남겼는데, 회사에서 홈피 제공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지금 읽은 뒤의 느낌은……? 나는 그만 실수를 했다. 예전에 썼던 리뷰를 읽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예전의 리뷰에 남겼던 글들뿐이다. 그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 한 가지에 대해서 지금의 생각을 보완하겠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15년 전인 2006년에 썼던 글이다. 그때 나는 교단에 있었다. 내가 이 말을 쓴 이유는 나는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이 책을 다룰 때면 꼭 읽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내용도 좋지만, 그림이 많고 본문은 적으니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유혹까지 하면서……. 하지만 읽은 학생은 많지 않은 듯하고, 완독한 학생들도 크게 감동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런 말을 쓴 듯하다.
그렇다면 목연 너는?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나는 이 책을 대학 1학년 때 만났다. 그때는 리뷰를 쓰지 않았으므로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크게 감동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머리말 형식으로 법정스님이 쓴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좋았다. 그 무렵의 나는 법정스님의 글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만약 이 책을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글쎄……, 그 시절의 내가 크게 감동했을 것 같지는 않다. 신기하다고는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생텍쥐페리는 이 책이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어린 소년이었을 적의 레옹 베르트에게’
그렇다. 작가는 어린이를 위해서 쓴 책이 아니고, 어른을 위해서 쓴 책도 아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어른들을 위해서 쓴 것이다. 그러니 어른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 이 책의 참맛을 알 수 있겠는가? 지금에야 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의 의미를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읽을수록 이 책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 이유까지도…….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서 어른들만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추억을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은 대부분 어른들이지만, 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었으니 아름답게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린 벗들은 지금 이 책을 읽어서 추억을 만들고, 어른이 된 뒤에 더 큰 감동을 느끼기 바란다. 어른들은 당연히 읽고 아름다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어린 왕자에 대한 개인적인 인연을 덧붙이겠다. 다음은 네이버 지식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아마도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질문인 듯하다. 『어린 왕자』의 줄거리를 10줄 이내로 줄여달라고 했고,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요약해 주었다. 이 글은 조회 수가 15만 명에 육박하고, ‘좋아요’를 누른 사람도 276명, 댓글을 남긴 사람이 77명이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글을 썼지만 10만 명 이상이 내 글을 읽고 수백 명이 공감을 누르며 수십 명이 호응을 보인 글이 얼마나 될까? 어린 왕자는 이래저래 나와 인연이 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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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