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보름이
- 작성일
- 2020.9.28
이제라도 삶을 고쳐 쓸 수 있다면
- 글쓴이
- 이관호 저
웨일북
'철학'. 이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필자는 '어렵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한국의 정규 교육과정에 따르면 사실상 배울 수 없을 뿐더러, 접해봤어도 국어 시간이나 통합 사회 시간에 교양의 개념으로 잠깐씩 접했었다. 그렇기에 동서양의 철학은 타인들이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을 뿐 나의 삶과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나의 삶에는, 그리고 모두의 삶에는 철학이 녹아있었다. 이 책은 인간의 삶 속에서 철학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였다. 양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사례 또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모두가 공감가능하다. 철학의 입문자도 얕지만 정확하게 그 철학이 설명하고자 한 바를 파악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이 되어있다. (저자가 설명하다시피) 상황에 따라 다른 철학이 적용되기 때문에 나의 상황에 가장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먼저 선택하여 읽어도 된다.
필자는 최근 교원에 임용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큰 고민이 있다. 수업을 구성하고 이끌어 나갈 때 교사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눈에 들어온 차례는 "권력을 갖겠다고 결심했을 때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필자도 마키아벨리즘이란 권모술수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했었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권모술수의 방법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현재의 전략을 제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마키아벨리의 인문적 자세이다. (p.39)
필자가 추구하는 수업의 리더란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아니다. 학생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지식을 탐구함과 동시에 교사의 권위를 침범하지 않고 지시에 발 맞추어 수업의 주인이 되는 것이 교사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즘이 여섯 가지 규칙들이 조합된 '사랑받지는 못해도 최소한 미움받지 않는 리더(p.35)'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 미움의 대상이 되지 않기(p.36)'은 수업을 학생들과 꾸려갈 때 교사가 갖추면 좋을만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또한 예술에 관심이 많다. 틈이 나면 미술사와 작품에 대해 찾아보는 편이다. 여행가서도 해당 지역의 예술을 엿볼 수 있을만한 곳은 다 다니는 편이다. 늘 예술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와중에도 현대미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존하는 인간들은 현대미술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러한 필자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철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바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안 나올 때-질 들뢰즈-"였다. 이 차례는 시작하면서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습작>을 보여준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베이컨의 그림과 함께 어떻게 설명하였다는 것일까?
정리하면, 베이컨이 동물과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고민을 했다는 것, 사진과 다른 회화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모델과 배경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성을 추구하는 그의 존재론이 들뢰즈의 철학과 상통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p.109)
구체적인 것들을 의미하는 '존재자'와 그것의 바탕이 되는 세상 전체를 의미하는 '존재'가 하나됨을 표현한 베이컨의 그림을 들뢰즈의 '존재론'을 통해 '세상 전체는 하나의 의미를 갖는 존재'라고 이해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말을 빌린다면 필자가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은 '존재의 사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것이다. 이성의 한계를 깨닫게 된 인간들이 한계를 뛰어넘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이제 현대미술로 형상화된 것 아닐까? 필자는 책을 읽고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
필자는 저자의 책 중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은 차례가 따로 있었다. "예민한 내가 싫을 때 -존 스튜어트 밀-"이다. 큰 감명을 받은 이유는 바로 서양 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존 스튜어트 밀과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윤동주 시인을 연관지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윤동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는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던 것일까. 대단한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작은 바람에 잎새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또 밤을 새워 우는 벌레 소리를 듣고 그리 느낀 것이다. 그렇게 한국 최고의 애송시는 시인의 예민함으로 탄생했다. (p.193)
저자는 독자에게 질문을 한다. '까탈스러운 사람은 행복한 이미지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윤동주는 어떤가. 그는 불행한가?' 저자는 이어서 설명한다.
밀과 같은 이른바 '질적 공리주의자'에게는 행복이라고 다 같은 행복이 아니고 즐거움이라고 다 같은 즐거움이 아니다. 밀은 이 가운데 급이 좀 떨어지는 것을 '만족'이라고 표현했다. (p.194)
즉 이러한 설명은 다음과 같이 귀결된다.
...만족보다 높은 차원의 즐거움, 즉 행복은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어떤 가치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가 가리키는 차원에 도달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당연히 현실에서 불완전함을 느낀다. (p.196)
만약 당신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차원 높은 삶을 결단한다면, 예민함은 당신의 등급을 끌어올릴 것이고 비록 불만족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199)
이러한 저자의 설명으로 인하여 윤동주 시인의 '예민함'은 '섬세함'이 되었다. 그 섬세함은 세상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 첨예한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섬세하기 때문에' 더 능력이 탁월하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차례는 "어설픈 위로라도 하고 싶을 때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우리는 이 차례에서 치유의 메커니즘을 알 수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막상 겪고 나면 뼈저리게 느껴지는 진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발로 서지 못하고 온갖 집단적인 동일성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어느 조직체의 일원이 되거나 무슨 주의를 신봉하고 그것이 자신의 최종 목표인 줄 알고 있다. 홀로 걸어가야 하며, 동반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아무리 중간 단계의 사회 체제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는 없다. (p.290)
어떤 집단에 속해있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이들의 공허함이란 무엇인지 융은 설명하였다. 필자가 유독 와닿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둘째, 스스로 상처를 겪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없다.(p.292)
모든 이들이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는 다르듯이, 한 사람이 겪은 상처가 가볍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비슷한 상처를 입었던 사람만이 상처입은 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그간 가지고 있었던 교사에 대한 가치관과도 같았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갔다. 예를 들어 심한 왕따를 당해보지 않거나 성적이 꼭대기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 교사는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공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찬찬히 다 곱씹고 나니 든 생각이 있었다. 첫 째로는 p.315부터 나오는 [철학자 및 인용 도서]를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저자가 추천하신 작품은 아니지만 필자가 첫 째로 소개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둘 째로는 저자의 책을 '생각과 언어의 상호작용(p.203)'을 통해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 저자의 책 덕분에 필자는 이렇게 철학과 가까워졌다. 책 속의 다음 글귀를 소개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내면의 간절한 그리움은 타자를 향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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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