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가슴은

무학
- 작성일
- 2020.10.8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글쓴이
- 올리버 색스 저
알마
돌아가신 분한테 실례가 되겠지만, 요즘 무슨 책을 들었냐는 아내의 물음에 '올리버 색스'라는 저자 이름을 댔고 아내는 이름이 야하다고 실소를 하였다. 하긴 실제 내가 책을 접한 것도 어느 이웃님의 소개였고 이름 때문에 먼저 뚫어져라 보았던 건 사실이다. 아내나 나나 참 예외 없이 배움이 없었다.
저자는 신경과 의사다. 세상에 없으신 분이다. 돌아가셨으니. 의사였다가 맞나. 아무튼, 책은 저자가 진료를 담당했던 환자의 기적과 같은 얘기와 저자의 통찰을 엮은 책이다. 24명의 환자가 소개되어있다. 그 중 첫 번째 환자의 얘기가 책의 제목이다. '시각인식 불능증' 이라는 의학적 병명인데 굳이 병명은 연구자가 아니라면 독서에는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일반 독자라면 '이런 증상도 있구나' '정신병이 아니라 어느 특정 뇌 신경에 이상이 있어 그렇구나' 정도로 읽는 거다. 기적 같은 환자 24명은 모두가 평소 접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접하기 힘들다는 건 적어도 일반적이라는 얘기이지 혹, 주위에 신경 관련 질병을 겪거나 겪고 있는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기도 하겠다.
저자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상 실 - 뇌 신경 어느 부위가 기능을 상실한 이야기다. 기억상실, 인식불능 등
과 잉 - 반대로 특정 뇌 신경이 도드라져 넘치는 이야기다. 기억과다, 인식과다, 과다운동증 등
이 행 - 과거의 기억에서 머무르거나 붙잡고 있는 이야기기다. '과거로의 이행' '몽환상태'
단순함 - 쉽게 지적장애, 지능발달이 지체된 이야기다.
하나하나의 사례와 그 뒷얘기를 하는데 끊김없이 유기적이고 연결되어 있다. 가령 앞에 누구는 이러이러했는데 누구는 이렇다는, 앞선 사례가 구체성을 잃은 것이라면 이것은 구체성의 과잉'이라는. 제목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P 환자'는 책을 마칠 때까지 얘기가 되는 사례로 저자도 처음 접한다 할 정도로 특수한 경우라고 한다. 인식함에 있어 감정, 구체성, 개인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단순화 추상적인 것만 남았던 환자라고..... 'P 환자'는 아내를 볼 수 있다. 모자로 보고 찾는다. 아내를 보면 머리에 쓰는 행동을 한다.
책을 접하면서 느낌은 저자가 환자를 대하는 접근법에 과학적이다. 뭐 직업이고 증상의 원인을 밝혀서 호전되도록 할 의무가 있어 그렇기도 하다. 그래도 적어도 일반인으로 보는 나는 소위 '정신병'이라고 받아들일 것을 책을 통해 뇌 신경의 변화 여부에 따라 이런 증상이 있다는 과학적 접근을 깨달았다. 또 한 가지 저자가 환자를 대하는 접근법이 따뜻하다. 환자의 사례에 호기심과 흥미를 보고 싶다면 다른 책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비록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고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서 인간을 찾으려고 한다. 글 속에서 애정과 가슴 찡함을 느낀다.
즉 병이란 결코 상실이나 과잉만이 아니라,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은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혹은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고 하고 아주 기묘한 수단을 동원하면서 반드시 반응한다. 이러한 수단을 조절하거나 유도하는 것은 의사인 우리들의 기본적인 의무이다. ( 24쪽 1부 상실에서 인용)
책은 1985년 첫 출간 되었다. 지금 책은 개정 1판으로 84쇄 찍었다. 오래전부터 많이 사랑받은 책이고 방송에서 소개도 되었다. 내가 실제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어느 블친님의 저자의 다른 책을 소개한 글에서 이력에 호기심(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이 나서였다. 동성애자였으며 유대인 집안에서 어릴 때 밝힌 커밍아웃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 책이 주는 저자의 인간애가 아마 이런 이력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마지막 '간질'환자 사례 이야기에서 한참 머무르기도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생 고생했던 병마가 '간질'이었기 때문이다. 1985년이라는 첫 출간, 이 나라에 번역서는 1993년이었다. 내 나이 고3 때. 책 읽기를 어려서 많이 했다라면 어쩌면 이 책을 만났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를 더 이해했을 것이고 고치지 못할 병이 아니라는 생각을 오래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떠한 시도라도 하지 않았을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내게 이 책은 과거의 뉘우침이요, 불효에 대한 용서요, 내일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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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