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1. 책읽기(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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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글쓴이
김혜진 저
한겨레출판
평균
별점9 (42)
블루

직장이 내게 무엇인지, 일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만났다. 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신작으로 한 남자의 일에 대한 현재 우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국영기업체인 통신회사에서 26년을 일한 남자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팀에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젊은 부장은 그를 호출해 희망퇴직 서류를 내민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희망퇴직 1순위에 들었다. 퇴직을 하지 않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 결과에 따라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직원들은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나이가 많은 그가 퇴직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내비친다.



 

그는 그만두지 못할 경제적 핑계를 댄다. 고등학생인 아들 준오의 학비, 재개발을 기대하고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값의 반을 대출로 구입한 다세대 건물의 대출금과 이자,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 그리고 매달 빠져나가는 공과금 들을 생각했다. 경제적인 이유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직장에서 쉬엄쉬엄 일해도 월급이 제대로 나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저 직장에 적을 두고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한 직장에서 26년을 일해 온 건 마치 충성을 맹세한 군인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70페이지) 그는 상품을 하나라도 판매해 보려고 공장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공유기를 교체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어떠한 일을 했었는지, 회사에 관련된 말도 금지 사항이었다. 그는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월급이 삭감되었고 그는 또 다른 지방 소도시로 발령이 났다. 그나마 그가 설치 팀에 있었다는 이유로 케이블 선을 끌어다 작업하는 일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에게 퇴직 권유가 시작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피해 다녔다. 사택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메모지로 해야 할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는 분기국사에서 황 여사와 같은 팀으로 일했다. 황 여사는 전화교환원으로 입사했다가 교환국 업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콜센터 부서에서 일했다고 했다. 30여 년간 상담 업무만으로 해온 황 여사에게 회사는 설치와 수리 업무를 주었던 것이다.

 

밀려날 대로 밀려난 사람들은 고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최나 권이라는 성으로 불릴 뿐이다. 새로운 발령지로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7, 3식이, 그는 9번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 전에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은 호석이나, 상현, 한수, 종규로 불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으로 여겼기에 서로를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문득 화순의 한 공원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하는 공원으로 온갖 국화와 함께 핑크뮬리까지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국화꽃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이 우뚝 서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 세워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설 속 상황에서처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자파가 쏟아질 테고 미관상에도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철탑을 세우는 기업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철탑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더군다나 노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살고 싶은 곳이라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그 또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는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했는가. 그는 무엇을 지켜내고자 했는가. 자신에게는 안식처와도 같았던 회사에서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거의 평생을 일해 왔던 곳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퇴직을 종용받는 건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커왔다고 여기는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그만두는 것과 쓸모를 다해 버림받는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가 자주 떠올리는 과거의 잔상은 행복했던 때의 한 순간이다. 그는 왜 아무것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여러 가능성을 다 흘려보냈다. 다른 삶의 방향을 꿈꾸지 못했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사람의 수평이 맞지 않은 빨랫줄을 손보고 균형이 맞지 않은 평상을 반듯이 맞춰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 갖은 수모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그는 왜 회사에 버티려 하는가. 가슴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은 듯 그렇게 답답했다. 이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어디선가는 이렇듯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업은 기업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지만 못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이란 무엇인지, 직장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예전과 달리 평생 직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일은 또다른 나의 자아다. 비록 경제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일을 하며 자아를 성장시킨다. 이름이 아닌 9번으로 불렸던 그는 비로소 자기 해야 할 일을 한다. 왜 진작 하지 못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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