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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0.10.27
심판
- 글쓴이
-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열린책들
요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서 전생, 환생과 같은 동양적 사고와 가치관이 들어간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전편 <기억>에서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생 체험을 하는 이야기를 다루더니, 이번 작품 <심판>에서는 전생에 대한 심판을 통해 다음 생의 내용을 결정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번 작품은 주인공 아나톨 피숑이 죽고 난 다음 천상의 법정에서 일어나는 판사, 검사, 변호사, 피고인 사이의 설전을 희곡형태를 풀어간다.
작가는 '죽음을 심판한다'는 묵직한 주제를 오히려 유쾌한 필치의 터치로 바꿔놓는다. 과연 죽은 뒤 천국에서 벌어지는 심판에서는 어떤 것들이 죄가 될까? 여기서 다뤄지는 죄들의 양상을 보자. 천생연분을 몰라보고 잘못 배우자를 선택한 죄,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고 다른 직업을 택한 죄, 일에 파묻혀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한 죄, 그리고 음주운전과 노상방뇨, 공공장소 낙서와 같은 우리기준으로는 자잘한 죄이다. 작가는 지상세계와는 다른 가치체계와 도덕규범을 바탕으로 우리의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데 이런 베르나르 특유의 비틀기가 독자들에게 웃음을 가져다 준다. 죽어서도 손에 끼었던 반지에 집착하고, 상속세 때문에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겠다는 주인공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총 3막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희곡 형태로 쓰여져 있다보니 읽기도 쉽고 분량도 많지 않은 편이다. 제1막에서는 수술 중 사망한 주인공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천국에 도착하여 변호사 · 검사 · 판사를 차례로 만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2막은 심판의 과정으로 주인공의 지난 생을 본격적으로 돌아보는 절차가 진행되며, 제3막은 다음 생을 결정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피고인 아나톨 피숑은 자신을 좋은 학생, 좋은 시민, 좋은 남편, 좋은 직업인, 충실한 기독교 신자였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검사는 그를 원시적 의식구조를 가진 자라고 비판한다. 최종 심판의 기준과 결과는 무엇일까? 과연 죽은 뒤 우린 이 작품에서처럼 심판 결과에 따라 천국에 남거나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야 하는 삶에 처해질까? 우선 지옥으로 보낸다는 내용이 없어 독자들이 안심할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태어날 경우 본인이 장소와 환경과 능력도 선택할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과 유쾌함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과연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일까? 작가는 가브리엘 판사를 통해 우리 삶을 요리에 비유하면서 유전 25%, 카르마 25%, 자유의지 50%가 재료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피고 아나톨 피숑의 죄는 무의식의 소리인 카르마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유의지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천국의 법정에서는 우리가 주어진 삶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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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