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es24 서평단 리뷰

삶의미소
- 작성일
- 2020.10.31
코리안 티처
- 글쓴이
- 서수진 저
한겨레출판
『코리안 티처』는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여성 작가가 쓴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서수진이 단편으로 계획했다가 장편으로 펴낸 작품이다. H대학교 어학원을 배경으로 강사인 선이, 미주, 가은, 한희 이렇게 4명의 여성이 등장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와 타협하거나 맞서며 때로는 서로를 적대시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비정규직 고학력 여성들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각자의 방식들 속에 결코 타인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각자의 앞만 봐라봐야하며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선이는 석사를 마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3번째 시험에서 복통으로 시험을 망치고 다른 직장들을 알아보지만 우수한 필기성적에도 결국 면접에서 떨어진다. 결국 H대학교 베트남 특별반이 급작스럽게 만들어지고 22명의 강사 중 한 명으로 채용된다. 초등학교에서 친구들보다 평수가 작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에 ‘2단지’로, 중학교때는 ‘써니텐’으로 불리며 같이 어울려다닌 친구들 모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키 순서로 번호를 정하는 고등학교에서는 ‘1번’으로 불리며 존재감 없는 학생으로 지낸다. 베트남 학생들이 동의 없이 자신들의 인스타에 강사들이 사진을 올리며 적절치 못한 해시태그를 달려지자 강사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선이는 재계약을 걱정하며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다른 이들처럼 신고를 하지 않지만 결국 일은 커져서 관련 학생들은 제적을 당하고 베트남반 학생들의 집단 일탈이 일어난다.
고개를 떨구는 습관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다. 키가 작아서 맨 앞에 앉았던 선이는 선생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고, 뒤쪽에 앉는 키 큰 애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수업 시간에 선이는 글씨가 매직아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책에 눈을 고정했다.(p.32) |
그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누군가에게 ‘선이’라는 이름으로 불려보지 못하고 항상 외모나 환경으로 평가를 받아오고 한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의 아픔과 소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별명으로 불리던 경우가 많았다. 별명도 양면을 날을 가졌는데 좋은 의미의 애칭일 수 있지만 선이의 경우 별명은 소외와 무시를 내포한 의미였다. 이런 선이는 편한 복장보다 정장을 입음으로써 스스로 강사임을 인정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미주는 강사 7년차로 2급반을 맡아 어학원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 항상 건의하고 따지고 들어 다른 강사들마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낀다. 어릴적부터 유별스럽게 깐깐했고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일에는 친한 친구에게도 서슴없이 충고를 하며 외톨일지언정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 대학교시절 동아리 선배의 성추행에 주변의 만류에서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고야 마는 성격이다. 강사로서도 다정다감한 선생님이기보다는 학습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니카라는 어학원 여학생을 남성으로 오해하며 그녀에게 잘잘못을 지적하며 더 단호하게 반응하는데 결국 니카는 그런 미주를 고소하겠다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 반의 엑스재팬 골수팬이 3반 왕따로 불리는 것처럼 미주도 공식적인 2반 왕따가 되었는데, 그러한 사실이 부끄럽거나 화나지 않았다. 자신이 여전히 ‘괜찮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쉬는 시간마다 자신에 대해 떠드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지리멸렬한 친구들과 비교할 수도 없이 고결한 책 속 인물들에게 빠져들었다. (p.86) |
자신의 기준에서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며 그게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주.여성이기에 그리고 비정규직이기에 항상 약자라 생각을 했기에 더 악착같이 자신의 곧음을 내세운 건 아닌가? 빈틈을 보여서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름 자신을 지키기위해 했던 행동이 다른 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니카를 드러났을 때 과연 미주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엇이던지 너무 곧으면 부러지기 쉬운 것처럼 미주를 보며 좀 유연한 자세를 가지는 것 또한 필요함을 느꼈다.
가은은 어학당의 2년차 강사로 1급 일반반 수업을 맡고 있다. 예쁜 외모에 상냥한 태도로 인기도 많아 항상 학생들에게 강의 평가를 좋게 받아서 다른 강사들의 질투와 부러움을 받고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다 운이 좋았다 생각하며 학생들 하나하나를 다 감싸주고 싶어한다. 사실 그녀는 남들이 보기에 고생없이 자란 것 같은 이미지로 보여지지만 어릴적 도박에 빠진 아버지로 인해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힘든 시기를 겪었고 아버지가 죽고나서야 보험금으로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어학원 학생과 사귀게 되고 누군가가 보내온 동영상이 있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고 충격을 받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강사를 그만두게 된다.
가은은 이유 문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배우기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가은이 이유를 그다지 묻지 않으며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주 오랫동안 가은은 자신이 굉장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가은에게 사람들이 이유 없이 베푸는 호의와 같았다. 어느 날 주어진 것,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 (p.173) |
가은은 아버지에 대한 실망으로 무언가에 대한 이유를 찾는 것이 힘들어진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아버지가 도박으로 가족을 돌보지 않았던 이유를 누가 설명해 줄 수도 없고, 본인도 찾을 수 없는 답인 것을 안 순간부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어나는 것이며 좋은 일은 항상 그냥 단순히 운이 좋아서 일어난 일이라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학생과 사귀고 있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아는 것도, 부적절한 동영상이 존재한다고 협박 문자를 보내 사람이 친한 강사였다는 사실에도 맞서는 대처보다는 그 상황에서 맞서지 못하고 회피하는 방법을 선택한 가은에게 다시 운이라는 것이 툭 하고 떨어질 날이 앞으로 있을까?
책임 강사로 2년 일을 했고 재계약을 하게 되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산 위험으로 겨울학기엔 학교를 쉬어야 할 상황에 놓인 한희.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늦은 퇴근과 과도한 업무에도 불평하지 않으며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맡은바 이상의 일을 해낸다. 베트남 학생들이 300명의 무단결석으로 어학원은 혼돈에 빠지며 학교는 징계를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중국에서 학생들을 대거 투입해서 10일 단기 특강반을 진행하기로 하자 이것을 기회로 삼아 다음 계약을 생각하며 이럴 때 능력을 보여주려고 다들 꺼려하는 일을 맡겠다고 자원한다. 남자친구 제이콥과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상태이나 제이콥만을 믿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희는 정말 시간이 없었고, 정말 힘이 들었다. E대에서는 수업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들었다. 수업을 한 후 버스에서 김밥을 먹으면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냐고 물었던 사람들은 한희가 박사과정을 시작하자 박사까지 해서 뭘하려는 거냐고 물었다. 그때도 한희는 자아실현 같은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지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박사학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H대 어학당만 봐도 50대 학국어 강사는 없었다. 박사학위와 책임 강사 경력으로 교수가 되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아웃이었다. (p.207) |
한희는 안정된 자리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책임 강사를 맡으면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고 누가 시키지 않는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하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자 했다. 그러다 임신을 하게 되며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는 제이콥을 믿을 수도 없다. 결국 자신의 자리도 지키고 제이콥의 임금체불을 해결하려다 조산을 하게 된다. 제이콥이 같이 영국으로 가자고 하지만 ㅁ숙아로 태어난 아기의 건강도 불명확하고 거기에서도 별달리 해결책이 없음을 알고 본인은 영국으로 가는 것을 거절한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며 고학력 여성들의 비정규직 이야기라는 점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사회문제는 교육이라는 허울아래 한류의 기류에 편승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채우는 집단과 노동자의 입장보다는 사측의 입장에서 노동쟁의를 해결하려는 국가기관의 문제점, 불법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사람들까지 보여주기에 단순히 사회에서 여성이 갖게 되는 문제점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매스컴에 연일 화두가 되고 고학력 졸업자의 미취업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내가 20~30대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취업난이기에 사실 이런 문제들이 피부에 와닿지 못했고 막연한 걱정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청년들이 얼마나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더 깊이 알게 된 것 같다. 미주의 생각처럼 자신들은 ‘갑을병정’ 중 ‘을’도 아닌 ‘정’이라는 현실이 너무 불합리하게 다가왔다.
선이는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결국 강사 재계약이 불발되고, 미주는 뭐든지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부딪히고 보는 성격에 결국 다른 이에게 자신의 화를 쏟아내다 큰 상처를 주게 된다. 가은은 남들 보기에 세상 걱정 없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던 결과 문제가 닥치자 현실도피를 해버린다. 한희는 무조건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서 인정받고자 했으나 결과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향해가고 결국 임신과 출산이 자신의 꿈과 계획에 큰 변수가 되어버린다. 여성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임신과 출산이 어느 순간 여성의 자아실현에 큰 방해물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 또한 양육이라는 현실에 결국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기에 한희의 모습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살아남는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것,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것,
버텨내는 것, 끝내 살아남는 것.
작가가 쓰고자 했던 살아남기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남고자 했을까. 나는 과연 어떤 인물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보니 네 명의 모습들이 다 내게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누구 하나도 외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결말이 해피앤딩은 아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것 같아 만족을 해보려 한다. 하지만 불행은 계속해서 불행한 사람들만 쫓아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맘이 편치 않았다. 이 사회가 이 네 명의 주인공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좀 힘이 되어주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내가 어느순간 그녀들이 되어 현실감을 깨우치며 현시대의 문제점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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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