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날來

싱긋
- 작성일
- 2020.11.15
문학책 만드는 법
- 글쓴이
- 강윤정 저
유유
“일단은 눈에 보여야 산다.” (94)
저자는 내가 십년 가까이 몸담고 있는(회원이라는 소리) 출판사 커뮤니티의 편집자이다. 볼 때마다 일대 다수의 관계였던 터라 그녀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나는 그녀를 어느 정도 안다. 첫 만남은 그녀가 문학동네로 이직한 직후였다. 그때 예비신부였던 그녀는 갓 서른이었고 지금은 삼십대 후반이다. 첫인상은 어디 일본 소설에서 막 나온 듯했고(일본문학 잘 모르면서ㅋ) 다소 경직돼보였다. 그리고 문학동네시인선을 김민정 시인과 함께 꾸려가며 예쁨(인정)받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김연수와 김중혁 등이 속한 웹진 글 기고가로 활동하다가 국내문학팀장으로 복귀했다. 정영수와 김봉곤 두 소설가로 꾸려진 팀이었다. 그 사이 시를 전공한 마케터인 남편분과 공저로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를 냈다.
그리고 이런저런 문학 행사의 진행자로도 뵈었다. 근래는 유튜브 채널 편집자K로도 만나고 있다. 네이버 커뮤니티에는 ㅈㄴㅇ로 자신이 만든 책에 관해 정기적으로 안내 글을 올린다. 여기까지만 써도 마치 저자 스토커나 찐팬 같다. 그런데 나에게는 책(글)으로 알게 된 사람을 깊이 파고드는/오래 훔쳐보는 습관이 있다. 어디에다 쓸지 알 길 없는 데이터베이스, 나만의 클라우드라고 우길 참이다. 그러니 혹시라도 (어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직업이 편집자인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문학 편집자도 많지만 그녀처럼 여러 채널을 통해 꾸준히 다양하게 만나는 편집자는 극소수다. 그 접근용이성과 다채로움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차곡차곡 쌓도록 이끈 것 같다. 나에게는 편집자가 기획과 홍보까지 아우르는 영역이니 국문학과에 진학하라고 설득한 조카가 있(었)다. 조카는 국문과에 적응을 못하고 반수를 해 광고홍보학과로 진로변경을 했다. 그리고 난 뒤 뜻밖에 비대면 수업의 시대가 열렸다(2020년 고3만큼 피해자가 아닐까). 이모의 뜨거운 욕망이 아이의 길과 잠시 결속했다가 다시 헤어져 아이의 의지대로 제 갈 길을 가는 중이다.
저자가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그녀의 번역가 친구의 글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용 가치가 충분한 스펙인 출신 대학과 학과를 먼저 밝히지 않는 겸손함과 당당함이 그녀를 더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저자를 먼발치에서 보았을 때 그녀의 실력 못지않게 운도 작용한다고 판단했었다. 그 정도의 경력과 노하우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이런 검증의 흑심이 한 곳에 자리했다. 여초 현상이 심한 분야에서 경력 단절로 빠져나간 틈새를 비교적 여유롭게 누린다는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이 가진 총량을 적절이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다. <문학책 만드는 법>이라는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일과 정체성을 투명하고 또렷하게 밝힌다. 균형감 있는 목소리로, 당차게 책 앞에 나가서 이끈다. 이 책은 이다혜의 <출근길의 주문>처럼 이 길을 가는 사람이나 걷고자 하는 희망자에게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안내서이자 정직한 응원 글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책을 읽기 전까지 이렇게 많은 공정과 세심한 눈길이 책을 만드는 데 쓰이는지 몰랐다. 책 구매자에게 이토록 애달프게 구애하고 목표 독자를 기차게 유혹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학업에 바친 시간이 길었고 많은 책을 두루 읽어야 했던 나는 대부분의 책 수요를 도서관에서 해결했다. 안 그런 도서관도 있지만 비치된 도서들은 대개 외투를 벗고 속옷바람으로 대출자를 만난다. 서점에서 책을 살 때도, 웬만하면 책을 끝까지 정독하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편이라 내용을 우선적으로 읽어보고 선택한다. 내가 들인 발품과 지출을 배신당하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다. 그러니 그런 내가 표지나 날개나 디자인이나 헤드문구에 매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저자가 일러주는 책 만들기 과정을 따라가노라면 인성 자체가 다듬어질 것 같다. 좋은 사람이 좋은 책을 만든다는 이상한 공식이 머리에 떠오른다. 저자를 비롯하여 박연준, 김금희, 정세랑 작가를 보며 감탄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세 사람은 시작점에서 여기까지 이렇게 점프할 줄 몰랐던 결과물을 최근 장마처럼 퍼붓고 있다. 그들의 책은 삶의 다른 요소들을 접고 몰입한 시간들이 매만져지는 물성을 띤다. 백수린 작가는 박사논문을 교양서적으로 다시 쓸 계획이 있다고 해서 더 부러웠다. 인생의 반 이상을 외국문학을 읽고 쓰며 살았고, 십사년 정도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다. 그 시간을 정리하는 작은 마침표 하나 찍고 싶은데 어디까지나 한 번씩 부는 바람일 뿐 마음에 싹을 틔우거나 몸을 움직이게 되지 않는다. 큰딸, 작은딸이라며 논문을 쓰고 난 뒤 그 가여운 생명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책은 그것들로 충분하다며 등돌려버린 게 지금까지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다시 살리는 법을, 판단하기에 앞서 호기심을 갖고 애정하는 노력에 대해 생각하고 각성한다. 매순간이 배움의 순간이고, 다른 밥벌이와 마찬가지로 “참고 견디고 버티고 무릅쓰는” 마음을 고백할 때 뭉클했다. 마음을 쓰는 사람이 주는 감동이 전해져서다. 보이는 전방에 자진해 나서는 의연함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문학책 만드는 법>에서 예시로 든 소설들에 대해 고정 관념과 진입 장벽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나 같은 기준으로 책을 찾거나 평가하는 건 아니니까. 부정적인 마음을 잠시 미뤄두고 ‘러닝메이트’ 책임 편집자를 떠올리며 다가갈 볼 성싶다. 저이가 저리 좋다고 하는데. 색안경을 벗는 일, 문학 애호가와 어른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책에서 마침표가 낯설게 쓰여 모방해봤다).
# 여러분 가운데 습관적으로 느낌표를 찍어 온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빼보기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느낌표를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써 보기를 권하고 싶다. (111)
# 도대체 왜 잘 팔리는지, 왜 사랑받는지 알아보고 연구해보고 따져보는 것, 평가하기보다 궁금해하는 것, 고집보다 유연함을 발휘하는 것이 기획자가 가져야 할 자질이다... 그러니 의식적으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많이 읽고 듣고 찾아가자. (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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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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