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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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글쓴이
김초엽 저
허블
평균
별점8.8 (1315)
waterelf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단편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가까운 미래를 다루는 과학소설, SF의 형식을 빌린 이 7개의
단편은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담론(談論)의 규모가
커서 7개 이야기 각각을 다루는 것은 무리였다.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것은 외계 생명체와 인간의 소통을 다룬 “스펙트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세상은
소통이 부재(
不在)하고 있기에.



 



스펙트럼의 화자(話者)의 할머니인 희진은 스카이랩의 서른세 번째 생물학자로 탐사선에 올랐다가 실종되었다. 훗날 광자 추진체의 결함으로 그 탐사선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 밝혀졌고, 40년 만에 탐사 참가자 가운데 희진만 간신히 구조되었다. 지구로
귀환한 희진은 실종된 기간 동안, 외계 지성체와 조우(
遭遇)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행성의 위치도, 외계인이 실존한다는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의 주장은
불쌍한 노인네의 공상(
空想)으로 간주되었다.





희진의 주장에 따르면, 항해 중에 우연히 지구와 매우 유사한
행성을 발견해서, 경로를 바꾸어 접근하다가 무언가 잘못되어 각자 탈출을 시도했다. 희진은 겨우 탈출셔틀에 올라탔지만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낯선 행성의 지표면에 떨어져 있었다.



희진은 “이곳이 지구 어딘가의 사막일 수도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밤마다 떠오르는 다섯 개의 위성들은 이곳이 지구가 아님을 증명하듯 빛났다. 기록장치만이 희진에게 익숙한 지구식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마침내 그들을 만났을 때, 희진은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있었다. 이족 보행을 하는,
팔다리를 가진 사람들. 누군가 드디어 희진을 구하러 온 걸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이곳은
낯선 행성이다
. [pp. 64~65]



그녀가 지적인 외계 생명체인 첫 번째 루이와 만난 순간이었다.





소통을 위해 희진이 노력했지만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번째와 세 번째를 거쳐 네 번째 루이와 함께 있으면서 그녀는 그녀가 무리인이라고 부르는 지적 생명체의 수명이 3~5년이고,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영생(
永生)을 하며, 음성 언어대신 색채 언어를 쓴다는 것 정도를 알 수 있었을 뿐이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마음이 느슨해졌다. 루이가 바로 며칠 전까지 함께 지내던 바로 그 루이처럼 느껴졌다. 루이는 희진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희진의 뒤로 펼쳐진 노을을 보고
있었다.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 [p. 88]



 



이후 무리인들의 천적이 습격해 왔고, 다섯
번째 루이가 무기를 들고 이들을 막는 사이에 희진은 도망치는 대열에 휩쓸려 협곡을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원래의 협곡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도착한 또 다른 협곡에서 10년 만에 극적으로 탈출 셔틀의 신호를 수신해서 그 셔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탈출 셔틀에 탑재된 구조 신호 발신 모듈 덕분에 구조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화자(話者)
에게 있어 할머니인 희진의 얘기는 늘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게다가 그녀는 그 순간을 떠올리기 괴롭다는 이유로 마지막 순간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다. 할머니는
그 행성에서 구조 신호를 발신한 적이 없다. 할머니의 셔틀이 구조된 장소는 망망대해 같은 우주의 진공
한가운데였다. 할머니는 무리인들의 행성에서 10년을 보냈다고
했지만, 실제로 할머니가 구조된 건 조난 이후 40년 만이었다. 시공간 여행의 시차를 고려하더라도 할머니는 20년 이상을 다시 혼자가
되어 떠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할머니는 어떻게든 행성에서 멀리 떠날 방법을 찾아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도 그 행성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을 장소에 도달한 다음에야 마침내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인지도

[pp. 92~93]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희진은 지구인에 의해 ‘무리인’이라는
지적 외계 생명체들의 행성이 식민지화되는 것이 싫었기에 먼 우주 공간에 나간 뒤에야 구조신호를 보낸 것인 셈이다.






그녀의 선택이 이해가 된다. 다른 문명과의 평화로운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평화를 선호하고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과 접촉이
이루어질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처음 유럽인을 맞이했을
, 그들은 선의(
善意)로 소통을 시도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그 선의는 잔인하게 짓밟혔고, 사실상 그들의 멸족을 가져왔다. 19세기 제국주의 침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소통은 존재하지 않았고, 일방적인 강요만 남았다. 그렇기에 희진이 자신의 20년을 소모해서 자신이 방문한 행성의 위치를
숨기려고 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당신도 당신의 진정한 친구를 다른 이에게 착취의 대상으로 내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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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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