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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서리
- 작성일
- 2020.11.23
[eBook] 번역가 되는 법
- 글쓴이
- 김택규 저
유유
그래서 고? 스톱?
《번역가 되는 법》(유유, 2018)을 읽었다. 분량이 적은 책이라 부담이 적겠다 싶었더니 웬걸? 목차 1번부터가 ‘번역가는 왜 홀대받는가’다. 이건 홀대를 받는다는 말이잖아. 머리말도 심상치 않다. ‘전통 필자와 출판의 운명’. 대개 이런 단어를 현장 전문가가 쓸 때는 부정적이기 마련이다. 대충 분위기를 파악하고 출판 후기를 기웃거렸더니, 이 책은 ‘번역 지망생을 위한 냉정한 실전형 안내서입니다. 각오가 되셨다면, 책을 펼쳐 주십시오’ 란다.
과연 책에는 웬만한 각오로는 직시하기 힘든 현실이 가감 없이 나와 있다. 번역가가 받는 인세는 3?5%로 통제되어 있다, 번역 에이전시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독립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 출판사와 맺는 가장 흔한 계약금 지급 내용이 ‘출간 후 한 달 내 지급’이다…. 분명 들어서 아는 내용인데 다시 봐도 막막하다. 번역가는 창작자만큼은 아니라는 인식, 작은 인원으로 돌아가는 출판사가 ‘인간적’이라서 생기는 문제. 자유 경쟁 사회에서 ‘너무한 일’이 여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사회 곳곳에서 반복되는 ‘재발 방지 대책 요구’가 주는 씁쓸함은 여기에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 문제를 제외하면 번역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애매모호함을 덜어준 면도 있다. 번역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다. 지금 독자의 독서 습관에 부응하여 일정한 가독성을 성취해야만 독자에게 책을 읽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언어적으로는 완전한 ‘자국화’를 이룬 번역이 요구되고 있다는 대목이다. 직역과 의역을 뛰어넘어 일단 독자들에게 읽혀야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다. 저자가 출판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고 주로 기획을 통해 책을 출간한 번역가다 보니 설득력이 높다.
현재 업계 사정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번역을 왜 하는 걸까? 박봉에, 항상 마감에 쫓기고, 주변에서 인정해주지도 않는 형편이 가장 안 좋기 십상인 골수 프리랜서인데도 말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은 특별하지 않지만 아주 명확하다.
나는 번역을 많이 하지 않는다. 번역만 하면 생활이 어려워진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번역이지만 생활이 무너져 버리면 아예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원 박사 과정을 다니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장이었지만 책을 인세로 계약했다.
=책이 죽도록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십 년을 넘겨 계속 활동하고 있는 번역가는 극히 소수의 실력파뿐인 번역 업계에서 이 정도 애정은 가지고 있어야 일을 계속할 수 있나 보다. 외국 저자의 텍스트를 모국어 텍스트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창조의 자유가 저자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결국 ‘표현’이다. 흔한 질문 중에 ‘인간은 ___(이)다’라고 저마다 정의를 내려보라는 질문이 있지 않나. 그 빈칸에 나는 항상 1번으로 표현을 넣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남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아야 사회도 좋아질 수 있을 테니. 번역할만한 가치 있는 책을 통해 이러한 나의 표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써먹기 위해 해둔 메모 가운데 별 표시는 특히 ‘번역가의 미래’ 파트에 많다. 요컨대 콘텐츠와 독서의 흐름 변화에 주목하며, 종이책이 대부분 디지털 콘텐츠로 바뀌는 시대에 번역가도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선 이 책을 나부터가 전자책으로 읽었다. 휴대폰으로도 볼 수 있어 접근성이 좋고 종이책보다 2,000원이나 저렴한 데다 종이책을 사기 위해 배송을 기다리거나 서점까지 가지 않아도 돼 꽤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책은 종이로 읽어야 맛이지’라고 고집하다 뒤늦게 접한 전자책이었지만 말이다.
이번 경험을 통해 곧 해야 할 전자책 기획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종이책 출간 기획과 같은 편집으로는 힘들다는 것, 전자책 시장에서 유리한 장르와 편집 기술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번역 역시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영화〈타짜〉(2006)가 떠올랐다. 영화의 마지막 씬, 고니와 아귀가 생사와 자존심을 건 최후의 한 판을 앞둔 상황의 분위기가 나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기획서는 이력서보다 빠르니까.
후마니타스한테 한 장, 글항아리도 한 장, 시공사 한 장.
열린책들한텐 다시 한 장, 이제 은행나무에게 마지막 한 장.
막 업계에 뛰어드려고 하는 지금,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었다. 냉정하지만 정확한 현실 정보와 마음을 다잡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얻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래도 여전히 번역가를 지망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 각오는 해야 하지 않을까.
번역을 뭐 돈 벌자고 하나요~ 즐겁자고 하는 거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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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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