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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코츠
- 작성일
- 2009.4.23
동경만경
- 글쓴이
- 요시다 슈이치 저
은행나무
09.04.22
<요시다 슈이치> - 은행나무 \9,500
요시다 슈이치의 책.. 많이도 읽은 것 같다. <퍼레이드>, <일요일들>, <악인>, <7월 24일 거리> <사요나라 사요나라>, 그리고 이번에 읽은 <동경만경>까지.. 매번 느끼는 거지만, 요시다 슈이치는 ‘인간’의 모습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이따금씩 우리도 느끼는 감정이지만,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감정들을 잘 포착하고 표현해 내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은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지만, 나는 그 공간보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다. 이번 <동경만경>이란 작품도 과연 어떠한 인물들이 등장할지 궁금해 하면서 읽게 되었다.
일본 지리를 잘 알았더라면..
처음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을 때 조금은 산만하단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산발적으로 튀어 나오는 일본의 지명들 때문이었다. 일본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배경이 오버랩 되면서 그 이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겠으나, 나같이 그 지역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들어 본 것 같은데.. 라고 하면서 자꾸만 책장을 들었다 놨다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오다이바’의 경치를 느끼기 위해 네이버에 쳐보기도 하였다.) 하하, 물론 일본 작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치 우리나라 소설을 읽으면서 ‘아니 도대체 한강이 어떤 곳이길래 자꾸 나오는거야! 라고 떼쓰는 격이니.. 그저 짧은 내 지식을 한탄할 뿐이다. 음.. 요시다 슈이치는 오다이바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관광지란 곳이 기대완 달리 왠지 재미없는 곳’이란 걸 느끼기 위해 찾아온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저 오다이바에 가서 그곳의 경치를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상처 입은 남자’와 ‘사랑을 해보지 못한 여자’의 이야기..
타이밍이 좋았던 것일까, <동경만경>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긴 것처럼 느껴졌다. <동경만경>은 사랑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쉽사리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난다 하더라도 헤어질 것을 미리 대비하고 있는 남자 ‘료스케’. 그리고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에 사랑은 정말 진정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미오(료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뭐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료스케가 아오야마에게 느낀 감정처럼 ‘내가 그 때 이런 감정이었는데..’라고 깊은 공감을 하게 되었다. 마치 내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감정들(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려운 그런 감정들)을 끄집어내서 표현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된다. 학교를 다니다가 만나든, 소개팅을 하든, 아니면 료스케와 미오처럼 만남 사이트를 통해 만나든 말이다. 이렇게 만남의 방식은 정말 다양한데 왜 ‘사랑’을 한 순간부터는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일까?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오던 사람들의 만남인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이렇게 일정하게 흘러가기에 우리는 좀 더 파격적인 연애소설을 기대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불태우다가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는 그런 일정한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실 누구나가 이런 일정한 흐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번 쯤 ‘사랑’을 해보았다면, ‘이별’ 역시 느껴봤을 것이기에.. 그런데도 또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만남’을 너무 쉽게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에게 ‘빠지는 것’이 아니라 ‘탐닉하는 것’에 머무르는 수준의 만남.. 탐닉하는 것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푹 빠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꾸만 ‘사랑’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버렸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서로 탐닉하고 끝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에게 깊숙이 빠져 버렸기에 그 사람을 놓아 줄 수 없는 것이다. 불같은 사랑을 하면서도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 이전의 ‘이별’이 떠오르면서 ‘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변하지도 않은 것을 끊임없이 변하였다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결국 변하고 마는 것이다. 오지도 않은 ‘변화’를 걱정하다가 서로에게 짐을 떠넘기게 되는 것은 참 서글픈 일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사랑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변화를 걱정하는 그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럴 듯하게 글을 끄적거리면서도 결국엔 그놈의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 존재이기에 영원한 것은 없다.(어쩌면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이런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유한한 삶을 살고 있기에,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급해지지 말자. 조급해진다면 이 유한한 삶이 더 짧게 느껴질지도 모를테니까.. 그리고 변화를 수용할 줄 안다는 것.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그 사람에게 빠질 수 있게 되고,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그 ‘한걸음’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진다. 참..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이렇게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에 ‘사랑에 빠지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니.. 이것 참 미묘한 느낌일 따름이다. 앞서 말한 이런 저런 어려움을 느끼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렸을 뿐인데도 이렇게 웃음이 머금어 지는 것은 또 다시 미묘한 느낌이다.
“마음에 품고 있거나 생각한 일들을 정확하게 표현할 일본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p57
“‘빠지다’라는 말과 ‘탐닉하다’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탐닉하다’는 감각적인 문제지만 ‘빠지다’라는 건 영혼의 문제다.” - p120
“사람은 말야. 그리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진 않잖아.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보기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자기 뜻대로 꿈을 이뤄내는 것처럼 정말 대단한 일인 것 같아.” - p154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 고민하게 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어려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심플한거라서 그렇게 어려워하는지도 모르겠네요.” - p188
“계속 좋아하고 싶지만, 마음이 제멋대로 이제 싫증이 났다고 말하는 거야.” - p270
“사람이 좋아지는 마음은 반드시 언젠가는 옅어지기 마련이다. 먼저 마음이 시들해진 쪽이 상대에게 쫓기게 되고, 마음이 남아 있는 쪽은 이러쿵저러쿵 사랑을 이야기한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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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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