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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cehw
- 작성일
- 2021.1.12
내 방 여행하는 법
- 글쓴이
-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저
유유
역자 후기가 아니었다면. 아마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유쾌하면서 진지한 방에 대한 개인 성찰' 이라고만 생각했을 것 같다. '군인과 작가 말고도 또 하나의 길이 있었으니 바로 화가' (역자후기, p180) 라 했던 말을 생각하면서 한번 더 읽어보니, 뭐랄까 그래서 그림 이야기나 예술적 생각이 꽤 담겨진 문장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잠시간 고개를 끄덕여보게도 되었다. '자전적 산문' 을 읽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웠다. 특히 '방' 이라는 공간과 '여행' 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더욱더.
(그런데 왜 분홍색 표지였을까 싶은 여전한 궁금증이...)
초반부터 극공감이라 무르팍을 탁 쳐 버리고 말았다. 집이라는 공간, 특히 집 곳곳의 '방' 이라는 사면이 막힌 공간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삶이란, 그 방에서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의 인생이란, 얼마나 매력적이던가.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도 행복할 것' 을 작년부터 모토로 삼고 바야흐로 집콕시대를 견뎌내는 중인 나로서는, 아니나다를까, 이 말에 눈이 번쩍, 고개 끄덕,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 는 건 정말이지 사실이 아닌가! 하하하...
무엇보다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점을 이 여행의 미덕으로 꼽고 싶다. 눈여겨볼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점을 높이 치고 반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부류에 속하지만 돈이 한 푼도 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점에 더 환호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누구냐고? 누구긴, 바로 부자들이다. 병약한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인 새로운 여행법이 아닐 수 없다. 날씨와 기후의 변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여행법은 소심한 사람에게도 좋은데, 도둑을 만날 걱정도 없고 낭떠러지나 웅덩이를 만날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내 방 여행의 좋은 점
초반부터 너무 극공감;
그러나 '방' 이라는 공간, 그건 어떤 면에서는 좌절과 고통을 앉길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틀어밖혀서 은둔자로 외부든 내면이든 모두 단절된 채 생활할 수도 있을 '방'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작가의 '판화' 이야기를 지켜보며 그런 상상을 해 본다. 방은 누군가에게 절망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자신밖에는 없다는 것, 그러니 방은 죄가 없고.... 그 방에서 잘 살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할 뿐이고...... (계속 '방' 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읽다 보니 드는 생각들)
단테의 '신곡' 에 등장하는 우골리노 백작이 그 자식들과 함께 굶어 죽어 가는 모습을 담은 판화다.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무시무시한 적막 속에서 그와 그의 자식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겪고 있다.
판화들 중 판화그림과 함께 작은 각주로 달린 이 문장이 유난히 .... 떠오른다.
'지옥고' 가 현실이긴 하니까. (지하실, 옥탑방, 고시원)
작가만의 독특한 필력과 생각이 담긴, 그런 산문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내 방 여행하는 법' 은 '내 방을 여행하는 법' 이라는 BTS 의 노래와도 묘하게 매칭이 되는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해 보며...
이 방은 너무 작지 그래 나의 꿈을 담기에
침대 그 위로 착지 여기가 제일 안전해
어쩜 기쁨도 슬픔도 어떤 감정도 여긴 그저 받아주네
때론 이 방이 감정의 쓰레기통이 돼도 날 안아주네 또 나를 반겨주네
사람들 같은 내방 toy들 마치 시내를 나온 듯이 북적여
TV 소리는 생각은 생각이 바꾸면 돼
여긴 나만 즐길 수 있는 travel
낙관적으로 채워봐, I’m full
나는 오늘도 '집' 에서 잘 지낼 것을, 그리고 그 집 곳곳,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방이라는 공간에서, 그리고 그 옆에 식탁 위에서 이 글을 쓰면서도, 오늘은 어떤 방을 청소하나 그 생각을 하면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여행하듯 보내려 한다. BTS 가 이야기 해 주듯, '낙관적으로 채워봐' 라는 생각으로.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가 말해주셨듯. '그런 다음에는 다시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찾아 떠났다 (p 147, 서가) ' 라고 했으니, 나는 이제 이 글을 마치고 곧 책장 세 개가 나란히 배치된 그 방으로 여행을 떠나야겠지 싶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요 몇년 간 할 수 있었던 최선이고 최대의 '여행' 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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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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