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sk
- 작성일
- 2021.2.4
풍요중독사회
- 글쓴이
- 김태형 저
한겨레출판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풍요로운 현재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 책을 펼치게 하는 힘이었다. 역시 책이든 무엇이든 제목을 잘 짓고 볼 일이다. 그러나 그 제목에 반해 내용이 너무나 빈 깡통이면 실망이 크겠지만, 이 책은 충분히 제목값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이전에 비교해서 충분히 풍요로운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풍요가 대한민국의 구성원 전체에게, 아니 대다수에게 만족을 주는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선 총 7장으로 구성된 책 내용을 조금씩 살펴본다.
1장은 제목이 ‘모두가 승자인 동시에 모두가 패자인 사회’이다. 저자는 사회를 네 가지의 형태로 나누고 있다. ‘가난-불화’, ‘가난-화목’, ‘풍요-불화’, ‘풍요-화목’의 형태이다. 이 중에서 ‘풍요-화목’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형태는 이상에 그치고 있고, 그나마 조금 흉내 내고 있는 곳은 북유럽 정도이다. 우리 한국은 1970년대 전후로는 가난했지만 같은 위치에 놓인 사람들 간에는 화목하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가난을 벗어나기만 하면 ‘가난-화목’의 상태에 살 줄 알았는데, 돈이 계급이 되어버린 틀에 갇혀 풍요로운 사회에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되는 불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평등을 원하게 되었고 성장보다는 분배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평등하지 않기에 모두가 패자인 것이다.
2장은 ‘불안의 시대’를 설명하고 있다. 풍요-불화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국인은 다층적 구조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계층 때문에 나의 위계가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엄청난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여러 가지 주변의 평가라든지, 이로 인한 사회적 생명의 존폐를 느끼고, 나의 위계가 어느 순간에 떨어져서 갑질을 당할 수 있을지, 이로 인해 떨어진 자존감은 나에게 얼마나 충격을 줄지, 모든 것이 불안한 ‘풍요-불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책에서 근거자료로 삼는 것이 거의 2011년이나 2012년도 자료이니 지금은 더할 것이다.
3장 ‘불화 지수로 한국인의 정신건강 진단하기’에서는 우리의 정신건강이 어떻게 망가지고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가정의 붕괴는 아주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후의 정신적 보루가 깨지고 있다. 핵가족화되면서 가정공동체의 경제는 대부분 가장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된다. 사회에서 낮은 위계에 속하는 가장은 존중의 욕구까지도 깨지면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풀 확률이 높다. 이 망가진 가정에서 오는 아동학대의 경험이 학교로, 더 나아가 사회로 옮겨지면서 사회는 병들어갈 수밖에 없다. 불화 지수가 높은 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정신병이 나타날지 모르는 현실이다.
4장은 ‘존중받기 위해 돈을 욕망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제를 달고 있다. 존중불안과 추락불안의 위험을 느끼고 있는 부자들은 탐욕스럽다시피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은 한층 높은 위계로 올라가기 위해, 부자들은 그 위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돈을 더 벌려고 발버둥을 친다. 어느 쪽이 더 심각할까? 부자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저층에서 추락해서 털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인데 부자들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박살 날 것이다. 그래서 풍요-불화사회에서는 더욱더 돈을 향할 것이다. 화목 지수가 높은 사회에서는 안 그렇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예로 들고 있다. 바로 ‘네덜란드’이다.
5장은 ‘초라한 개인주의 사회’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풍요-불화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철저한 개인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아무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심리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청년들이 안정 중심으로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 사회는 그저 초라하니 사그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이러한 대열에서 가장 앞설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나는 다만 이 가설이 틀리길 바랄 뿐이다.
6장은 ‘인간은 왜 정의를 원하는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난다. 당연한 이야기다. 정의는 평등을 기초로 시작하고 있으니까. 풍요-불화사회 속에서 사는 인간들은 부의 불균형이 너무 심한 이 사회에서 정의의 마지막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최초로 나타난 정의, 우리는 그것을 도덕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원시 공동사회의 공평한 분배였다. 인간의 DNA 속에 새겨져 있는 평등, 그것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인간의 정의인 것이다. 아마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풍요-불화사회의 문제점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
7장은 ‘어떻게 하면 풍요-화목사회로 갈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생산력의 무한한 발전을 통해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사회에 이미 도달했다. 그런데 도달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사회에 큰 문제가 생겼다. 불화의 문제이다. 이것은 불평등, 엄청난 빈부의 격차에서 오는 박탈감 및 인간 존중의 상실마저 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들고 있다. 성경에서도 사도행전을 통해 원시 공산사회를 암시하고 있으니 대안이라면 대안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자신만의 것을 따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니, 성경의 원시 공산사회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이다. 저자는 소련식 사회주의 말고 사회주의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글쎄, 나는 북유럽의 사회체제를 빌려오고 싶다.
처음에 이 책을 선택했을 때는 제목만 보고 오늘날의 풍요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풍자적인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사회 현상을 다루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심리학책이었다. 나는 심리학책을 별로 안 좋아한다. 단지 사람들의 심리를 추측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맞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에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은 우리나라와 관련된 비극적인 추측들은 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그 옛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처럼. 그러나 책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를 감싸고 있는 풍요-불화사회는 불평등을 더욱 촉진해서 자칫 망국의 결과까지 이르게 할까 두렵다. 나도 진즉부터 비슷한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위기극복에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에는 불평등이 너무 심해 오히려 일본군 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들이 있다. 오늘날에도 이러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어떤 책이라도 쓸모가 있는 구절이 한 구절이라도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대부분 내용에 공감이 가는 이 책은 쓸모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 책을 소장하고 싶다. 그리고 가끔 꺼내 읽고 싶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빨리 이 사회 구조의 불합리성을 깨닫고 이를 타파하고자 노력하는 지도자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