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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dary
- 작성일
- 2021.2.6
수학의 함정
- 글쓴이
- 자비네 호젠펠더 저
해나무
1.
'수학의 함정 :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물리학자들' 이란 한글 제목과 '물라학자들은 수학이 아니라 수학의 선택에서 실패했다' 라는 책 소개만만 보면, '정통 수학자'인 저자가 '초끈이론, 초대칭' 처럼 관측과 실험 없는 물리 이론들을 대차게 깔것 같은 느낌이나 그렇진 않다.
일단 저자가 입자물리학(특히 표준모형)에 몸담고 있는 현직 '이론물이학자'다. 물론 이론물리학과 수학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곤 하나, 책 전반에서 (이론)물리학(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여기서 잠깐. 이론물리학자란 ?
실험물리학자 : 실험을 열심히 하는 물리학자
이론물리학자 : 실험을 하지 않는 물리학자
Experimenter: A physicist who does experiments.
Theorist: A physicist who doesn't do experiments.
라고 리언 레더먼 박사님이 '신의 입자'에서 말씀 하셨다... 물론 농담이다. 관측(실험) 내용을 설명하거나, 새로운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수학 모델을 만드는 중요한 사람들 이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론물리학에 '수학적 아름다움'이 필요한가(필수적인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그 대답을 위해 유명한(노벨상을 받거나 베스트셀러를 쓴), 혹은 덜 유명한(연구만 열심히한 ?) 물리학자와 기타등등 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다.
2.
인터뷰 내용과 함께, 어디선가 들어봤을 물리이론과 관련 내용들을 자연스레 소개한다.
CERN의 LHC, 표준모형, 대칭, 케플러/갈릴레오/뉴턴/아인슈타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빅뱅, 블랙홀, 우주론, 수정된 뉴턴역학,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여전히 수학으로만 존재하는 초끈이론과 초대칭, 아직은 신화의 영역인 다중우주, 개인적으로 끔직히 싫어하는 인류원리, 그리고 ToE(Theory of Everything) 등등등...
다행인건 적절한 비유와 유머로 풀어가는 설명들이 쉽고 재미있다는 것. 뭔가 술술 읽히고 다 이해할만 하다. 아니, 최소한 이해한다고 착각 하게 만들어 준다. 저자의 글쓰기 능력 덕분이다.
3.
현대 과학은 수학으로 서술한다. 미래에 수학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어떤것이 나올지 몰라도, 지금까진 분명하다. 수학을 발명하는 것인지, 발견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만, 수식이 실세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경외감이 든다.
지금껏 (대중)과학서적을 읽으면서, 수학적으로 '아름답다', 더 나아가 '우아하다'는 표현을 자주 봤다. 그런데... 객관성의 화신같은 수학에 주관성이 강한 '아름답다'라는 형용사가 어울리나 ?
고등학교 이과생 수학(집합으로 시작해서 통계로 끝나는), 전공때문에 어쩔수 없이 수강했던 공업수학/이산수학/수치해석이 끝인(심지어 100% 다 이해도 못한) 미천한 내 수학 실력으로는 느낄수 없는 경지일까 ?
수학이 정교하고 단단하다는건 알겠는데, 아름답다 ? 무슨 말인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책도 없었다.
4.
『대칭은 아름다운것으로 간주된다...(p72)』
『어떤 이론에 '자연스러운' 수만 포함되어 있다면 그 이론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p72)』
『자연스러운 수란 1에 가까운 수다. 부자연스러운 수는 '미세 조정된' 수라고 불린다.(p72)』
『자연스러움은 수학적 기준이 아니라 수학적으로 공식화된 미적 요건이다.....(p138)』
『이론물리학자들은 이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단순성, 자연스러움, 우아함을 사용한다....(p184)』
다행이도 어떤 이론이 '아름다운지' 책에서 설명해 준다. '단순'하면서 '자연스럽고', '미세조정'없이 세상을 설명하는 수학이 그러한가 보다. 뭐, 대충 느낌은 오는데, 누구한테 설명은 못하겠다. 고로 여전히 '수학'을 이용한 '물리이론'이 정말로 '아름다운'경우가 있는지... 여전히 내 이해의 바깥이다.
5.
저자는 물리이론에 아름다움이 유용한지를 넘어 정말 존재 하는지까지 인터뷰이들과 토론한다.
『우리의 개념이 물체의 실제 행동 방식과 일치할 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죠. 그래서 진화를 통해 정확한 것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 보상으로 제공되는 겁니다. 그게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고요. 그것은 우리가 계속하고 싶어 하는 그런 것이에요. 우리가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것이죠.(p233 프랭크 윌책)』
여러 인터뷰중 가장 그럴듯하다 느낀 대목이다. 아름다움이 진화를 통해 획득한 느낌이라면, (본능적으로)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론이 맞을 확률이 높다 정도로 이해 했다.
반면 저자는 시종일관 아름다움에 대해 부정적이다. 아름답지 않지만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은, 언젠가는 틀렸다고 밝혀질 이론인가 ? 라는 도발적인 질문까지 한다. 그리고 본인이 몸담고 있는 표준모형이 끔찍히도 아름답지 않음을 고백한다.
6.
여기까지만 읽으면 저자는 물리이론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입장인것 같다. 그러나 마지막 2장에 반전이(혹은 내가 혼자서 오해하고 책을 읽었을수도) 있다.
물리이론의 아름다움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이론물리학자들이 미학적 편견을 가지고 있고, 수학안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수학위에 또다시 수학을 쌓고, 계속 쌓아가는 노력으로 우아한 이론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설명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수학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그것이 진짜 문제인지 확실히 확인해야 한다.(p354)』
『어떤 이론이 정확한가를 알아낼 유일한 방법은 그 이론이 자연을 서술하는지를 확인하는것이다.(p355)』
『물리학은 수학이 아니다. 물리학은 옳은 수학을 선택한다.(p355)』
그리고 책의 끝은 이렇다. 결국 이게 저자가 하고픈말이였나 보다.
『우리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연법칙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양자적 행동을 이해해야 하고, 중력 또는 양자물리학을 점검해야 하고, 어쩌면 이 둘을 동시에 해내야 할것이다. 그 답은 틀림없이 새로운 질문을 낳을 것이다.(p355-356)』
『... 물리학의 다음 돌파구는 이번 세기에 발견될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울 것이다.(p356)』
7.
한동안 모든 대중물리학책은 기승전초(끈이론) 이였다. 초끈이론이 일반상대성이론(중력)과 양자역학(표준모형)을 통합해 결국 ToE를 밝혀낼 것이라는 희망적인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과학책 읽는 일반인'인 나는 그 말을 정말로 믿었다 !!! 비록 내가 이론의 수학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우주의 근본 법칙을 찾아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개념 정도라도 이해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을 내가 죽기전에 볼수 있다면 !!! 하는 혼자만의 꿈을 꾸고 있었다.
어라 ?? 하는 사이에 희망찬 시간은 지나갔고, 여전히 초끈이론의 완성버전은 없고, LHC에선 초대칭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초끈이론이 부분적으로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는 하나, 나보다 훨씬 똑똑한것이 분명한 그 수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이 수십년간 뻘짓을 했다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이또한 이론물리학자들의 미적 편견이 주된 이유라면... 글쎄. 이젠 다른 길을 찾아보는것도 좋지 않을까 ?
8.
제목의 아쉬움을 떠나서, '수학의 함정'은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내용의 깊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현대 물리학이 어디까지 와있는지를 정확히 설명하고, 많은 과학자들의 내실있는 인터뷰가 흥미를 더한다.
번역 또한 훌륭하다. 원서를 안(못)읽어서 얼마나 정확한진 모르겠지만, 일단 구글 번역기 돌린듯한 어이없는 문장들은 없고, 독자들이 잘 읽을 수 있도록 신경쓴 흔적이 보인다.
오랜만에 좋은책 읽었다. 시간 되시는 분들 한번씩 읽어봐도 절대 후회 안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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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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