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quartz2
- 작성일
- 2021.3.10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글쓴이
- 김누리 저
해냄
비교 대상을 잘못 골랐다. 굳건하게 유럽 대륙을 이끌고 있는 독일과 견주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한지. 다소 삐딱한 시선이 내 안에 일었다. 다른 나라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비롯하여 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보다 여러 발자국 앞선 국가들이 참으로 많았다. 일종의 고정관념이었을 수도 있고, 스스로를 얕잡아 보는 사고에 얽매인 탓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괜찮은 대한민국을 확인할 수 있었고, 동시에 개선해야 할 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방면에 걸친 문제의 원인으로 어느 하나를 꼽는 건 지나친 단순화일 테지만, 뒤틀린 근현대사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독일과 우리의 차이는 어쩌면 그 지점에서부터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직접 연관을 맺고 있는 나라다. 합법적인 선거 절차를 거쳐 히틀러는 정권을 손에 거머쥐었으며, 이 책에 의하면 장장 12년 동안 유럽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위대한 게르만족을 부르짖으며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세력이 행한 일은 실로 끔찍했다. 철저히 역사를 복기하고, 지난날의 과오로부터 무어가 됐건 하나라도 더 배우려 드는 게 독일인의 모습이라 알고 있었는데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들 역시 나치 부역 세력이 주요 자리를 독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저자는 변화의 계기로 68혁명을 언급했다. 1968년 변혁의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있었는데 독일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가 못했다. 새로운 흐름 속에서 독일은 과거와의 결별을 이루었다. 막대한 배상금의 부담을 짊어진 상태에도 오늘날의 복지 기틀을 확립했다. 원하는 때 언제고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학생이라는 이유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끔 생활비까지 제공하는 제도가 그 시절 태동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어마어마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머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에 도달한 우리는 여전히 파이가 충분히 크지 않았다며 성장을 강조하고 있는데,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복지에 더 투자를 한 그들의 선택은 실로 용기 있어 보였다. 무릎 꿇은 독일 총리의 모습과 이는 오버랩 돼 보이기도 했다.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로 인해 현재의 내가 초라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그와 같은 우려 섞인 시선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래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았다. 사람들은 사죄의 순간으로부터 진심을 발견했고, 독일은 세계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았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 대한 단상이 짙게 내 안에 자리매김한 탓인지, 해방 후 한 때 유효했던 개천에서 용 났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상고 출신이 사회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하는 일이 종종 있었을 정도로 한 때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은 자유로웠다고 저자는 진단했다. ‘사다리 걷어차기’로 표현될 정도로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상태에서 조금도 나아지지 못하는 오늘날은 학벌을 중시하는 풍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형적일 정도로 사교육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다. 국가가 방기한 교육을 사기업이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이와 같은 형태로 우리나라의 교육은 굳어졌다.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역색 또한 문제로 제기됐다. 몇몇 이들은 반기를 들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문제적 인물 ‘박정희’를 주저 않고 언급했다. 미심쩍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 이 인물은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의 미국화를 시도했다. 전 세계가 반대한 명분 없는 베트남 전쟁에 참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참전해 목숨을 잃었던 것도 어찌 보면 이 인물의 권력 추구 혹은 유지를 위함이 컸다. 한 번 생겨난 질서는 부수기가 어렵다. 이로부터 이득을 누린 이들은 변화에 온몸으로 저항하기 마련이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없는 형국은 자연스레 우리의 일부가 되었다. 현재 우리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 너도 나도 입에 달고 사는 “힘들다”, “불행하다”는 말은 개개인의 역량 부족으로부터 빚어진 게 결코 아니다.
좋고 싫음을 떠나 현 정권은 촛불 정권으로 인해 탄생했다. 저자는 정권의 정당성이 높은 만큼 개혁의 수위를 높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러질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좌파, 빨갱이 등의 용어가 난무하지만 오늘날의 권력 역시도 여느 국가와 비교한다면 우편향에 가깝다고 저자는 보았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연속성을 지닌 흐름이니 조바심으로 망쳐 버릴 순 없다. 앞으로 어떠한 방향을 바라보아야 할지 생각이 많아졌다. 일단 내 자신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 주변의 모두가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내일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