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march
- 작성일
- 2021.3.31
정원의 쓸모
- 글쓴이
- 수 스튜어트 스미스 저
윌북(willbook)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심신의 피로를 풀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인지 남편은 주말농장이라도 할까? 아니면 주택으로 이사가서 텃밭을 가꿔볼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파테크를 하겠다면서 화분에 파를 심고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있다. 파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고 집에 있는 화분들을 정성으로 키우는 모습을 보면 뭔가 행동을 해야하나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50대에 생산적인 삶의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80대에도 잘 살아갈 확률이 세 배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는데, 심각하개 고려해봐야하는 부분이 아닐까싶다. 흙을 파고, 자갈을 골라내고, 씨앗을 심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 내가 먹을 작물을 직접 거두는 기쁨은 얼마나 클까?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을 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도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본 듯 정확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의 카타르시스다. -p 20
손으로 일하는 것에 몰두할수록, 내면에서는 더욱 자유롭게 감정을 정리하고 해결한다는 저자는 육체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정신을 가꾸는 기분이라고 했다. 스마트 폰을 쥐고 있는 시간은 많아지고, 기다림 없이 모든 것이 빠르게 해결되는 지금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지고 정신은 쉬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인지 카타르시스라는 말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농경을 시작했던 고대 문명과 원예가 의미있는 일이 된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5세기 초 성 마우릴리오의 이야기, 식민지 원주민들이 식물을 대했던 자세등 원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는데,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의 한 대목도 있었다. 문학 작품의 한 장면을 통해서도 식물이 가진 생명력과 그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소설 마지막 대목을 보면, 핍과 에스텔라는 옛 새티스 하우스 터에서 우연히 만난다. 핍은 폐허에서 "지난날의 담쟁이들이 새싹을 틔우고, 폐허의 낮은 흙더미들에 초록색이 번지는 모습"을 본다. 자연의 재생에 관한 작은 신호를 통해, 우리는 핍과 에스텔라의 인생이 그렇게 엉망이 되지는 않으리라 감지할 수 있다. -p 58
저자는 심리적으로 '원예는 좋은 것이고, 그래서 정원은 있어야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과학적인 근거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과 자연이 사람의 행복과 정신 질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18세기 유럽에서 처음 조명을 받았다. 많은 원예 프로그램과 연구를 통해 원예가 기분을 풀어주고 자존감을 높이며 우울증과 불안을 완화한다는 강력한 결과를 얻어냈다고 한다.
여러 연구결과를 만날 수 있었는데,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에게 원예 치료를 하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향기로운 꽃과 식물들에는 진정시키고 고향시키는 효과가 있어 정원에 들어오면 안정을 찾게 되고, 햇빛에 노출되면서 비타민 D가 만들어지고, 햇빛의 청색광은 수면-기상 주기를 설정하며, 두뇌 속 세로토닌 생산속도를 조절한다고 한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의 배경이 되고, 기분을 조절하며, 공감을 높여주는 것이었다. 정원에서 흙을 파면 토양 속 다른 박테리아들의 직접적 활동을 통해서 세로토닌 조절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 뉴런, 세로토닌 등과 같은 대사물질들의 수치의 변화등 과학적인 근거로 정원의 쓸모를 알려주었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에서도 정원이 있고 없고는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연구 결과로서 보여주고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사고에 의한 장애, 약물에 의한 중독, 치명적인 병등 삶을 무너뜨리는 일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원예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난 경우에는? 폭탄이 떨어지고 참호에는 시체들이 쌓여가는 그런 전쟁터에서 씨앗을 뿌리고 키운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저자는 1차 대전과 관련된 치유적 원예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했다. 기원전 329년에 크세노폰은 페르시아 왕들이 "가장 고귀하고 가장 필요한 사업" 두 가지를 전쟁 기술과 경작 기술이라고 여겼다고 기록했다한다. 저자도 말했듯 전쟁과 원예는 서로 반대되는 느낌이라 의아한 마음도 들었지만, 전쟁도 불가피한 일이지만 생존을 위한 경작도 중요한 일임을 말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극단적 파괴의 현장에서 자연의 아름다움, 특히 꽃의 아름다움은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심리적 의지가 된다.-p 207
사상자로 넘쳐나는 구호소 옆에 주재 목사 워커는 정원을 만들었고, 영국 장교 길레스피도 독일군 탄피로 만든 화분에 제비꽃을 심기도 했다. 군 당국이 자발적으로 원예활동을 공식적으로 활용해 신선 농작물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영화 <1917>에서 두 병사가 모든 것이 파괴된 전장에 피어있는 체리나무 꽃을 보고 고향을 떠올리는 장면이 있었다. 약한 식물에 불과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가지게 할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1차 대전에 참전해서 피폐해졌지만 재활훈련의 과정으로 원예수업을 받았고 힘과 회복력을 되찾았다한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저자는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면서 몸소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워즈워스를 사랑하고 프로이트를 연구하던 ( 워즈워스와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고 있었다.) 수 스튜어트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가 되었다. 정원 디자이너인 남편을 만나 정원 가꾸기를 접했고, 정원에 매혹되었다. 원예로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한 할아버지의 경험을 실마리로 하여 식물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저자가 정원을 가꾸지 않았다면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몸소 체험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경험을 했기에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을테고, <정원의 쓸모>는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저 부제가 크게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 밖으로 펼쳐진 아파트 마당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변해나가는 정원의 모습에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편안해지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흙을 만지고 몸을 움직인다면 식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안은 더 크지지 않을까? 내 작은 정원 하나 만들고 싶다는 꿈 하나를 가져본다.
꽃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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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