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단리뷰

moonbh
- 작성일
- 2021.6.8
돌봄 선언
- 글쓴이
- 더 케어 콜렉티브 저
니케북스
돌봄선언(The care Manifesto)-상호의존의 정치학
미증유의 코로나19재난은 그림자처럼 취급돼온 우리 사회의 필수노동자들의 존재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과로로 쓰러진 택배기사, 요양보호사, 코로나와 싸우다 소진돼버린 의사, 간호사 등 돌봄노동자들, 우리 사회의 생명줄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돌봄이란 돌보는이는 물론 돌봄을 받는 이와의 관계다. 이는 공공의 영역이며, 국가와 사회의 책무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 확산, 확장 이데올로기 속에 민간서비스 즉, 이익을 위한 사업수단으로 전화, 변했다. 이 책은 이런 현실 상황을 극복해나갈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돌보는 관계들의 초국가적 글로벌 동맹을 제시한다. 세계인이여 일어나라고...
세상에 대한 돌봄은 모든 영역에서 사회인프라와 공유 공간의 재건과 민주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보적 운동과 기관들의 지원과 동맹을 확보하는 것이다(169쪽)
펜데믹은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데 결정적인 필수 기능들을 극적으로 또는 비극적으로 조명했다. 간호사, 의사, 택배기사들과 쓰레기 수거노동자들을 말이다(162쪽).
"돌봄이 이제는 개인적 관심사나 본질적 여성성에 대해 추측하는 도덕주의자들만이 몰두하는 주제가 아니다 돌봄 선언은 친족 구조, 젠더 구분에 따른 노동 분업, 생태적 활동의 변화를 향한 길을 만들고 진보적인 초국가적 기관들을 이끌어갈 상호의존원칙을 확실히 한다," 이 문장은 젠더?퀴어이론가요 철학자인 주디 버틀러의 추천사다. 이 한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돌봄의 양면성과 현실과 무관심한 친족들
돌봄 Care는 보살핌, 관심, 걱정, 슬픔, 애통, 곤경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 Caru에서 왔다. 단어의 이중적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 이는 살아있는 생명체의 요구와 취약함을 전적으로 돌본다는 것, 그래서 생명의 연약함과 직면하는 것이 어렵고 지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57쪽).
이런 돌봄은 인류공동체 속에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하나의 전통이자 통과의례였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이 돌봄의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양면성과 현실의 어려운 짊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었다. 공동체 틀 안에서는 복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고통을 분담했기에 다소 숨 쉴 여유라도 있었지만, 1인 가구, 핵가족 원자화된 사회에서 돌봄이란 여성들에게 아주 버거운 일이 됐다. 긍, 부정적인 감정 모두가 돌봄 실천과 돌봄 역량에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다. 이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든 멀리 있는 사람이든 우리가 다른 이를 돌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 그것이다. 생존의 압박에 맞닥뜨린 부모와 또 다른 돌봄의무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 외부에 있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기는커녕 그들이 돌봄에 의존하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친족 단위에서 전 지구적 수준에 이르기까지말이다. 돌봄에 공공예산이 쓰여야 하는 이유다. 돌봄 관계로 엮여있는 부정적인 정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60쪽)
무늬뿐인 돌봄, 무관심한 국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상적인 시민이란 자율적이고 기업가적이며 실패를 모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렇게 정의된다). 그리고 이들의 승승장구는 복지국가의 해체, 민주적 제도와 시민참여의 와해를 정당화한다. "돌봄"이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는 생각은 우리의 상호취약성과 상호연결성을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30쪽)
보편적인 돌봄
이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모든 돌봄이 우리의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친족,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 되는 것을 의미한다(41쪽).
돌보는 정치와 친족, 공동체 그리고 국가
누군가를 신체적으로 직접 돌보는 대인돌봄, 누군가의 안위를 염려하며 마음을 쓰는 정신적 돌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이념과 활동에 참여하는 정치적 돌봄(조앤 트론토의 구분), 돌보는 정치는 이런 과정에 더해 넓은 의미에서 페미니즘, 퀴어, 반인종차별주의, 상태사회주의 관점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48쪽). 돌보는 친족과 돌보는 공동체를 어떻게 재생,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을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돌봄에서 친족의 개념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은 전장에서 군의관이 돌봄의 의무를 부상당한 적군에게까지 확장하는 것과 같다(77쪽).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어서 돌봄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인가,
우리는 돌보는 공동체를 조성하는 데 네가지 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상호지원, 공공 공간,공유자원과 지역민주주의다(90쪽). 이들을 어떻게 확장해야 할 것인가, 돌보는 공동체는 민주적 공동체다, 그 예를 참조(104쪽)하라.
이 책은 돌보는 공동체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동체는 사람들의 시간이 남는 시간을 신자유의자 만들어낸 돌봄의 공백을 메우는데 사용하는 것을 절대 의미하지 않는다(110쪽). 사람들의 돌봄 역령을 확장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기업의 횡포에 종지부를 찍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아웃소싱을 인소싱으로 대체하는 지방자치 돌봄의 유형들을 포함한다(111쪽).
돌보는 국가는 돌봄이 집안일, 그리고 여성의 일이라고 여기는 전통 성별 분업의 개념을 넘어서게 한다. 돌봐야 하는 필요, 또 돌봄을 받아야 할 필요는 모든 이가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122쪽).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세상은 성차별적, 인종차별적착취를 허용하는 오래된 국가적 가부장주의를 없앤다. 또한 뿌리 깊은, 그리고 최근 사람들의 이동을 위해 국가의 경계를 느슨하게 함에 따라 더 극성인 종족민주주의에 맞서고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한다. 초국가적 글로벌 동맹으로 돌봄에 나설 것은 선언하고 있다.
이 책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책이다. 당위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형해화돼가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면서도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할 수도 있어서다. 하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사회의 돌봄은 하잖은 일이 아니며,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 지역사회가 국가가 세계적 규모에서 뭔가 틀을 다시 짜야 할 때가 왔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 울림이 더 클 수 밖에 없을 듯하다. 필수노동자들은 기준 외다. 적어도 승승장구하는 우리 사회의 메이저들로부터는...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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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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