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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찾사
- 작성일
- 2021.6.8
우연히, 웨스 앤더슨
- 글쓴이
- 월리 코발 저
웅진지식하우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내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거의 예외 없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와 사물들을 찍은 것이다. 솔직히, 내가 찍고 싶은 사진들이다. (중략)
이제 나는 우연히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이해한다. 의도적으로 내가 된다는 것이 어떤 건지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과연 그것이 나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특이하고도 매혹적인 풍경들을 발견하고 공유해준 이 모임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한다.
- 웨스 앤더슨
시각적 효과를 중시하는 영화에서 화면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 [추격자]에서 쫓고 쫓기는 그 명장면이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그 긴박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던 골목이 있기에 가능했고,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경북 군위에 위치한 작은 농가가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아기자기한 느낌을 담아냈다. 세트를 제작하여 촬영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서 섭외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로케이션 매니저'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일을 수행한다고 한다.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영화 감독이 원하는 장소를 찾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영화를 통하여 그 이야기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다양한 배경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장소를 실제 찾아가면 반가우면서도 영화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때가 많다. 조명을 비롯한 영화 속 미장센과 배경이 되는 장소가 조화를 이룰 때, 영화 속 한 장면이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미장센이 배제된 일상의 그 장소를 영화를 볼 때와 같이 완벽하게 느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강렬한 파스텔톤의 색채로 장식된 건물과 배경은 실제 보더라도 이내 그의 영화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핑크를 비롯한 파스텔 색감이 건물을 표현하다보니 관객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이 책의 서문을 쓴 웨스 앤더슨의 말처럼 그의 영화에 매료된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는 세계 곳곳의 실제 존재하는 장소 또는 건물들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 그의 말처럼 이 책 속의 사진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웨스 앤더슨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대칭적인 선이든, 파스텔 색조든, 완벽한 구도든, 아니면 뭔가 단번에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하고 아름다운 것이든,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스타일이 있다. 그렇다면, '우연히' 그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는 세계 곳곳의 '진짜' 장소들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 p. 15 中에서 -
이 책의 시작은 웨스 앤더슨에 대한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덕질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현재에는 140만명 이상)이 모여 '엑시덴털리웨스앤더슨(AccidentallyWesAnderson)'이라는 국제적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졌고, 이 커뮤니티에서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로 인하여 이 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UNITED STATES & CANADA (미국 & 캐나다)
LATIN AMERICA (라틴아메리카)
CENTRAL & WESTERN EUROPE (중부 유럽 & 서유럽)
UNITED KINGDOM & NORTHERN EUROPE (영국 & 북유럽)
SOUTHERN & EASTERN EUROPE (남유럽 & 동유럽)
MIDDLE EAST & AFRICA (중동 & 아프리카)
SOUTH, CENTRAL & EASTERN ASIA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OCEANIA (오세아니아)
ANTARCTICA (남극)
총 9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의 호텔의 실제 배경은 독일이고, 전반적인 이야기의 배경 역시 동유럽 국가 중 하나로 추측되기 때문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사진 속 장소는 대부분 유럽에 속해 있다. 실제로 체코의 프라하에 있는 '오페라 호텔'은 개인적으로 영화 속 그 호텔과 상당히 유사해 보였다. (참고로 책 표지의 호텔 사진은 스위스의 '벨베데레 호텔'이다.) 또한 노르웨이의 '플롬 철도'는 영화 속 장면에 등장하는 열차 안의 배경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무래도 한국인인 나로서는 아시아에 등장하는 사진들에 먼저 눈길이 쏠렸지만, 아쉽게도 한국과 관련된 사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의외로 북한의 장소를 찍은 사진들이 소개되었는데, 1973년경에 촬영한 평양 지하철의 '개선역'과 1989년경에 찍은 '만경대 소년궁전'이다. 특이하게도 평양의 '개선역'은 그 내부가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다. 우리가 평소 갖고 있던 북한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보여준 핑크빛의 느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서 실제 영화로 촬영이 되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만경대 소년궁전'은 무대의 뒷면을 가리는 커텐의 강렬한 빨간색이 '플롬 철도'와 마찬가지로 강렬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에 이 또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연상케 하고 있다.
파스텔톤의 색상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지만, 사실 건물에 활용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한국의 장소 또는 건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파스텔톤 색상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스 앤더슨 감독은 그러한 색상을 영화의 전면에서 다양하게 활용하여 연출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팬심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리뷰로 이 책에 등장하는 다수의 비현실적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다양한 사진들을 직접 언급할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이 책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보고 직접 읽어야 그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엊그제 운전하는 도중에 쉽게 볼 수 없는 핑크색으로 색칠된 시골집을 보고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는데,(결국 운전 때문에 찍지는 못했지만) 이는 나 역시 바로 이 책에 매료된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색감과 미학을 실제 존재하는 장소에 대한 다양한 사진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미처 담아내지 못한 사진들을 더 보고 싶다면 'AccidentallyWesAnderson'으로 검색해보면 된다. 그러면 이 이름으로 된 인스타그램에서 더 많은 사진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곳의 많은 사진을 접하게 된다면 왜 이 책의 서문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이 자신이 직접 찍고 싶은 사진들이라고 말했는지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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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