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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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빈틈의 온기
글쓴이
윤고은 저
흐름출판
평균
별점9.5 (38)
드미트리

윤고은 소설가님의 전작주의자다. 대학생 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한창 여러 문학상 수상작을 다 읽을 때였다. 『무증력 증후군』을 읽은 뒤로 작가님 팬이 되서 선생님의 전작주의자로 살고 있다. 두 번째 달, 세 번째 달이 뜨면서 벌어지는 지구상의 여러 에피소드를 유쾌발랄하게 쓴 작품이었다. 그 뒤로 윤고은 작가님이 펴낸 작품은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기괴한 설정이 그 특징이었다. 문학이 상투성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윤고은 작가님은 자신만의 훌륭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계셨다.



 



등단 후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무려 첫 에세이집이다. 제목의 '빈틈'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실수, 착각, 오해다. 작가님은 자신이 이런 빈틈이 많은 사람이라고 밝힌다. 이런 에피소드를 담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뜻한다. '윤고은의 EBS 북카페' 진행자로, EBS에 출퇴근을 지하철로 하신단다. 아, 그래서 책 표지에 지하철이 그려져 있었군.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확실히 다르다. 문장과 사유의 클라스가 다르라고 할까. 『빈틈의 온기』에 실린 여러 편의 글은 삶이란 계획과 실행, 완수와 성공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그렇지 못한 빈틈으로 채워진다고 말한다. 에피소드 중 많은 내용이 지하철에서의 풍경과 사색을 담았다. 마찬가지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나에게도 울림이 큰 에세이였다. 작가님의 팬으로서, 이 책에 공개한 작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



 



오래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공테이프를 그 안에 넣어두었던, 그러다 재빨리 눌렀던 그 기다림과 속도가 여전히 내게는 필요하다. 매혹적인 순간은 예기지 않게 찾아오고 금세 휘발되니까 빠르지 않으면 놓친다. (22쪽)



우연히 만나 돈독해지는 이런 경험이 내 삶에는 너무 많다. 한 차례의 돌발로 끝나지 않고 아무리 교정을 해도 계속 반복되는 오류도 있다. (54쪽)



 



좋은 밤 보내라는 말은 흔한 인사 같지만 대부분의 흔한 인사가 그렇듯이 곱씹을수록 아름다운 말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최소한의 평온함이라도 더해주고 싶은, 십시일반의 마음 같기도 하다. 잠의 입구에서 누리는 따뜻한 배웅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밤을 건너갈 힘을 얻는다. (71쪽)



 



너무 오래 멈춰 있으면 재기가 힘들어지는 건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물에게도 교체와 회복의 시한이 있다니, 그건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고 어찌 보면 피곤한 일이다. 내 몸 하나뿐 아니라 소유한 물건들까지 다 돌아봐야 한다는 거니까.(74쪽)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 시절 스쳤던 사람들은 기억할까, 삐삐신발을 신고 비둘기를 쫓던 아이를. 누군가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어 남산 일다에사 가장 키가 컸던 그 두 살 아이를.



혹시 나를 기억할 수 없어도 모두 안녕하시길. 우리가 언젠가 또 한번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면, 한 번 더 안녕하시길. (100쪽)



 



낮이 지고 밤이 스며드는 시간에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새삼 깨닫는다. (136쪽)



 



사랑과 이별, 행운과 불행이 미리 신호를 보내는데도 우리가 알아챌 수 없다면, 그건 우리 삶 너머의 주파수라는 얘기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신호를 감지하고 싶어 하지만 인간의 귀와 피부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또렷한 신호를 보내는 씩씩한 고철 덩어리, 우리의 지하철이 얼마나 만만하고 든든한가. 심지어 내릴 곳도 성실하게 안내해주니까. (143쪽)



 



똘끼가 아니다. 그건 그냥 퇴근의 힘이다. (148쪽)



 



오류와 실수, 착오와 오작동이 내포한 우연성이 나를 설레게 하고 그 헛발질을 기록하게 한다. (245쪽)



 



아무도 묻진 않았지만, 당신 책을 어디서 읽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당연히 지하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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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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