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리뷰

쿠니토리
- 작성일
- 2021.7.6
악령 (중)
- 글쓴이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
열린책들
<악령 상권>을 읽으면서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비해 가독성이 좋고 몰입도가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악령 중권>은 19세기 중후반 러시아를 뒤흔든 사상과 사조를 느낄 수 있었다. 인물들이 내뱉는 문장들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대두와 사회주의 사상이 민중에 스며드는 방식을 접했고 전통적 가치라 할 수 있는 신앙과 위계(hierachy)가 위협받고 있음을 보게 됐다. 게다가 글을 읽을수록 니체가 도스또예프스키를 찬미한 이유와 니체의 사상에 스며든 도스또예프스키의 흔적을 떠올리게 된다. 아래에 적을 몇개의 문장은 <악령 중권>에 쓰여진 많은 문장 가운데 내 뇌리를 명료하게 자극한 것들이다. 그리고 생각을,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들이다.
참된 진실이란 항상 진실 같지 않아 보인다네. 자네 그걸 알고 있나? 진실이 보다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필히 그것에 거짓을 섞어야만 하지.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행동해 왔네.
- 이 문장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보의 과잉과 조작이 용이한 시대라면 얼마든지 진실은 감춰지고 만들어지고 조작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얼마간의 진실을 첨가해 교묘하게 사람을 농락하는 거짓의 실체를 현재의 우리는 발견해 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았다.
사상에 대하여 -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좋은 것이네.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좋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에게 좋은 것이지만, 자기들에게 좋다는 것을 모른다면 그들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네. 이것이 사상의 전부일세. 더 이상은 아무것도 없네.
- 어떤 사람에게 스며드는 사상은 그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을 도스또예프스키는 '좋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도 누구를 따르는 것도 어떤 원칙을 지키는 것조차도 결국은 내 내면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함임을 안다. 선행을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선행이 주는 기쁨으로 나를 만족시키기 위함의 발로다.
조합의 회원 각자는 서로서로 지켜보고 밀고할 의무가 있다. 개인은 전체에 속해 있고, 전체는 개인에 속해 있다. 모든 사람은 노예이며, 노예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중상과 살인도 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평등이다. 우선 할 일은 교육과 학문, 재능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학문과 재능은 고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런 고도의 능력은 필요없다! 고도의 능력은 항상 권력을 장악하고 전제 군주가 되어 왔다. 고도의 능력은 전제 군주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익을 주기보다는 항상 더 많은 타락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들은 쫓겨나거나 처형당한다....(중략) 노예는 평등해야 한다. 전제주의가 없는 곳에는 자유도 평등도 아직 없었지만, 가축 떼 속에는 틀림없이 평등이 있다.
사회주의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대사라 생각한다. 지배계급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하지만 결국 도달한 곳은 소수의 지배자를 제외한 사람들은 하향평준화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말 감미로운 단어로 매혹하지만 실질적으로 선동당한 민중이 도달하는 곳은 가축 떼와 다름없는 하위의 자유와 평등이다. <악령 중권> 후반부에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을 묘사한 장면이 나온다. 그들의 모임은 어수선하고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 모임의 참석자였던 시갈료프의 말을 빌자면 많은 역사적 위인들의 업적을 토대로 현대를 대체할 미래사회를 구상했더니 무한한 자유로 시작했는데 무한한 전제주의에 도달했다. 이것은 초기 사회주의가 구상했던 인민의 해방이 되려 인민의 족쇄가 돼버리고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국가들의 참담한 실패를 예언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갈료프는 주장한다. 수많은 인민이 죽어야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대상은 자신들의 사상에 반대하거나 반대할 것 같거나 혹은 너무 똑똑한 자들이다. 계속해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가축의 세상을 이룰 수 있다.
<악령>을 읽노라면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 얻었던 혼란을 일소하고 도스또예프스키에 감탄하게 된다. 내용도 재밌지만 그 안에 담긴 다양한 군상의 대화가 생각을 하게 유도한다. 재밌는 책이다. 그리고 훌륭한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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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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