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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도
- 작성일
- 2021.7.7
다크 챕터
- 글쓴이
- 위니 리 저
한길사
*스포일러 포함
“저자, 위니 리의 말대로 성폭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도 문화권도 없다. 모든 집단 내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서, 아는 사람에게서, 아니면 모르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할 수 있다. 성폭력은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크 챕터>의 출간을 통해서건, SNS를 뒤덮은 해시태그의 형식으로건, 삶에 함부로 끼어드는 이런 폭력의 경험은 언젠가는 결국 드러날 운명이다.
성폭력 이후의, 그리고 고백과 고발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 시점이다. 성폭력 경험을 용기내서 발설한 이들은 이후의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여러 가지 공격적인 편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에게서 보복성 고소 위협이 뒤따랐다. 삶을 다시 재건하기 위한 의료조치를 포함한 여러 차례 치료세션을 받아야 하는 것도 이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도 모두 피해자의 몫이었다. 용기를 내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었다. 피해를 감당하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라는 사실이 가장 이상하고 슬펐다.” - 옮긴이
그저 어린 10대 소년에게 길을 알려주느라 말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건 호감의 표현-“나를 알고 싶어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니었냐는 그저 어이없기만 한 가해자의 판단에 성폭행을 당한 주인공이 가해자가 처벌받도록 하기 위해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읽으면서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놓은지 모르겠다.
<낯선 도시에서 일어난 중국계 미국인에 대한 범죄>라는 타이틀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흥미로운, 안타까운 이야기 거리가 됐을 뿐이다. 이 속에서 모든 걸 감당하는 건 주인공 혼자였다. 자신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추측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해자를 법정에 불러내기 위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곁에 친구가 있다고 한들, 나를 응원해주고 걱정해주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고 한들, 온몸이 뻣뻣해 머리 위로 옷을 벗기기가 힘든 상황도, 표정 없는, 피곤한 얼굴로 여기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으로 앞만 보며 증거 사진을 찍는 상황도, 아픈 기억을 수차례 끄집어 내어 스스로의 입으로 몇 번이고 그 날의 일들을 뱉어내야 하는 상황도 모두 자신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결혼한 친구의 사진을 보면서 기쁨 밑으로 더욱 아래로 침잠하는-‘둘의 존재는 행복의 비행기에 실려 앞으로 나아가고 그녀의 존재는 저 아래 흙무더기와 절망 속에서 좌초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기분을 느끼는 주인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가해자를 심판하고 벌을 내리기 위한 재판 상황에서까지, 변호사와 가해자는 그녀에 대한 모욕을 멈추지 않으며 검사도 은연 중에 피해자다운 태도를 요청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자다움’을 강요받는다. 피해 사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순식간에 그를 이상한 사람 등의 원색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 이유는 ‘피해자다움’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술에 취해있다면 피해자 기억을 의심하고, 맨정신이었다면 피해자의 선택을 의심한다. 이 생각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충격과 공포감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폭력 해결을 가로막는다. 성폭력피해자의 담담하고 침착한 모습에 ‘성폭력 피해자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또는 ‘성폭력피해자라면 ~ 할 것’ 이라는 생각은 성폭력에 충분한 이해가 아닌 그저 그들의 왠지 그럴 것만 같은, 그저 “느낌”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 상황에 대해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성폭력피해자들도 한가지 행동만을 일관적으로 택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 상황에 처했을 때, 강하게 저항을 하기도 하고, 가해자의 지위 또는 목숨에 위협을 느껴 얼어붙기도 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판단 때문에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이 가해자에게 “괜찮아, 아무에게도 말 안 할게.” 라고 말하며 돌려보낸 뒤, 몇 십분을 기다려 가해자가 나타나지 않자 그제서야 눈물을 마구 흘리던 것처럼.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되찾고자 노력한다. 이것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공포와 불안감으로 일상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고, 이전과는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며 다행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다시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자신이 항상 좋아하던 하이킹을 다시 시작하고, 낯선 이성과의 만남에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범죄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일테지만, 그런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그저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가혹한 낮은 형벌, 피해자를 도와주는 여러 제도 등 가시적인 여러 시스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에 깔려있는 여러 고정관념의 변화, 피해자에 대한 깊은 이해 또한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중요한 가치임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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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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