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2025

이야기
- 작성일
- 2021.7.8
순수의 시대
- 글쓴이
- 이디스 워튼 저
열린책들
왜 순수의 시대인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이었다. 뉴랜드 아처의 올렌스카 백작 부인에 대한 사랑이 순수하였기에 순수의 시대일까? 아니면 뉴랜드를 질리게 만든 메이 웰랜드의 순수한 눈을 은유해서 결국 뉴랜드의 인생은 메이 아처가 차지해서 순수의 시대인가? 아니면 역설적 제목일까? 뉴랜드가 엘렌을 사랑하면서 메이와 결혼하였던 것에 대한 역설적인 말일까.
올렌스카 백작 부인이 뉴욕 상류층에 처음 등장하면서 추문을 달고 왔으며 거기에 불쌍하게까지 여겨졌다. 그런 엘렌의 편을 들기 위해 뉴랜드는 메이 웰랜드와 약혼을 발표했다. 메이네 부모는 결혼을 1년 가까이 미루고 약혼 기간을 길게 보내기를 원했지만 뉴랜드는 메이에게 계속 결혼을 재촉했다. 하지만 뉴랜드의 진심은 엘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메이에게 진심을 말하고 파혼할 수 있었을까? 결혼은 갑작스럽게 앞당겨졌고 뉴랜드는 받아들였다. 결혼 후 한동안 엘렌을 보지 못하고 지냈고 메이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다시 엘렌을 만나서 함께 멀리 떠나려는 마음을 먹을 때 엘렌이 뉴욕의 사교계를 떠나 파리에 정착하기로 결정한다. 엘렌을 위한 만찬이 아처 부부의 집에서 열렸고 뉴랜드는 그 자리에서 뉴욕 사교계 모두가 뉴랜드가 엘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뉴랜드가 엘렌에 대한 진심을 메이에게 말하려 할 때 메이는 임신 소식을 알렸다. 엘렌은 떠났고 뉴랜드는 메이 곁에 남았고 2남 1녀를 낳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메이도 죽고 장성한 큰 아들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다정다감한 아들은 뉴랜드를 알뜰히 챙겼고 엘렌과의 만남까지 아버지를 위해 준비한다. 어머니인 메이에게 들었다면서. 뉴랜드는 엘렌을 마주하지 못한다. 아들만 들여보내고 호텔로 돌아간다. 그 순간 뉴랜드가 엘렌을 뜨겁게 사랑했던 그 후에도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그 시간들이 '순수의 시대'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표지 날개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뉴욕 상류층이 점잖고 온화한 문화와 엄격한 도덕 속에 얼마나 정교한 위선과 억압의 기제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 주는 이 소설은 ...... " 엘렌은 뉴욕 상류층의 이 모든 것을 깨뜨리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보퍼트는 엘렌에게 친절했지만 바람둥이였고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운 엘렌을 좋아하지 않았다. 뉴랜드는 엘렌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했지만 뉴랜드 또한 어쩔 수 없는 뉴욕 상류층이었다. 엘렌이 떠나지 않았다 해도 뉴랜드가 메이를 버리고 엘렌을 택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디스 워튼은 '점잖고 온화한 문화, 엄격한 도덕'에 상반되는 '정교한 위선, 억압의 기제'를 세밀하고 세심하게 곳곳에 배치한다. 엘렌은 뉴욕 상류층이 자신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흔들림이 없는 여인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올렌스키 백작에게 받은 억압, 그리고 백작을 벗어나면서 겪은 일들 속에서 되찾은 것들과 잃은 것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엘렌과 뉴욕 상류층의 대립과 그 가운데 흔들리는 뉴랜드의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진 <순수의 시대>는 커다란 사건 없이도 재미있게 읽힌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