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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1.7.13
아무튼, 발레
- 글쓴이
- 최민영 저
위고
아무튼 발레.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최민영
☆☆☆☆
취재기자. 2000년부터 신문사에서 일해왔다. 이달의 기자상도 여러 번 받았지만 여전히 적성에 맞는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마흔 살을 코앞에 둔 2015년부터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2008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
2010년? 예술의 전당에서유니버설 발레단 공연. 그때 아마 문선명씨를 슬쩍 본 기억이 난다.
2011년? 빼짜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뭘 봤는지 기억안남.
인생에서 발레 공연은 3번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맨처음 봤던 호두까기 인형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의 표현처럼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점프가 아직도 잔상이 남아있다.
그래봐야 발레가 뭔지 알겠나?
딸을 낳은 덕에 동네 발레학원가서 기다린게 전부고,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였다. 최근에는 무용을 전공한 친구에게 발레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을 들은게 전부고.
어퍼컷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책에서 여자 수학 선생님이 권투를 시작하게된 장면이 인상깊었다. 하루 24시간 중에 나에거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1분 1초도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권투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는 거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일상에 치이고 찌든 저자가 병원을 찾게되고 치료중에 이런이야기늘 듣는다.
“물론 노력하는 건 좋죠. 하지만 세상에 자기 자신을 소진시킬 만큼 중요한 직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직장은 내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곳이에요. 나는 받는 돈만큼 내 노동력을 제공하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직장하고 학교는 다른 거죠. 학교는 내가 수업료를 내고 내 성적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거고, 직장은 내가 일하고 돈을 받는 거니까 굳이 그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이런 다짐을 한다.
. 나는 공회전을 멈추기로 했다. 퇴근 후나 휴일에도 눈만 뜨면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강박적인 습관도 버렸다. 삶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길 그치고, 매일 만나는 소소한 순간들을 세상의 모든 게 첫 경험인 아이처럼 즐기기로 했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한계도 인정했다. 애당초 그런 부담감은 사실 누구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자기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돌아보게 됐다. 난생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기어이 발레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슬프고 화나는 날에도 꾸역꾸역 발레를 하러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시간 반 동안 풀업을 하며 몸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의 감기에 걸렸을 때도 발레는 빼먹지 않았다. 덕분에 상태가 빨리 나아졌다. 물론 어떤 운동이든 꾸준하게 하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발레를 하면서 자신의 몸에 집중하면서 드는 생각을 이야기 하는 문장들은 역시 취재기자 답다는 생각이 든다.
. 솔직히 발레를 배우기 전에는 90도 아라베스크가 그리 어려운 건가 싶었다. 그런데 처음 해본 순간, 이베리코 돼지 뒷다리살로 만든 하몬 한 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다리가 무겁기 짝이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다리를 들어올리면 몸통이 앞으로 기울
고, 몸통을 세우면 다리가 내려가는 인간 시소가 되기도 했다.
. 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180도 다리찢기가 가능한 고관절의 유연성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게다가 고관절과 스트레칭은 안중근 선생과 독서와의 관계와도 같아서 하루라도 거르면 예전의 뻑뻑한 상태로 돌아가 시치미를 뚝뗀다. 정직한 몸, 진짜 얄밉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깨달음도 얻는다.
. 짬 나는 대로 실제 팔다리의 코디네이션을 연습했다. 그러자 동작이 저절로 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남 하는 걸 백날 관찰해 봤자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불완전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보는 게 중요했다. 무작정 했던 이전의 노력은 진짜 노력이 아니었다. 노력을 쏟는 그 방향이 정말 맞는 건지, 노력하는 방식이 정말 효과적인 것 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는 게 필요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더 나아질 거야' 라는 자기 주술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책에는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문장들이 참 많다.
. 발레에서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다. 그건 우아함의 본질이도 하다. 격렬한 감정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뒤 한 단계 승화하는 것이다. 무대위의 발레리나는 어떤 순간에도 배역이 아닌 무용수 자신의 불안이나 통증을 날 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몸으로 창조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에 집중하다 못해 우울하게 자기 자신을 파먹지 않나요. 하지만 진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단순한 생의 원칙에 따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요. 몸이 진짜예요.”
. 발레에 관한 바스티앙 비베스의 그래픽노블 『폴리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항상 핑계를 댄단다. 좋은 핑계도 나쁜 핑계도 없어.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진 거야.”
. 나 자신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사실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원
하던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사랑이 어긋났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 당했을 때, 그건 넘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 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 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
최민영
☆☆☆☆
취재기자. 2000년부터 신문사에서 일해왔다. 이달의 기자상도 여러 번 받았지만 여전히 적성에 맞는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마흔 살을 코앞에 둔 2015년부터 취미 발레를 시작했다.
2008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
2010년? 예술의 전당에서유니버설 발레단 공연. 그때 아마 문선명씨를 슬쩍 본 기억이 난다.
2011년? 빼짜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뭘 봤는지 기억안남.
인생에서 발레 공연은 3번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맨처음 봤던 호두까기 인형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의 표현처럼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점프가 아직도 잔상이 남아있다.
그래봐야 발레가 뭔지 알겠나?
딸을 낳은 덕에 동네 발레학원가서 기다린게 전부고,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였다. 최근에는 무용을 전공한 친구에게 발레가 얼마나 좋은지 설명을 들은게 전부고.
어퍼컷좀 날려도 되겠습니까? 책에서 여자 수학 선생님이 권투를 시작하게된 장면이 인상깊었다. 하루 24시간 중에 나에거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1분 1초도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들었는데 권투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는 거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일상에 치이고 찌든 저자가 병원을 찾게되고 치료중에 이런이야기늘 듣는다.
“물론 노력하는 건 좋죠. 하지만 세상에 자기 자신을 소진시킬 만큼 중요한 직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직장은 내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곳이에요. 나는 받는 돈만큼 내 노동력을 제공하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직장하고 학교는 다른 거죠. 학교는 내가 수업료를 내고 내 성적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거고, 직장은 내가 일하고 돈을 받는 거니까 굳이 그 인정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이런 다짐을 한다.
. 나는 공회전을 멈추기로 했다. 퇴근 후나 휴일에도 눈만 뜨면 뉴스를 모니터링하는 강박적인 습관도 버렸다. 삶의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자문하길 그치고, 매일 만나는 소소한 순간들을 세상의 모든 게 첫 경험인 아이처럼 즐기기로 했다. 나에게 기대를 거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한계도 인정했다. 애당초 그런 부담감은 사실 누구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강한 자기애에서 비롯됐다는 사실도 돌아보게 됐다. 난생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기어이 발레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 슬프고 화나는 날에도 꾸역꾸역 발레를 하러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 시간 반 동안 풀업을 하며 몸의 중심을 바로 세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의 감기에 걸렸을 때도 발레는 빼먹지 않았다. 덕분에 상태가 빨리 나아졌다. 물론 어떤 운동이든 꾸준하게 하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발레를 하면서 자신의 몸에 집중하면서 드는 생각을 이야기 하는 문장들은 역시 취재기자 답다는 생각이 든다.
. 솔직히 발레를 배우기 전에는 90도 아라베스크가 그리 어려운 건가 싶었다. 그런데 처음 해본 순간, 이베리코 돼지 뒷다리살로 만든 하몬 한 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다리가 무겁기 짝이 없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다리를 들어올리면 몸통이 앞으로 기울
고, 몸통을 세우면 다리가 내려가는 인간 시소가 되기도 했다.
. 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180도 다리찢기가 가능한 고관절의 유연성을 영영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게다가 고관절과 스트레칭은 안중근 선생과 독서와의 관계와도 같아서 하루라도 거르면 예전의 뻑뻑한 상태로 돌아가 시치미를 뚝뗀다. 정직한 몸, 진짜 얄밉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깨달음도 얻는다.
. 짬 나는 대로 실제 팔다리의 코디네이션을 연습했다. 그러자 동작이 저절로 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남 하는 걸 백날 관찰해 봤자 내 것이 아니었던 거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불완전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보는 게 중요했다. 무작정 했던 이전의 노력은 진짜 노력이 아니었다. 노력을 쏟는 그 방향이 정말 맞는 건지, 노력하는 방식이 정말 효과적인 것 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는 게 필요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까 더 나아질 거야' 라는 자기 주술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책에는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문장들이 참 많다.
. 발레에서 아름다움의 핵심은 어떤 동작이든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내는 것이다. 그건 우아함의 본질이도 하다. 격렬한 감정이나 견디기 힘든 고통을 꼭꼭 씹어서 소화한 뒤 한 단계 승화하는 것이다. 무대위의 발레리나는 어떤 순간에도 배역이 아닌 무용수 자신의 불안이나 통증을 날 것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몸으로 창조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에 집중하다 못해 우울하게 자기 자신을 파먹지 않나요. 하지만 진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단순한 생의 원칙에 따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요. 몸이 진짜예요.”
. 발레에 관한 바스티앙 비베스의 그래픽노블 『폴리나』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항상 핑계를 댄단다. 좋은 핑계도 나쁜 핑계도 없어.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은 이미 진 거야.”
. 나 자신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사실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에 ‘플리에’의 순간이 있는 게 아닐까. 낮아지고, 떨어지고, 주저앉는 순간들 말이다. 원
하던 일을 얻지 못했을 때,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어그러졌을 때, 사랑이 어긋났을 때, 누군가에게 거절 당했을 때, 그건 넘어지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플리에'를 하는 거다. 높이 뛰어오르는 순간이 있으려면 플리에를 꼭 거쳐야 하고, 내려와야 할 순간에도 플리에는 꼭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에는 ‘오늘은 꽤 깊은 그랑 플리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곤 한다. 플리에 같은 그 시기를 잘 지난다면, 인생의 속근육도 자라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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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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