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들

캡
- 작성일
- 2021.7.31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글쓴이
- 매트 헤이그 저
인플루엔셜
나만의 도서관에서 다른 이에게 희망을 주는 선택
예전에 “그래 선택했어!" 를 외치던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 선택마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코믹하게 보여주던 프로그램이었다. 삶은 여러 번 살기 어렵고 그 삶의 중간에는 수많은 선택의 길이 놓여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영화 <쥬만지> 같은 게임이라면 세 번의 라이프를 가지고 적절한 삶의 전략을 짤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우리 삶은 한 번이고 그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그 수많은 선택의 길에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도 있듯이 누구나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어 한다. 인생의 수많은 길을 한 번씩 다 걸어본다면 어떨까? 그런 선택지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보다 나은 삶은 선택할 수 있을까?
어릴 때 부모의 죽음을 겪었던, 우리 소설의 주인공 노라의 삶은 우울하다. 그리고 노라는 수많은 불행이 겹치면서 자살을 선택한다. 이후 맞이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자정의 도서관에서는 노라의 삶 속에서 작은 위로를 주었던 엘름 부인이 있다. 여기에서 노라는 도서관의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삶을 골라 선택할 수 있다. 노라가 선택한 삶 중에는 고양이 볼테르, 볼츠의 살아있는 삶도 있었지만, 그 삶 속에서 여전히 볼테르는 죽어 있다. 실망이 가득한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왜냐하면 노라, 때로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으니까.”라고 말해준다. 원래 삶에서 노라는 볼츠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볼츠는 노라를 사랑했고 자기 죽음을 노라 앞에서 보여주기가 싫었다. 다시 선택한 삶에서 볼츠는 자신의 옆에 죽어 있었지만 원래 삶과는 달리 볼츠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엘름 부인의 말처럼 "때로는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는" 수준의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산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노라는 원래 삶에서 빙하에도 관심이 있었고 도서관에서 고른 책 속에서 빙하 탐사대원으로의 삶을 살아본다. 거기에서 불침번을 서며 곰과 마주한다. 원래 삶에서 우울해서 자살을 시도했던 노라지만 막상 곰과 마주하고는 살고 싶어서 냄비를 마구 두드린다. 삶에 대한 자신의 강렬한 의지를 실감한 노라는 자신의 원래 삶에서는 왜 그렇게 죽으려고 했을까 고민한다.

사실 사람들은 선택지가 있는 새로운 삶에는 더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쉬운 길이 있을 것이라도 생각한다. 노라의 도서관 책 속 삶처럼 성공한 음악가, 강단에 선 수영선수의 삶도 있을 수 있다. 유명인이 되어 강연하고 TV프로그램에 나가서 자신의 인생관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꿈꾸지 못했던 유명인을 만나고 자신의 또 다른 저택이 태풍에 파손될까 걱정하는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
노라는 그의 수영 특기를 살려 메달도 따고 자신의 유명세를 따라 강연도 하는 삶을 살아본다. 그 삶에서는 오빠가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매니저를 하면서 성적 취향도 자신 있게 밝히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노라 자신의 자신감 넘치는 강연 모습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아빠는 엄마와 이혼하고 수영선수 노라를 따라다니다가 만난 연인과 사랑을 하며 살고 있다. 성공했다고 생각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가족들 모두가 행복해지는 삶은 없었고 항상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을 채우는 삶은 정말 없는 것일까?
유명한 수영선수가 되어 많은 돈을 받고 강연하는 자리에서 노라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살다 보면 더 쉬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아마 쉬운 길은 없을 거예요. 그냥 여러 길이 있을 뿐이죠. 매일 매 순간 우리는 새로운 우주로 들어가요. 자신을 타인 그리고 또 다른 자신과 비교하며 삶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죠. 사실 대부분의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는데 말이에요.
살다 보면, '적어도 원래 삶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다양한 삶을 돌아다니면서 깨어져 간다. 삶에는 항상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하며 모두 좋은 일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심지어 예쁜 딸과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 마지막 삶에서도 무언가 부족하다. 수많은 삶 속에서 노라는 가족의 사랑에 목맨다. 우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본다. 그리고 가족이 잘 있다는 소식을 보면서 안심한다. 가족을 비롯해서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삶의 모든 건 무의미하다. 원래 삶을 돌이켜 볼 때 가장 근본적인 문제, 노라가 정말로 힘들었던 이유는 사랑의 부재였다. 심지어 어떤 삶에서는 오빠마저 그녀를 버리기도 한다. 자신을 사랑한 고양이 볼츠가 죽은 뒤로는 노라 곁에 사랑해주고 사랑할만한 대상이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노라를 불행으로 이끌었고 절망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게 만들었다.
오랜 도서관 속 여행 끝에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원래 삶에서 엘름 부인과 체스를 두며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이후 아빠도 사망했으며 오빠는 멀리 있었다. 곁에 두던 고양이 볼츠도 죽었다. 오래 다니던 직장에서는 해고되었고 자신은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다. 마치 불행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삶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 이 책 308쪽-
현재 불행하다는 것은 앞으로 불행을 벗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어두운 지하실에 갇힌 것과 같다. 앞을 보지 못하는 지하실과 같은 현실 속에서 삶의 의지를 찾기보다는 절망하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자정의 도서관은 노라가 살았을 수도 있는 인생들이 책에 담겨있고, 이와 같이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장소는 자신이 생전 편안함을 느꼈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령 평행 우주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즐기며 노라가 선택한 삶 속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위고에게는 도서관이 아닌 비디오 가게가 삶을 선택하는 장소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이런 편안한 장소가 있었을 것이다. 노라에게 도서관은 자신을 위로해주었던 엘름 부인이 있던 장소이고 수영으로 힘든 몸과 마음을 잠시 달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누구라도 그런 불행에서 잠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자살 같은 것은 하지 않을 텐데. 도서관의 엘름 부인처럼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면 자살을 잠시 미뤄두고 삶의 의지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위안을 주는 공간과 그것을 바탕으로 불행을 딛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삶의 선택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전 내성적이었거든요. 그래서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 도서관에 있는 게 좋았죠. 사소한 거 같았지만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라고 말하는 노라에게 엘름 부인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라. 그 말을 늘 명심해야 해"라고 말해준다. 우리 삶에서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사소함이 우리 삶을 갈라놓을 수 있는 선택의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노라가 볼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애쉬의 커피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나마 노라가 만족해했던 애쉬와의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담긴 노라의 삶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그 삶에 비추어보듯 생전 노라의 재능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빙하에 관한 관심부터 시작해서 수영과 음악을 잘하고 철학에 학위를 딸 정도로 해박한 노라, 평범함에 가까운 나로서는 노라의 재능이 부럽고 그 재능으로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넘볼 수 없는 영역 같기도 하다. 그런 재능이 있는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자살을 택했을까. 그것은 사랑이 없는 삶. 이제는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 그런 감정들의 복합적인 작용이었을 것이다.

도서관을 벗어난 노라는 자신이 화산과 같다고 생각한다.
'화산은 파괴의 상징인 동시에 생명의 상징이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속도나 느려지고 열이 식으면, 용암은 응고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부서져 흙이 된다. 비옥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토양이 된다.'
우리는 노라의 화산처럼 우리 자신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 용암으로 파괴된 산과 같은 불행한 마음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용암 밑에 숨겨진 비옥하고 영양가가 풍부한 흙이 있다. 화산 폭발의 불행은 용암 밑에 숨겨진 비옥한 토양과 같이 생명의 희망과 불행을 헤쳐나갈 재능과 삶을 풍부하게 해줄 사랑을 숨겨두었을 수도 있다. 그 흙처럼 혹시나 노라와 같은 재능이 없는지 우리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살펴봐야한다. 혹시나 놓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사랑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삶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에서 만난 엘름 부인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실망을 주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라는 엘름부인이 자신에게는 희망을 주었다고 이야기해준다. 가장 완벽해 보였던 애쉬와의 삶에서는 노라가 도린의 아들 리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지 못했고 리오는 범죄를 저지르고 경찰관에게 잡혀가고 있었다. 원래 삶에서 노라는 리오의 재능을 발견하고 피아노를 가르치며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었다.
그처럼 설령 나 자신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실망하고 내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만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자정의 도서관에서 내 마음 속의 화산을 세우고 새 삶의 토양을 만들어나갈 시간을 갖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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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