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안또니우스
- 작성일
- 2021.8.1
K를 생각한다
- 글쓴이
- 임명묵 저
사이드웨이
놀라운 대작이다! 그런데 필자의 배경을 알면 더 놀라게 된다. 90년대생 신진기예가 풀어놓는 얘기라곤 믿기지 않는다. 지식과 지혜의 폭과 깊이가 대가들의 그것에 못지 않다. 아니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기도 하다.
필자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도전을 다섯 가지 화두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각각의 화두는 그것의 제기 필요성을 보여준 다음, 관련된 세계사적 배경을 톺아보고 이를 토대로 현재 한국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순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여기서는 다섯 가지 화두를 정리하는 것은 접어두고 내게 각별하게 다가온 몇 가지 눈여겨 볼 점들을 꼽아보고자 한다.
먼저 필자는 현 단계 한국 사회현상을 통해 세계와 미래의 면모를 진단하고 있어 매우 특이하게 다가온다. 한국사회가 서구 중심의 세계와 동조화하고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서구 사회건 비서구건 다른 지역 사회가 맞이할 미래의 모습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한 세대가 어떤 시대정신을 고속으로, 집약적으로 겪으면서 의도치 않게 다른 이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이 세계화와 불평등의 심화, 이주민의 유입 같은 현상을 다른 서구 국가들에 비해 더 심하게 겪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몇 측면, 특히 현대사회를 주도하는 미디어라는 영역에서 한국은 분명 다른 국가들 보다 변화를 심하게 겪은 것 같다."(19쪽)
필자는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모습이 지역적 특수성을 넘어 세계사적 보편성을 띠고 있으며, 다른 지역 구성원들이 선망하고 따르고자 하는 영역을 선취하고 있어서 그들에겐 미래에 이루려는 이상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한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해 전지구적 동조화 및 방향성의 동질화가 초래되는데 일정 부분에서 한국이 이미 이룬 결과물이 다른 지역 변화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찬찬히 따져보니 공감이 되었다.
두 번째로 꼽고 싶은 점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이게 사담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라 참여관찰법과 미디어 분석 등 질적 연구 방법을 접목하여 자료의 근거를 튼실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 이주노동자의 한국사회 통합문제에 대해서는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한 인터뷰로 담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여 객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90년대생의 독특한 면모는 그들 심리를 심층적으로 해석하는 정성적 방법을 사용하여 분석했는데 직관력이 놀랍다.
"공적 영역에서 집단적 사회운동은 퇴조하고, 사적 영역에서 가족주의조차 쇠퇴하는 가운데 90년대생이 추구하게 된 것은 무었이었을까? 적어도 기존 한국 사회에서 추구되어 온 가치와 대등한 또 다른 가치는 아니었다. 90년대생은 그런 것을 추구할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여기에는 저성장, 고용불안, 계층화와 같은 경제적 문제도 있었지만, 인정 투쟁을 유도하는 SNS환경과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분노 표출 공간의 부상 같은 문화적인 변화도 주효했다. 인간의 인지적 자원이 한정되었다고 가정한다면, 90년대생에게는 공적,사적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을 위한 책임을 질 만한 자원이 사실상 고갈된 것이나 다름없었다."(70~71쪽)
세 번째는 필자의 이념 성향에 대한 것이다. 다분히 보수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보수파의 지상 가치 중 하나인 자유에 대해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아닌 셈이다. 보수파가 원하는 것은 사회질서와 안정, 이를 통한 기득권 유지이다. 필자는 이런 점에 주목하며 사회 안정을 위해선 약간의 자유 포기도 무방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기본권을 위해 국가 권력의 한계를 정하고 다시 과거의 사회계약으로 돌아가고자 할까? 아니면 사이버 공간 등지에서 제기되는 예측 불가능한 위협에 두려움을 느껴 자신의 자유를 헌납하고 국가의 따뜻한 품속에 몸을 의탁할까? (중략) 그렇게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이들의 후손이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라는 것."(148쪽)
이 대목에선 홉스나 로크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의 견해가 겹쳐진다. 그들이 사회계약을 통한 국가 성립을 주장한 것은 자연상태의 무질서 해소 필요 때문이었다. 질서정연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선 강력한 국가의 통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K-방역에 대한 사생활 침해 문제 제기보다 공공복리를 위한 통제의 효율성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적 지형과 입장의 유불리를 떠나 일관된 이념 성향을 보여주어 믿음이 갔다.
네 번째는 필자의 기능론적 관점에 대한 것이다. 보수 성향과 잘 어울리는 자연스런 관점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이다. 두 가지가 무리 없이 연결된다는 것이다. 특히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능론자임이 두드러진다.
"교육이 생산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지식이 주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 지식 이외의 다른 것을 논하기도 한다. 교육이 인성이나 창의력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진보교육론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교육에 대한 잘못된 가정과 근거 없는 막연한 감상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나 사회는 실질적인 기능과 지식을 갖춘 이들을 우대했으며, 인류의 역사는 시대 변화에 더 적합한 기능과 지식을 갖춘 양질의 인적자원을 확보한 사회가 승리해온 역사였다. 인성과 창의성은 언제나 교육의 진짜 목표와 기능헤서 부가적인 수준만을 담담했을 따름이다."(323쪽)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은 한결같다. 그러니 자신의 관점을 떠나 다른 진영의 목소리, 그것도 합리성을 갖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정치적 성향이나 특정 사회현상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는 집단 구성원들끼리만 경계를 짓고 의사소통과 동조와 의견 강화를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의 견해가 특정 부류에서만 환영받고 소통될 우려가 있다. 나도 필자의 견해에 대해 선뜻 받아들이기 꺼려지는 대목이 여럿 있다. 그러나 임명묵이 우리 사회에 제출한 견해는 이념 성향이나 특정 주제에 대한 찬반을 넘어, 세대를 가로질러 두루 검토하고 성찰할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새로운 세대의 가감없는 진솔한 목소리를 담고 있으며 학자적 치열함으로 문제의 본질에 천착하고 있고 남다른 상상력과 직관까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선입견을 배제하고 차분하게 읽다보면 공감하고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청년보수의 견해라고 폄훼했다가는 소중한 담론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지 모른다. 의식 있는 이들의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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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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