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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oh
- 작성일
- 2021.8.7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 글쓴이
- 잭 홀런드 저
'ㅁ'(미음)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
이 책은?
이 책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인 여성혐오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그런 편견에 대하여 종언을 고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잭 홀런드(Jack Holland), <저널리스트, 작가. 특히 북아일랜드 정치와 테러, ‘북아일랜드 분쟁(The Troubles)’에 관한 해설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벨파스트에서 자랐고 [BBC벨파스트]의 시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제레미 팩스맨을 비롯한 뛰어난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일했으며, 뉴욕대 언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2004년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으로 사망했으니,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요즈음도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혐오 소위 ‘여혐’이란 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리나라가 문제가 아니다. 이는 세계 역사에서 거의 역사 시작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그것을 추적한다. 대체 여성혐오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그 것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밝혀놓고 있다.
여성 혐오의 시작은, 그리스와 이스라엘에서 시작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판도라라는 여인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온 것으로 되어 있다.
여성인 판도라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이 세상에 온갖 재앙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의 경전인 『성경』에 의하면, 인류의 타락은 여성인 하와로부터 비롯되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따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권해, 결국 낙원에서 쫒겨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신화는 여성혐오의 기원이 된다.
그 뒤로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부지런히 그런 여성혐오에 철학적인 기반을 제공한다.
여기에서 기독교는 그리스의 철학을 하나의 이론적 바탕으로 활용해 그것을 집대성하는 수준에 이른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기독교 교리인 원죄론에 철학적 바탕을 제공한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는 임신 자체를 신의 완전함에서 멀어져서 고통과 죽음으로 가득찬 현상 세계라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데아론은 판도라와 인류의 타락을 그린 알레고리에도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타락하기 전에 남성들은 신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그들이 신에게서 멀어진 것은 언제나 그렇듯 여성이 개입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남성은 완전히 좋은 것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50쪽)
그 뒤로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여성혐오는 그 이론적 토대를 갖추고, 실제적 시스템을 갖춘 가운데 여성을 질곡의 현장으로 몰아넣는다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탐사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이런 글도 있으니, 읽고 새겨두자.
스파르타의 여성들은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관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원전 4세기 무렵 스파르타 땅의 5분의 2가 여성 소유였다. 결과는 표면상 역설로 보인다. 여성은 민주주의의 고향인 아테네에서보다 군국주의 사회에서 더 많은 자유와 높은 지위를 누렸다. (54쪽)
저자는 스파르타 - 우리가 알기는 전혀 민주주의 체계가 아닌 -에서 오히려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는 것을 통해서 정치 사회 시스템이 우월하거나 인간의 의식이 발전했다고 해서 여성혐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역사의 진행에 따라 여성혐오는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되었을까?
기독교에서 여성혐오는 인류의 타락에 단초를 제공한 원인자로 보고, 여성을 질곡으로 몰아냈으며, 그후로 기독교가 이 세상의 대세 그룹이 되었을 때는 마녀 사냥이란 황당한 일이 몇 세기 동안 있었다는 것, 이건 도저히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라, 광기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지역만 그랬을까?
이슬람이 통치하던 지역은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여성 할례라는 희한한 풍습과 일부다처제, 그리고 밖으로 나들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히잡과 부르카를 쓰게 하는 등, 과연 그러한 것들이 알라신이 원하신 것일까?
이런 것 읽어보자, 얼마나 황당한 인간들인가?
카불을 점령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9월에 탈레반은 부르카의 눈 위치에 난 구멍이 너무 크지 않은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310쪽)
셰익스피어는 과연 여성혐오자였나?
또한 인간들은 여성혐오를 혐오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역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쓴다. 문학이란 방편도 그 중 하나인데. 그렇게 역할을 했다고 의심받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가 여성혐오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180쪽에서 189쪽에 이르기까지 상당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셰익스피어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1]
-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여성혐오라고요?
http://blog.yes24.com/document/14820334
셰익스피어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2]
- 셰익스피어가 희극에서 창조한 여성상
http://blog.yes24.com/document/14858816
셰익스피어 과연 여성혐오자인가? [3]
- 셰익스피어의 여성혐오 드디어 시작되는가?
http://blog.yes24.com/document/14859146
그런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임신 중단 반대 운동을 정당화한 이념 뒤에는 기독교의 여성 혐오 전통과 함께 여성이 인류의 타락을 불러온 죄를 신이 심판했기 때문에 여성이 종속된 위치에 놓였으며 열등하다고 보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가 있다. (292쪽)
여러 국가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미국에서는 개신교 근본주의자와 보수적인 가톨릭 양측의 맹렬하고 광신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293쪽)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온다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여성 혐오는 “사회에서 받아들인 상식”의 일부였다. (319쪽)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321쪽에 있는 글이다.
여성 혐오에 대한 역사의 가르침은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 바퀴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남자는 여성 혐오를 발명했다. 그러나 바퀴가 화성에서 굴러다니는 오늘날에도 여성 혐오는 여전히 많은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다른 어떤 편견도 이토록 끈질기게 계속되지 않으며 이토록 극단적인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인종도 그렇게 오랜 기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았다. 어떤 특성을 가진 집단도 그렇게 전 세계적 규모로 차별받지 않았다. 어떤 편견도 그렇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여성 혐오는 때로는 사회의 승인을 받은 사회적, 정치적 차별로 나타나고, 때로는 개인적 증오로 가득 찬 망상의 승인만을 받은 사이코패스의 뒤틀린 마음속에 솟아오른다. 게다가 어떤 편견도 그렇게 파괴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여성 혐오를 두드러지게 했어야 할 특징들이 이상하게도 여성 혐오를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여성 혐오와 관련해서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
이에 대하여는 조지 오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겨보면 좋을 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한다.” (320쪽)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다.
여성을 바로 본다는 것은 세계를 바르게 보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런 첫걸음 걷지 않고 다른 것을 바르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저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가치, 세상을 바로보게 하는 큰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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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