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리뷰

가온길
- 작성일
- 2021.8.11
신의 화살
- 글쓴이
-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저
윌북(willbook)
무관심.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재난 문자.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그닥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체념.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요원해 보인다. 계속되는 변이의 출현 앞에서 백신 접종의 효과는 예상만큼 아님을 받아들이고 있다. 불만. 계속되는 거리두기는 개인의 필수적인 사회적 접촉뿐만 아니라 간단한 외출마저 주저하게 만들고 고립감은 더해간다. 마스크와 거리두기, 집콕 생활에 적응하고 이게 일상이다 싶지만, 뚜렷한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 무력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복잡한 마음은 코로나19를 다룬 여타 책들에 대한 거리두기로 이어졌다.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온 의학, 의학사, 전염병, 약을 다룬 책들은 꽤 재밌게 읽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백신 1차 접종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향한 희망의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집어 든 책이 바로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의 <<신의 화살>>이다. 코로나19의 역학,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의 변화 등을 다룬 여러 책들 중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바로 의학 및 생물학 전문가이기도 하면서도 사회학 박사이기도 한 저자의 전방위적 전문가로서의 면모 때문이다. 역사적, 사회적, 의학적 맥락, 즉 다층적 맥락과 시각으로 유행병의 시대를 관조할 수 있는 시각을 배우고 싶었다.
유명인들이 수놓은 추천사들이 헛말이 아니었다.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역병의 최일선에서 연구해 온 풍부한 경험과 충실한 자료 조사, 참고 문헌에 근거한 유행병의 과거와 현재, 인간의 대응과 미래에 대한 깊은 지식과 통찰은 유행병 시대, 역병에 맞선 인간 사회의 숲과 나무를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한다. 코로나19(이 책에서는 SARS-2라고도 부른다)가 범유행하기까지의 경과(1장), 과거의 유행병과 비교한 코로나19의 역학적 특징(2장),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의 변화, 예를 들어 관계의 단절(3장), 감정과 정서의 변화(4장), 코로나19가 불러온 집단적 선긋기와 마녀사냥(5장), 또 한편에 등장한 광범위한 도움과 연대의 손길(6장), 앞으로의 변화와 일어날 변화들에 대한 탁월한 예측(7장) 그리고 팬데믹의 종식 가능성과 그 방향(8장). 출간(원서는 2020년 상반기에 출간되었다) 이후의 상황 변화에 대한 논평과 예측(에필로그)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다. 한 장, 한 장,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피며,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감염율이 높다는 것과 나이가 들수록 중증이 되기 쉽다는 것 등, 코로나19의 역학적 기초적인 특성을 상세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적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대응 방법 또한 구체적이고 명확해지는 법. 코로나19(SARS-2)의 역학적 특징은 2003년 유행했던 SARS-1과 비교하면 보다 뚜렷하다. SARS-1의 CFR(확진자 치명률 : 확진된 사람이 사망할 확률)이 10,9%로 평균적으로 10명 중 1명이 사망한 반면, 코로나19의 CFR은 대략 0.5~1.2% 정도로 SARS-1에 비해 10분의 1정도로 낮은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코로나19가 덜 치명적이란 얘기는 아니다. 치명률이 낮기 때문에 오히려 더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SARS-1과 달리 잠복기가 잠재기(병원체에 감염된 후 전염성이 생기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길기 때문에 무증상 감염자가 남들을 전염시킬 수 있는 것도 꼭 기억해두어야 하는 코로나19의 특징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반응과 대응을 다룬 3~6장은 주로 미국의 사례를 다룬다. 그러나 그 양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일상과 자유를 잃고,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생계가 어려워지며, 거짓 소문과 비방이 끊이질 않는다. 특정 집단과 개인에 대한 마녀사냥식 비난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부분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와 조금 다르다. 미국의 경우 마스크 쓰기에 대한 정치인들의 조롱, 정치 성향에 따른 찬반 때문에 저자는 마스크 쓰기를 포함한 NPI(비약물적 개입)를 보다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상 유행했던 거의 모든 전염병 유행기에 나타난 인류의 선행, 연대, 협동이라는 좋은 모습은 감염병에 맞선 인류의 희망적인 부분이다. 저자는 이를 ‘재난 동정심’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위험에 놓이게 되면서 기존의 구분이 사라지고 ‘우리’의 범주에 들어와 연대 의식이 더 강해지기 마련이다.
범유행병 시대,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저자는 유행병의 시대를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한다. 현재와 같은 ‘범유행 진행기’, 집단면역에 도달하거나 광범위한 백신 보급 후 코로나19로 인한 의료, 심리, 사회, 경제의 광범위한 충격에서의 회복기를 ‘범유행 과도기’, 그 이후 영구적인 변화가 남게 될 ‘포스트 범유행기’. 악수하는 문화와 같이 신체를 접촉하는 문화가 줄어든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원격의료는 보다 확대될 것이며, 재택근무 전환 추세도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교육체계의 전환 또한 불가피하다. 일정한 시공간에 국한된 학교교육이라는 고정관념은 변화를 필요로 하고, 조금씩 변화될 것이다.
팬데믹의 종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병원체가 완전히 사라질까? 아니면 우리 곁에 토착 질병으로 남게 될까? 우선, 코로나19를 포함한 현재의 그리고 미래에 발생할 감염병들은 박멸보다 치료와 통제가 더욱 현실적인 목표일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접촉면 증가, 정보통신의 끝없는 발전 및 항공망의 확대, 계속되는 인구증가는 전염병의 종식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1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바이러스(OC43)이 덜 치명적인 감기로 진화했듯이, 코로나19 또한 토착화 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
본문에 드문드문 미국과는 다른 한국의 성공적 방역 사례가 언급된다.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마냥 뿌듯할 수만은 없다. 최고 단계의 거리두기가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니 말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고 있다는 것이 작은 희망일 뿐이다. 그러나 대규묘 역병은 우리에게는 처음이지만 인류에게 처음은 아니다. 가래톳 페스트, 1918 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등의 빗발치는 ‘신의 화살’ 속에서도 인류는 살아 냈고 살아왔다. 저자 말대로 희망은 우리와 늘 함께해왔다.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는 이전에도 우리 손에 쥔 생물학적, 사회적 수단으로 번번이 유행병을 이겨냈다. 우리는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역병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역병처럼, 희망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인간과 함께한다(452p).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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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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