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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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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밤으로의 긴 여로
글쓴이
유진 글래드스톤 오닐 외 1명
민음사
평균
별점9.2 (57)
서천

  우연히 희곡 읽는 재미에 빠졌다. 그동안 <체호프 희곡 전집>을 시작으로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유리동물원>,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사서 읽었고, 책장에서 세익스피어의 <햄릿>, <베니스의 상인>, <맥베드> 등을 꺼내서 다시 읽기도 했다.



  희곡 읽는 재미에 빠지지 않았다면 <밤으로의 긴 여로>를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보거나, 아니면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차례> 앞에는 유진 오닐이 아내 칼로타(유진 오닐은 결혼을 세 번 했다. 칼로타는 유진 오닐이 가장 사랑했다고 하는 세 번째 아내다.)에게 주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칼로타에게,



  우리의 열두 번째 결혼기념일에



  사랑하는 당신,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행복을 기념하는 날의 선물로는 슬프고 부적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당신은 이해하겠지. 내게 사랑에 대한 신념을 주어 마침내 죽은 가족들을 마주하고 이 극을 쓸 수 있도록 해준, 고뇌에 시달리는 티론 가족 네 사람 모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 글을 쓰도록 해준,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글을 바치오.



   소중한 내 사랑, 당신과의 십이 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였소. 내 감사의 마음을 당신은 알 것이오. 내 사랑도!



 



  그러니까 <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의 자전적 희곡이다. 위 글에서 내가 주목한 곳은 세 군데다.



  먼저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이다. 곧, 유진 오닐은 자신의 슬픔이 오래되었고, 그걸 쓰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두번 째는, '내게 사랑에 대한 신념을 주어 마침내 죽은 가족들을 마주하고 이 극을 쓸 수 있도록 해준, 고뇌에 시달리는 티론 가족 네 사람 모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 글을 쓰도록 해준,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감사'이다. 곧, 아내의 사랑과 다정함 덕분에 자신의 (고뇌에 시달리는)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이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신과의 십이 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이다. 곧, 아내와 결혼해서 산 12년은 '빛으로의, 사랑으로의 여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빛', '사랑'과 대비되는 '밤으로의 긴 여로'이다.



  이상을 내용을 종합하면, <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이 자신의 (죽은) 가족들로 인해 오래도록 고통스러웠는데(유진 오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 고통을 겪었다), 이제는 그들에 대해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아내의 덕분이라는 것이다. 유진 오닐에게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마음을 갖게 해준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빛으로의 여로'였지만, (죽은) 가족들과의 생활은 '밤으로의 여로'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해하고 용서한다고 하더라도 (오래된 고통을 끄집어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유진 오닐은 이 작품을 아내에게 바치면서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가족 이야기였으면 이런 조건을 달았을까? 만일 이 조건이 지켜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아내가 고인의 조건을 지키지 않아서, 이 작품은 1956년에 스웨덴에서 상연되고(유진 오닐은 1953년에 폐렴으로 죽음), 같은 해에 예일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됨과 동시에 미국 무대에도 올려지게 되고 다음해에 퓰리처 상(유진 오닐은 이전에 이미 이 상을 3번이나 받았다.)을 수상하게 된다.



    *



  <밤으로의 긴 여로>는 1912년 8월 어느 하루 티론 가족의 여름별장에서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는 희곡(4막극)이다.



  티론 가족은 티론(제임스 티론)과 그의 아내 메리(메리 캐번 티론), 맏아들 제이미(제임스 티론 2세), 막내아들 에드먼드(에드먼드 티론)이다. 이들 넷은 기본적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얼굴을 마주치기만 하면 그때마다 상대방을 비웃고 놀리거나 분노하는 등의 방식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한다. 제3자인 독자가 보기에도 숨이 막힐 지경인데, 이 이야기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겪은 일이라니, 유진 오닐이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했는지 알 것도 같다.



  보통은 자전적이라고 해도, (수필이 아닌) 허구 장르(소설, 희곡)에서는 그것을 적정한 선(?)으로 편집해서 드러낸다. 자랑스러운 것이라면 모를까, (남에게 알려줘서) 좋을 것이 없는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그대로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밤으로의 긴 여로>는 이름을 바꾼 것만 빼면 유진 오닐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작품 해설>에 나온 유진 오닐의 가족사를 간략하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아버지 - 제임스 오닐 : 가난하고 무지한  아일랜드계 이민 출신으로 연극배우로 성공하지만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가정과 자신의 배우 인생을 망침.



  어머니 - 엘라 퀸랜 : 유진 오닐을 낳고 진통이 가시지 않자 돌팔이 의사에게서 진통제로 모르핀 주사를 맞게 되고, 그 후로 모르핀 중독자가 됨. 어머니의 마약 중독은 두 알들에게 싶은 상처를 주게 됨.



  형 - 제임스 오닐 2세 : 술에 절어 방탕한 삶을 살다가 결국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일찍 세상을 마감함.



 둘째형 - 에드먼드 오닐 : 두 살 때 (제이미가 옮긴) 홍역으로 죽음.



 막내 - 유진 오닐 : 책에만 파묻혀 살며 형(제이미)를 숭배함. 형처럼 방탕하게 살던 그는 (다니던)프린스턴 대학을 자퇴하고 1909년 가족 몰래 결혼하지만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배를 타고 떠돌기도 하고 뉴욕 뒷골목에서 부랑자 노릇을 하며 1911년에는 자살 기도까지 함. 1912년 이혼. 9월에 뉴런던 텔레그래프 신문에 기자 겸 시 기고가로 입사. 그러나 결핵에 걸려 요양소로 들어감.



 



   <밤으로의 긴 여로>에는 위에 적은 가족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작품에서는 막내가 '유진'이 아닌 '에드먼드'로 되어 있다.)



  이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작품의 배경은 1912년인데 이때는 어머니 엘라 퀸랜이 모르핀 중독 증세가 호전되어 요양원에서 돌아오고, 유진 오닐이 뉴런던 텔레그래프 신문에 기자 겸 시 기고가로 입사한 시기이다.



  이래저래 흩어져 있던(메리는 요양원, 에드먼드는 떠돌이 생활을 해서) 가족이 모두 모인, 유일한 집인 여름 별장의 어느 날 아침으로부터 극은 시작된다. 그런데 1막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메리는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다시 모르핀을 맞기 시작했고, 에드먼드는 (단순 독감인 줄 알았는데) 폐병이 심각한 상태이다.



  티론은 돈에 대한 집착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비난을 받으며, 돈 안 되는 삼류배우인 제이미는 돈이 생기면 술과 창녀만 찾는 등 저마다 어떤 문제를 갖고 있다.



  작품 내내 이들 가족간에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메리의 모르핀 주사, 에드먼드의 폐병, 티론의 구두쇠 짓과 (과거에) 가족을 돌보지 않은 것, 제이미의 방탕이다.



  가족 각자가 지닌 문제에 대해 다른 가족은 염려하며 그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혹은 드러내지 않으며 충돌한다. 드러내서(말로 표현해서) 충돌이 되기도 하지만, 말로 드러내지 않는다고(본심을 담은 말을 하려다가 얼버무리거나 화제를 돌리는 등으로 본심을 말하지 않는 행동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인물의 대사의 내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인물의 말투와 행동이다. 말투와 행동은 거의 지시문으로 처리되어 있다.



  제이미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 바보 멍청이! 어머니를 그렇게 오래 혼자 두면 어떡해! 옆에서 지켰어야지! (67쪽)



  메리 (아들을 향한 분노가 터져, 날카롭게) 버르장머리 없는 건 바로 너야! 아버지 좀 그만 비웃어! 이제 용서 못한다! (하략) (71쪽)



  에드먼드 (성을 내며) 그런 말 좀 하지 마! (89쪽)



  티몬 (위협적으로 화를 내며) 내 말 들어! 네가 가끔 미친 짓을 하는 걸 보고 머리가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용서하고 참아왔다. (하략) 156쪽



  위의 예들은 무작위적으로 아무 데서나 고른 것이지만, 상대를 대함에 있어 공격적이다. 작품 전체를 통해 우호적인 지시문은 거의 없지만, 있다고 해도 아주 일시적이고 이내 공격적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인물 간 대화는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낸다.



  막이 오르면 가족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다. 메리가 맨 먼저 뒷응접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남편이 그 뒤를 따라나온다. 그는 아까 1막에서 아침을 먹고 등장할 때와 비슷한 상황인데도 아내와 함께 나오지 않는다. 그는 아내를 만지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표정의 얼굴에는 이제 지치고 무력한, 해묵은 체념의 빛까지 어려 있다. 제이미와 에드먼드가 아버지 뒤를 따라 나온다. 제이미의 얼굴은 방어적인 냉소주의로 딱딱하게 굳어 있다. 에드먼드도 형의 이러한 방어술을 흉내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몸이 병들었을뿐더러 마음까지 아프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2막 2장 해설 부분, 83쪽)



  이 인용문을 보자. 이게 정상적인 가족 관계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상태에서 인물들이 취할 수 행동은 무엇일까?



  메리는 다시 마약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마약을 하고, 마약의 힘을 빌려 행복했던 과거(결혼하기 이전)로 돌아가 현재를 잊으려 하고,  티몬 두 아들은 술로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어찌 마약과 술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사는 것 같은 삶인가?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절망, 곧 밤으로의 긴 여로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작품의 분위기는 상징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바로 안개와 무적이다. 안개는 감추고 싶은 것을 숨겨주기도 하지만,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도 하는 이중성을 지닌다. 이 작품에서 메리와 에드먼드는 뭔가를 감추려고 한다. 메리는 자신이 다시 모르핀을 맞는 것을 감추려 하고, 에드먼드는 자신의 폐병을 감추려 한다. 그러나, 안개는 언젠가는 걷힌다. 안개가 걷히면 감추려 했던 것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감추려 했던 것은 봐야 할 것이기도 했다. 언제까지나 감출 수 없는 것이라면 솔직히 드러내고 같이 힘을 합쳐 헤쳐나가야 한다. 그게 가족이다. 그러나 티몬의 가족은 그렇지 못하다.



  무적은 안개를 걷히게는 못하지만, 안개가 끼었다고 알려줌으로써 안개 속에서도 배가 순항을 하게 만든다. 이 작품에서 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물간 대화가 아닐까?(대화로 상대에게 알려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가족간 대화는 무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 무적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비극적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안개가 끼어도 어둡지만 밤은 더욱 어둡다. 유진 오닐이 이 작품의 제목을 <안개 속 여로>가 아니라 <밤으로의 긴 여로>라고 한 것도 상황을 헤쳐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내 칼로타에게 주는 글에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를 말했지만, 그건 이 작품을 쓸 때의 말이고(더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아내 칼로타와 살면서이고), 칼로타와 결혼하기 전인 1912년(작품의 시간적 배경)에는 '연민과 이해와 용서'가 아니라 '캄캄한 절망' 속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4부에서 에드먼드가 아버지가 구두쇠가 된 사정을 듣고 약간 이해를 하기도 하고, 티몬이 에드먼드의 요양소를 무료 요양소에서 1주일에 7달러 하는 요양소로 바꿔주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메리가 마약쟁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무적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자. 작품 속 시간인 1912년에는 안개를 헤쳐나가게 하는 무적이 없었지만, 유진 오닐이 이 작품을 씀으로써 스스로 무적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 하면 유진 오닐이 이 작품을 쓰면서 가족에 대한 연민과 이해와 용서를 하게 되었으니까. 연민, 이해, 용서는 안개(고통스러운 상태)로부터 헤어나게 해주는 것이니까.



     *



  유진 오닐은 생전에 노벨문학상(1936년)도 수상했고, 퓰리처상도 3번이나 받았다. 그런데도 사후에 퓰리처상을 받은 <밤으로의 긴 여로>를 유진 오닐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족사를 드러낸 자전적 작품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암울할 정도로 리얼하게 인물간 애증을 잘 드러낸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읽는 내내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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