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이라고 하면 어쩐지 신화나 상상 속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아마도 바벨탑이나 공중정원 같은 불가사의한 유적이 주는 신비감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빌론은 신화가 아닌 엄연히 실존했던 역사다. 바빌론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던 도시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다. 

바빌론의 역사는 B.C. 2000년경에 구 바빌로니아로 시작되었으며, B.C.626년부터 시작된 신 바빌로니아까지 이어진다. B.C. 3000년경에 이미 촌락 형태로 존재하던 바빌론은 아모리인들이 바빌론을 근거지로 삼으면서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국하게 된다. 왕국은 함무라비 법전으로 잘 알려진 함무라비 왕, 공중정원과 지구라트 등을 건설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 등이 등장하며 큰 번영을 누렸고, 이후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끄는 페르시아에게 패망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고대 도시 바빌론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바빌론만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은 아마도 처음 접하는 듯하다. 저자인 카렌 라드너는 고대 근동 역사 전문가로 신 아시리아 제국시대의 메소포타미아 역사를 주로 연구하고 있는 학자다.

바빌론은 <성경>에서 부도덕하고 타락한 제국의 수도로 그려져 있으며, 이에 따라 서양인들은 ‘바빌론’을 퇴폐적이고 타락한 장소의 상징처럼 부정적으로 사용하곤 한다. 동양인들에게 바빌론은 낯선 주제이며, 유럽, 미국 중심의 서양사와 성경에 익숙한 동양인들이라면 바빌론에 대한 서양인의 부정적인 시각이 그대로 답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에서 바빌론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기를 권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빌론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the Fertile Crescent)’에 속하는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한강 유역이 그랬듯, 이 지역 역시 비옥한 농경지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히타이트,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 주변국과의 패권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바빌론의 왕권은 특이하게도 세습이 아니라 마르두크의 대리인 자격이 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즉, 바빌론의 주신 마르두크를 숭배하고, 신전을 담당하는 사제단과 시민들에게 면세 특권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런 부분이 부작용을 가져왔고, 궁극적으로는 바빌론의 몰락을 가져왔다.

바빌론은 자연적, 지리적 혜택 덕분에 일찌감치 국제도시로 성장하였고, 전쟁으로 인해 여러 민족이 유입되는 다양성도 있었다. 바빌론은 이제껏 바벨탑, 지구라트, 공중정원 같은 신비감에 쌓인 유적을 통해 역사가 아닌 상상처럼 여겨지거나 혹은 ‘바빌론의 유수’처럼 성경에서 비롯된 퇴폐와 향락의 도시라는 잘못된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설형문자(쐐기문자)를 비롯해 높은 수준의 지식과 문화를 향유했음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편견에 치우친 시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알아가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기원전 21세기에 우르 왕국의 지방 중심지였던 바빌론은 기원후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한다. 그런 궁금증을 충분히 풀어줄 만한 책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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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