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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sis
- 작성일
- 2021.10.1
그 이름을 부를 때
- 글쓴이
- 송원근 저
다람
“희망을 잡고 살아.”
내가 기억하는 영화와의 만남은 2019년이지만
‘김복동 할머님의 시간’은 차마 헤아릴 길이 없고
함께 만드신 모든 분들의 세월은 길고 힘드셨다.
제대로 잘 헤아리려 있는 힘껏 애쓰지 않고 보았다는
뒤늦은 한탄과 자책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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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이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 삶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죽기 전에는 사과 받을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무엇이었는가.
언니는 왜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았을까.
미안하다는 말로 내 상처가 나을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 내 속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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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차가웠지만, 김복동의 삶은 사람이 품은 온기로 따스했다.
그것이 영화 속에 녹아 있다.
차가운 현실과 연대의 따스함이
색 보정 작업을 통해 잘 구현되길 바란다고 김 감독에게 말했다.
‘현실은 차갑되, 사람은 따뜻하게.’ (...)
사실 뉴스타파에서는 색 보정 작업을 할 기회가 거의 없다.
색 보정에도 테마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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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영화 보며 울고 책 읽다 울고...
피해자도 개인도 아닌 인권운동가로 사시다 가신 분에 대해
좀 더 뜻을 잘 헤아리는 후대가 되고 싶다.
16살에 끌려가 23세에 돌아왔다.
환갑이 다 되어 세상에 일본군의 만행과 자신의 존재를 증거로 알린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2011년 12월 14일 ‘평화의 소녀상’, ‘평화비’가 1천수요시위를 기리며 세상에 자리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싸우는 중에 대신 돈 받고 끝냈다는 제 나라 정부,
문서상 국적은 같아도 친일극우라는 본질을 자랑질하는 이들의 조롱이 이어졌다.
2019년 1월 28일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이는 구십 넷 이름은 김복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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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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