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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글쓴이
김누리 저
해냄
평균
별점9.3 (90)

30-50클럽이라는 게 있다. 국민소득이 3만불 이상이고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강대국을 말하는데 세계에 단 일곱 개 나라만이 해당하는 이 모임에 대한민국이 끼어 있다. 명실상부 외적으로는 분명 선진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게다가 정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단기간에 이루어낸 우리는 왜 국뽕을 맞아도 치사량까지 맞을 만한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불행한 사회를 살고 있을까. 저자 김누리 교수는 이에 대한 답을 독일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찾고자 한다. 전쟁, 냉전, 분단, 통일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이 우리와 무척이나 닮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라 '차이나는 클라스'라는 강의를 녹취하여 요약 정리한 것인 만큼 논의의 깊이가 깊다기 보다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깨우치게 되는 정도의 기대를 갖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로 켜진 촛불의 힘을 입어 들어선 이 정권도 이제 임기를 약 5개월 여밖에 남겨놓지 않고 있다. 앞서 말했던 30-50클럽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1위인데, 그 순위는 이 촛불 혁명의 덕이다. 3.1운동, 4.19, 5.18, 6.10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민중적, 평화적 전통을 잇는 이 혁명은 그 열망이 기대한 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민주주적 정치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큰 바람이 불었는데도 큰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배가 작아서다. 즉, 민주적 사회의 기반이 될 민주주의자가 없거나 적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제국주의와 군사주의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며, 약자와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이러한 심성을 내면화한 민주주의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야만으로 추락할 수 있다"(p35)



장애를 가진 자식들을 위해 특수학교 세우는 것을 허락해 달라며 이웃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던 부모들의 눈물이 생각난다. 자신보다 두 배는 더 살았을 배달 기사에게 '못 배워서 그 따위 일을 한다'고 조롱하던 명문대생이 떠오른다. 경쟁에서 지면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 두려움이 아래로, 아래로 파고들어 겨우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기들에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코미디가 벌어지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나라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러나 독일 헌법 제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않는다'라며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민주주의를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 제도라고 규정한다면 우리와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일개 조교도 대학 총장으로 선출될 수 있고, 대기업 이사회에서도 노동 이사들의 비율이 높을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 구조의 출발을 '68혁명'에서 찾고 있다. 



68혁명이 불러온 독일의 변화들을 짚는다. 2차 대전 종료 직후에 과거 청산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던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에서는 68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과거 청산이 시작되었다.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청산인 셈인데, 그들이 미친 영향에 비해 나치가 집권한 기간은 불과(?) 12년 이라는 데 사실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독일 교육의 절반쯤은 이 기간을 '비판'하는 비판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하니 과거의 역사적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한다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무려 36년을 시달렸던 우리는......



비판교육의 목표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한다는 다음의 말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배후를 의심하라.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민주시민이 된다."(p67)



지금 우리가 하듯 줄을 세우기 위해서 객관식, 단답식 시험을 보는 건 나쁘다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스스로 사고할 힘을 거세하는 반(反)교육에 가깝다. 게다가 그 시험 방식은 공부를 하지 않고도 맞힐 수 있으므로 사기에 가깝다. 서정주의 시어가 상징하는 바를 1번부터 5번까지 중에 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교과서에 서정주의 시가 실렸는지,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그의 시가 문단에서 어떻게 그만큼의 권위를 얻게 되었는지를 성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쓰게 하고 서로 토론하게 하는 것은 교사들이 고민할 몫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체제를 구속하는 직업 간 임금 격차, 대학 서열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등등 각종 사회 체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교육 내용 뿐만 아니라 외적인 여건에서도 혁신적이다. 거의 모든 대학이 국립인데 학비가 없다. 생활비도 지원받는다. 입학 자격 시험만 통과하면 언제든지,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든지 들어가 공부할 수 있다. 생활비 지원은 나중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런 교육 제도가 갖추어진 것이 2차 대전 직후라고 하니, 무상 교육과 교육 발전은 국가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러한 교육 제도의 발전은 '교육 사회' 즉, 모든 독일인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  교양인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교육 체제와 일부 사회적 측면만을 보았지만 68혁명은 전세계적인 변혁을 몰고 온 중대한 사건이었음에도 왜 우리나라에는 그 영향은 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게 되었는가. 그를 막은 것은 당시 이 땅에 짙게 깔린 냉전 체제, 군부 독재였다. 이 68혁명이라는 것이 베트남 전쟁의 참상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촉발된 것인데, 베트남 전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투병(연인원 약 32만 명)을 파병한 대한민국은 그 지향점과 정반대일 수밖에. 그리고 극복되지 못한 냉전 체제로부터 비롯된 우리의 분단 체제(현재)는 일본의 과거(제국주의)와 중국의 미래(동북아 패권국가)와 더불어 동북아의 평화적 번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68혁명 이후의 서양 사회와 우리 사회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시기에 원인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는 셈인데 그 시기를 지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過)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68혁명의 세계사적 흐름에서 유리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지역감정, 정치자금 축적을 위해 시작한 강남 개발로부터 지금의 부동산 공화국이 비롯되었으며, 친일파 장교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과거 청산을 요원하게 만들었고, 20년 가까이 군사 독재를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사회 전체는 물론, 회사고 학교고 모두 병영체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파시즘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하게 되었다. 공(功)도 있고 과도 있다는 말로 물타기에는 지금까지 미치고 있는 그의 해악이 너무도 크다.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대한 충성 강요 대신 개인의 존엄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로 나가자면 결국 개개인이 민주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그 선결 조건은 개인의 강한 자아인데, 우리의 교육은 자아를 강하게 확립시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무의식적 성(性) 즉 리비도에 대한 죄책감을 주입시는 것이 자아를 약하게 만들고, 자아가 약하므로 권력에 굴종적인 권위적인 인간이 된다. 약한 자에 약하고 강한 자에 강하게 된다. 욕망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위선적인 인간이 된다.(물론, 이러한 성 해방 교육의 결과로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교 내 성범죄와, 다른 문제들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러한 제반 문제들로 인해 자신이 겪게 되는 억압과 착취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여 자기착취를 이어가게끔 하는 것이 또한 문제가 된다.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본인이 노오력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제도적인 기만이다. 이 틀을 벗어나려면 우선 자신이 그러한 상태에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이끌어 낸 교육개혁이었다.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 아래 소르본 대학의 해체를 주장했고 그것을 실현시킨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학생들 스스로가 노예 상태임을 자각하고, 자신들을 길들이는 학벌 사회에 저항"( p152)해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하게 할 역량은 무엇이며 그것은 누가, 어떻게 길러줄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가 남았다.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혁명들의 선두에도 고등학생들이 서 있었음을 기억하면, 그것이 자생적인 것인지, 교육으로 길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여러 가지 문제를 살폈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는 궁극적인 우리의 지향점은 우리 내 외부를 지배하는 분단 체제의 극복이다. 통일이 궁극적인 지점이 아니라 그 다음의 삶까지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이 동독 주민들의 저항 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 한반도를 이끌 이들을 뽑는 캐스팅 보트는 - 남한의 정치적 지형이 보수-진보로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므로 - 북한 2천만 인민이다. 그러므로, 통일 이전에 그들에 대한 민주시민교육이 주요한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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