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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
글쓴이
김혼비 저
안온북스
평균
별점9.6 (58)
eiven
다정 소감. 김혼비

☆☆☆☆☆

"이런 친구와는 자주 만나서 놀고 싶다. 글을 읽는 것만으로 그와 노는 기분이 든다." 김소영 작가. 딱 맞는 표현이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아무튼 술, 전국 축제 자랑. 내가 읽은 작가의 책은 이 4권이 전부다. 축구도 하고, 지인들을 만나 술도 마시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축제도 구경하는 책들이다. 이런 일을 하던 작가가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다(누구나 그랬겠지만) 본인의 이야기와 생각을 정리해 에세이 책을 냈다. 작가의 말이다.
?
"주저앉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무능력했지 무기력하기까지 할까 봐!”라고 덮어놓고 큰소리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에 새겨진 다정들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붙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서 얻게 되는 건 근육만이 아니었다. 다정한 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 그래서 책 제목을 '다정 소감'이라고 붙여봤다. '다정다감'을 장난스레 비튼 느낌도 좋았지만, 결국 모든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작은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인 것 같아서. 내 인생에 나타나준 다정 패턴 디자이너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보낸다."
?
힘든 시기에 만난 자기자신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한 단어들과 치열한 싸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 중에 친구가 만들어준 사골육수 라면 이야기는 전형적이지만 짜릿하다. 작가의 고백이 눈물겹다.
?
. ?한창 되는 일도 없고 하는 일마다 망해서 나 자신이 너무나 하찮고 쓸모없게 느껴져 괴롭던 시절,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맞춤법 책을 읽다가 운 적이 있다. "쓸모 있다"는 띄어 쓰고 "쓸모없다"는 붙여 써야 문법에 맞으며, 그건 "쓸모없다"는 표현이 "쓸모 있다"는 표현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되기에 표제어로 등재되어 그렇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그래, 세상에는 ‘쓸모없다'를 쓸 일이 더 많은 거야!
쓸모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게 정상인 거야!
나만 쓸모없는 게 아니야!
내가 그 많은 쓸모없는 것 중 하나인 건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멋대로 위로받고는 눈물을 쏟은 것이다.
?
. ?“나 좀 쩔지! 너 이거 먹으면 기운 확 날걸?"
의기양양한 J의 말과 함께 사골 육수에 기존의 라면을 합친 사리곰탕면이 식탁에 놓였다. 뽀얀 국물에 가려 면발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그 전에 뿌연 눈물에 가려 국물도 흐릿하게 보였다. 이제 와 하는 말인데 솔직히 그 날의 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대신 기억나는 건 가게 앞에 쭈그러져 있는 풍선 인형에 바람을 넣으면 팽팽하게 부풀면서 우뚝서 무너져 있던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일어나던 생생한 느낌.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J의 사리곰탕면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랬다.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 마. 나를 따라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J와 함께 울며, 그리고 불며 싹 비워낸 한 그릇은그렇게나 시원했다.
J는 식힌 국물을 한 끼 분량씩 나눠 담은 비닐 팩 열 몇 개도 챙겨주었다.“점심에 먹은 건 분말수프도 넣고 내가 따로 간도해서 맛있었는데 이 국물은 싱거울 거야. 그래도꼭 간 잘해서 다 먹어? 꼭!! 나 속상해서 빡치게 하지 말고!”
?
. ?“나다운 게 뭔데?” 그러니까. 나다운 게 뭐길래. 보통 내 안 어딘가에 '진정한 나다움'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나는 그 '나다움'을 발견하고 찾아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나다움'의 상당 부분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나, 만들어진 나, 만들어져가고 있는 나, 모두 다 나이다. 본캐’도 ‘부캐’도 다 나.
?
.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그의 눈빛이었다. 그는 늘 나를 세상 쓸모없고 성가신 사람 보듯 바라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눈빛들은 차곡차곡 내 눈 안으로도 들어와서 언젠가부터 나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 로 매일매일 규정되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라는 글자는 슬며시 사라지고 그저 '성가시고 하찮은 존재'로서의 나만 남는다는 것을. 나에게조차 나는 성가시고 하찮았다. 그렇게 하찮을 수가 없었다.
?
. ?누군가 나에게 가식적이라고 비난해서 모멸감을 느낀 날이 있는가? 괜찮다. 정말 괜찮다. 아직은 내가 부족해서 눈 밝은 내 자아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내 ‘가식의 상태'를 들키고 말았지만, 나는 지금 가식의 상태를 통과하며 선한 곳을 향해 잘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노력하지 않는 사람보다 최선을 다해 가식을 부리는 사람이 그곳에 닿을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척'한다는 것에는 어쩔 수 없이 떳떳하지 못하고 다소 찜찜한 구석도 있지만, 그런 척들이 척척 모여 결국 원하는 대로의 내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가식은 가장 속된 방식으로 품어보는 선한 꿈인 것 같다.
?
꼰대와 제사의 정의. 그리고, 제사문화에 통렬하게 날리는 한방은 통쾌하다. 단지 여성들을 괴롭히지 말라가 아니라, 조상들을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로 만들지 말라는 충고는 많이 아프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기본"이란 단어의 해석과 고민은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나만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누구를 제단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충고한다.
?
. 남에게 충고를 안 함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 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 것. 나는 이게 반복해서 말 해도 부족할 만큼 두렵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만들어낸, 투명해서 갇힌 줄 도 모르는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을 때, 누군가 이제 거 기서 잠깐 나와 보라고, 여기가 바로 출구라고 문을 두 드려주길 바란다. 때로는 거센 두드림이 유리 벽에 균열 을 내길 바란다. 내가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와 위로 로 만들어진 평온하고 따듯한 방 안에서 지나치게 오래 쉬고 있을 때, 누군가 "환기 타임!"을 외치며 창문을 열 고 매섭고 차가운 바깥 공기를 흘려 보내주기를 바란다.
?
.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해봐야 전 부치는 걸 거드는 게 전부인 남자들이)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차별 집약적) 의식.” 여자를 증오하는 누군가가 여자를 지배하고 괴롭히기 위해 면밀하게 고안해낸 장치가 아닐까 싶을 정도

. ?정말이지 조상들에게 너무 무례한 것 같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이해심 있는 인간형으로 상정하면서, 애먼 조상들은 자손의 피곤한 일상이나 사정 따위 헤아릴 줄 모르고 그저 밥만 찾고 인사받기만 바라는 소시오패스로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인품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죽어서 조상이 되는 순간 애정 결핍에, 밥 집착증에, 속 좁고 개념 없는 악귀나 괴력난신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이거 어디 억울하고 무서워서 마음 편히 죽을 수나 있겠나. 내가 조상이라면 밥을 못 얻어먹는 것보다, 그 밥 좀 안 차려준다고 후손의 삶을 망가뜨리고 저주를 내릴 평균 이하 인격체로 취급당하는 것이 더 화가 나 제사상을 엎어버리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

. ?하지만 때로 이 '기본'이라는 지나치게 확고한 단어는, ‘기본' 바깥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맥락과 상황을 쉽게 지우기도 한다. A와 나는 성장한 과정도, 몰두하는 대상도 다른데, A의 맞춤법을 보며 나는 “왜 맞춤법을 잘 모를까?”를 따져볼 생각조차 안 했다. 왜? 기본이니까. 기본이라는 것은 이유 불문하고 어느 정도 당연히 갖춰야 하는 거니까. 그래서 '기본'이라고 하는 거니까. 기본 소양이라는 게 때 되면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듯 세월 따라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데, 그것을 배우고 갖추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와 환경이 확보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확보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기본'으로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배제되기 쉬운 불리한 어떤 입장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설사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적성과 성향, 강점과 약점은 얼마나 다른가. 게다가 '기본'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에 미치지 못하는 한 부분을 그 사람의 전체로 확장해버리는 힘이 있다.

못 만날 거라 여겼던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안전하고 즐거운 방식을 찾아내어 기쁘지만, 음. 잘 모르겠다. 근래 나를 지배하는 어떤 분열적인 감정이 있는데, 코로나 시대에 맞춰 삶의 양식을 하나 바꿀 때마다 바뀐 환경에 잘 적응했다는 안도감 뒤에 이럴 수 밖에 없다는 데에서 오는 가슴 철렁한 불안이 늘 뒤따른다. 이 양가적 감정의 불편한 격차 역시 잘 끌어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위선이 위악보다 나았던 이유는, ‘선'을 위조한다는 것은 적어도 위조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상대와 '선'에 대해 따로 합의할 필요 없이 엇비슷한 선상에서 대화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위선을 부리는 사람은 대개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웬만하면 타인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노력한다. 반면, 선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설령 안다 한들 그것을 위조라도 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고(그렇다. 선을 위조하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런 포장 없이 자신의 마음 밑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의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람과는 일단 말부터가 통하지 않았다.
서로 윤리관이 전혀 달랐다. 그런 부류의 사람을 볼 때 마다 가끔 나는 ‘위악'이라는 말이야말로 위선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어떤 의도에서든 바깥으로 방출하는 행동이 '악'이라면 그건 그냥 '악'일 뿐인 것을, ‘위악'이라는 말 뒤로 숨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나는 지금 위악을 부리고 있다 → 악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 그러니 난 악한 게 아니라 그냥 악해 보이는 걸 선택했을 뿐이다'라는 논리로 자신이 행하는 악에 면죄부를 깔고 들어간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짜 자기 욕망이 가닿은 악이고, 어디까지가 위조한 악인지 본인은 딱딱 나눌 수 있을까? 아니 나눌 수 있으면 또 뭐하겠는가. 뭐가 됐든 결과가 악이면 악인 거지.

이를테면 매해 4월 16일을 전후로 온오프에서 자주 보고 들었던 “세월호 이제 지겹다” 같은 말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으로 시작하는(조심스러우면 하지 마……) 어린이나 난민,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사회 바깥으로 더 밀어내고 배제하는 말들. "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쏟아지는 무례한 독설들. 그런 말들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 어김없이 날아오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이라는 비난과 조롱들. 깨어 있는 사람인 척하는 가식이다, ‘맞말'하는 걸로 도덕적 우월성을 획득하려는 피시충이다, 약자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 약자를 이용해서 자기만족을 채우는 위선자들이다, 적어도 난 솔직하다…… 등등. 어떤 사람들은 '솔직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솔직한 나'에 대해 너무나 비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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