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jyooster
- 작성일
- 2021.11.23
죽은 자가 말할 때
- 글쓴이
- 클라아스 부쉬만 저
웨일북
미라가 된 사람의 한쪽 발이 지하철 선로에서 발견된다. 발의 주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남녀가 데이트를 즐기고 난 후 멀쩡하던 젊은 여성이 목숨을 잃는다. 그녀는 왜 갑자기 죽었을까. 숨진 아내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수백 킬로나 멀리 옮기던 남자는 무엇을 숨기려 했던 것일까. 이들의 사망 원인은 비극적인 사고, 폭력적인 사건 그리고 질병 등 여러 가지다. 법의학자인 저자는 시신들의 몸에 남겨진 흔적을 바탕으로 사망 원인을 추적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법의학자 경력 가운데 가장 극적이며 감동적인 사건들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매일 시체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저자는 한때 구급대원이었고 지금은 법의학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 부검 대상의 사망 시기는 언제일까, 자연사 또는 사고사, 그도 아니라면 타살? 그는 매일 이러한 질문을 마음에 품으며 사망 사건의 수사에 결정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그는 직업상 시도 때도 없이 경찰과 함께 시체들을 조사하기 위해 해부실을 떠나 현장으로 출동해야 한다. 이 작품처럼 실제 발생했던 사망 사건을 다루는 문학 분야는 트루 크라임(True Crime) 장르로 구분되며, 반드시 종결된 사건 내용이 포함되기에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실존 인물과 구체적인 지역 이름이 등장한다. 실제 발생했던 범죄사례를 다루어 제공되는 정보량이 상당하며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극적인 전개가 이어진다. 사망자의 성장 배경과 사망 직전까지의 상황이 박진감 넘치게 묘사되어 몰입도가 엄청나다.
둘째, 시대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장르는 사건이 발생한 공간적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한국과는 너무나 판이한 독일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마주할 기회이기도 하다.
셋째, 사건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추리소설처럼 깔끔하고 시원한 결말은 보기 드문 대신, 방대한 이력의 축적으로 심오함마저 선사한다. 범죄라는 게 사실 갖가지 어이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수사와 체포 과정 역시 수많은 무명의 경찰력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체성과 불완전성이야말로 독자의 상상력을 더욱 부추기는 요소이기도 하다.
넷째, 재판 결과의 극적 반전이다. 이 장르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실정법상의 범죄를 다루는 만큼 현실 세계의 범죄를 재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과정에서 새로이 드러나는 사실과 증거,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 튀는 공방, 죄수의 자백 또는 무죄 주장, 사건 관계자의 극에 달한 감정, 이를 둘러싼 언론의 취재 경쟁 등이 또 다른 생생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따라서 이 책은 모든 트루 크라임 팬들의 독서 목록에 올라야 할 것이다.
현장 출동과 해부실에서의 부검 이외에도 법률의학자의 업무는 매우 다양하다. 죽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검진 방법과 결과의 법정 증언뿐 아니라, 소위 예술적 오류라 불리는 동료들이 간과한 실수를 인정하고 폭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또한, 충분한 증거가 없어 소송이 중지되는 일도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객관적이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려 노력하는 한편,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좌절하는 법도 없다. 그의 표현처럼 모든 사건이 늘 잔인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것은 아닌 때문이다.
얼마나 큰 나무였는지는 쓰러져 봐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가치 있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는 사후에 더 잘 드러난다. 이 책에 실린 흥미로운 법의학 사례 열두 편을 통해 우리는 삶이란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상기하는 한편, 어떤 죽음을 맞이하느냐에 따라 가장 덧없고 허무한 것일 수도 있음을 체감한다. 일상적으로 죽음을 마주해야 하는 저자의 눈을 통해 우리는 사회 환경이 개인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그것은 마치 삶의 방식이라는 변수가 죽음이라는 상수로 수렴하는 방정식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감성적이라는 사치를 덜어내고 법의학자의 직업 세계에 대한 에누리 없는 현실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의 따뜻한 인간성과 친절함, 그리고 농담을 곁들인 상당량의 정보를 적절한 긴장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전문지식을 곁들인 단순한 사실 보고서에 더하여 경험상 어떤 것도 꾸며질 수 없는 날것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단 이 책을 손에 들게 되면 두 시간짜리 쉼 없는 정주행이 예상되니 일독하실 분들은 반드시 머그잔 가득한 커피와 푹신한 소파부터 찾으시길 바란다.
#인문에세이 #죽은자가말할 때 #법의학 #트루크라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