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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
- 작성일
- 2021.12.3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글쓴이
- 김영옥 외 2명
봄날의책
가을 독서 두번째 모임의 책은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였다.
건강하지 않은 몸에 대해서, 건강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모임원분들과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시간이 뜻 깊었고,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살아갈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전에 발목을 다쳐 수술을 하고 한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던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대중교통들이, 신호등이, 대부분의 이동 수단들이 신체 활동에 제약이 없는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거라는 걸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목발을 짚고 이동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병원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그 길이 끔찍하게도 멀게 느껴졌을 때, 오도가도 못해서 서럽던 감각을 기억한다. 신호등을 건너는데 중간에 신호가 바뀌는 끔찍함이란. 신호등 시간은 왜 그렇게 짧은 건지.
사회는 우리에게 모두 '건강'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말로 건강해야만 한다고 하는 건 아니다. 사회의 기준에서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되는 시스템으로 하여금 눈치 채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그 기준에서 밀려난 순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문명은 부러졌다 다시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어느 인류학자 분의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사회를 본다. 그 분의 말을 생각하고 보면 지금의 문명은 발전한 건지 퇴화한 건지, 아니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이 태어난 이후 매 순간 건강할 수만은 없다. 운이 좋으면 건강하게 태어나서 별 탈 없이 어른이 되겠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삶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사회는 언제나 그랬듯 느리다. 진짜 끔찍하게 느리다. 아직까지도 세상에 혐오와 차별이 가득한 걸 보면 착잡하기 그지 없다. 서기, 예수님이 죽고 난 뒤부터 열심히 날짜를 세서 202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사회는 아주 느리게 바뀌었다.
성경이 세상에서 베스트 셀러라는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다들 아무래도 성경은 사놓고 안 읽는 것 같지. 다음달에 곧 크리스마스인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잘 챙기면서 이웃은 별로 안 사랑하는 것 같다. 아니면 아프고 병든 자들, 나와 다른 자들은 이웃 목록에서 빼버렸던가. 어느쪽이든 '네 이웃을 사랑하라'던 예수님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것 같지만.
하여튼 다들 자기가 원하는 말만 쏙쏙 빼먹는 거 좋아한다. 성경의 핵심 메세지는 아무리 봐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한 줄인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거 사실 진짜 진짜 어려운 일이다. 외면하고 싶을만 하긴 한데, 그렇다고 이걸 외면하고 이웃을 조지는데 성경을 끌어다 쓸 생각을 할 거면 진짜 왜 그러는 건가 싶다. 근데 이건 기독교나 가톨릭이나 성경 열심히 공부하면서 이상한 짓 하는 거 생각하면 개인의 문제는 아니구나 싶다. 여성 차별 심하던 과거에도 구약 보면 여자 사사도 있는데, 여성 사제는 없는 가톨릭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저기요, 지금 2021년인데요?
하여튼 다들 열심히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핵심 메세지는 외면하고, 혐오하고 차별하는데 구약 부분 끌어다 쓰기 바쁘다. 구약 끌어다 쓸거면 몸소 레위기에 적힌 모든 세세한 규칙들을 실천하면서 산 뒤에 말하도록 하자.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교황님도 레위기에 적힌 규칙들대로 살진 않잖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만 줄여야겠다. 아니, 근데 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끝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음 독서 모임도 기대가 된다. 사실 비문학은 독서가 쉽지는 않지만, 읽고 나면 뭔가 뿌듯해지고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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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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