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머리속의양식

레미닌
- 작성일
- 2021.12.17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 글쓴이
- 백순심 저
설렘(SEOLREM)
나는 장애인의 가족입니다.
나는 장애인의 가족이다. 나의 하나뿐인 동생은 지적장애 2급이다.
약간의 자폐증상도 있어 복합장애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듯 싶다.
현재 지능은 10세정도. 처음에 등급판정을 받을때는 5~7세정도의 지능이었다.
장애는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생각해보니 내동생은 '후천성'일 것 같다.
내가 3살때, 40도의 고열로 뇌수막염을 앓고 있는데 동생이 태어났다.
엄마는 한 차례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이 3살이 되고 고열을 앓았다.
그 때 아마 뇌에 이상이 생겼을거라 했다.
아이들에게 고열은 꽤 위험하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동생을 소개할 때는 '마음이 아픈 아이'라고 소개했다.
'장애인'을 막말하는 동급생들을 보면서
속으로 부글부글 화가 끓어 내 입에 '장애'라는 단어를 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태어났고,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차별을 받고, 놀림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 걸 부당하게 생각했다.
장애인의 누나로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에피소드도 있고, 마음앓이도 있었다.
지금도 동생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기도 한다. (어째 단 한 번도 동생 이야기를 하며 안 울어본적이 없다.)
사회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장애인들의 인권을 눈 앞에서 목격했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르다.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고, 인정하며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힘썼다.
그 노력의 결과로 이렇게 책까지 나오게 되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꼭 읽으라고 하고 싶다.
'한 번 읽어봐'가 아니라 '꼭 읽어. 꼭꼭 씹어서 읽어.'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책이다.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막상 장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21쪽
나는 친구들에게 감추지 않고 늘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내 동생은 마음이 아픈 아이라고, 지적장애인이라고.
그럴 때 친구들의 반응을 보면 오래 갈 친구인지, 아닌지가 눈에 보였다.
나를 '어쩌다...'라며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도 있었고,
'근데 그게 뭐 어때서?'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후자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서슴치않고 이야기를 하면 생각보다 편견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많았다.
책의 이 구절을 보면서 나의 친구들이 불쑥 떠올랐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때 친구들보다 초등학교때 친구들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수월했고 더 많았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 가끔 교육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순수한 아이들이 자라면서 색안경을 끼고 장애인들을 바라보지 않도록 말이다.
친정에 다녀오면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한다.
삼촌은 지금 사랑이 필요하다고, 관심이 필요하다고. 너희와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갈 곳 없는 장애인을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장애인의 의사가 중요한지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다.
무엇이 우선이고 정답일까.
<불편하지만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148쪽
최근에 엄마가 나에게 정말 흘리듯이 털어놓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벌어야 나중에 엄마아빠가 없어도 너한테 동생을 부탁하지.
뭐라도 쥐어주고 부탁을 해야지. 엄마아빠 사망보험금도 가득 채워서 네 앞으로 해놨어."
엄마 아빠는 지금 30년째 맞벌이중이고, 아빠는 내년 여름에 정년퇴임이다.
점점 연세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은 많은 걱정을 하실거다.
아니 우리가 태어나고부터 줄곧 고민하고 계셨겠지.
동생이 장애를 갖고 있고, 나는 결혼해서 세 아이 육아에 치여있는데
딸에게 사위에게 짐으로 남겨질 자신의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마음으로 돈을 벌고 계신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애가 셋이고 아무리 손가락을 빨면서 살지언정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를 버리겠어?"
나는 정말 당연하게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중에 노환으로 이 세상과 작별을 하시게 되면
당연히 동생은 나랑 살아야 한다. 무슨 소린가. 내가 있는데 얘를 어디로 보내.
나의 결혼조건 1순위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동생과 같이 살 사람이.
지금 내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한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이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수도 있다.)
이 책에서 해식 씨의 어머님의 말에 나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
죽기전에 거처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말...
자신이 죽기전에 해식 씨는 살아야 하니 거쳐를 마련해두어야 한다고 시설에 입소시켰다.
하지만 해식 씨의 부적응으로 결국 퇴소했다.
우리 엄마의 소원이 떠올랐다.
내 동생보다 하루 더 사는 것. 나에게 짐으로 동생을 맡길 수 없다며 하루 더 살고 싶다셨다.
'엄마, 짐이 아니야. 내 동생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마의 마음과 해식 씨 어머님의 마음은 같았을거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수천 수만가지의 생각이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자신을 흔들고 있었을 것이다.
.
우리 사회의 시급함을 절실히 느꼈다.
장애인의 인권존중, 생활권의 배려, 장애인 가족에 대한 심리치료.
이 모든게 정부차원에서 제공해주어야 할 기본사회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장애인 가족의 동반자살 이야기를 듣고 솔직하게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한꺼번에 다 같이 죽자.
엄마가 입밖으로 이 말을 꺼냈을때 나는 주저없이 말했다. '그러자.'
그만큼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배려가 없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지옥과도 다름이 없었다.
몸은 장애인으로 살아가지만 생각은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장애인들의 마음치료,
그런 장애인들을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데리고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치료가
나는 꼭 주어졌으면 좋겠다.
저자가 느꼈던 피해의식만큼은 아니지만 나 또한 피해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동생이 아프니까 내가 더 잘해야해.'라며 내 자신을 쪼이고 더 쪼였다.
친구들과 방과후에 놀아본 적이 없다. 무조건 학교-집이었다.
학원도 5학년이 되서야 저녁반 수업을 들었다.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학원을 갔다.)
친구들 앞에서 내 동생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이야기했지만
나의 마음은 알게 모르게 작아지고, 상처받고 살아왔었다.
그런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가족을 위해 사회가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하늘에서 사는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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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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