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야초 이야기

산바람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1.12.31
살구꽃 어사화가 된 까닭
임금님은 언제부터 어사화를 하사했으며 왜 하필 살구꽃이었을까? 일단 어사화는 중국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풍속이닫. 유래는 17세기 말 명말청초의 학자 장대가 쓴 <야항선(夜航船)>에 보인다. 야항선은 ‘밤에 떠 있는 배’라는 뜻으로, 당시 세상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모아 엮은 책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100% 믿을 것은 못되지만 참고할 가치는 있다. p.153
어사화의 유래에 대해 이 책에서는 당나라 17대 황제 의종이 과거에 새로 급제한 선비들이 동강에 모여 연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꽃을 꺾어 술과 함께 금 쟁반에 담아 보내며 머리에 꽂고 술을 마시도록 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나온다.
의종이 꽃을 꺾어 보낸 이유는 장원급제의 영광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어떤 꽃을 보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십중팔구 살구꽃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과거제도는 당나라 때 본격적으로 시행됐는데 장원급제를 하면 축하잔치가 줄을 이어 열렸다. 그중 첫 번째로 열린 잔치가 ‘탐화연(探花宴)’이다. 당나라 때 세시풍속을 적은 <진중세시기>에는 진사가 되면 황제 주최로 제일 먼저 곡강 기슭, 살구꽃 만발한 행원(杏苑)에서 꽃을 꺽ㅇ어 놀며 급제를 축하했는데 그 잔치를 탐화연이라 일컬었다. p.154
처음 살구꽃 핀 정원에서 장원급제 축하 잔치를 열고 살구꽃을 어사화로 내려 보낸 이유는 과거시험 발표가 살구꽃과 앵두꽃이 만발할 무렵인 이른 봄에 열렸기 때문이다. 사방에 살구꽃이 만발했기에 살구꽃을 꺾어 어사화로 삼았던 것인데, 이후에는 과거보는 시기가 일정치 않아 언제부터인가 살구꽃 대신 다른 꽃으로, 그리고 꽃 대신 종이로 꽃모양의 종이꽃을 만들어 어사화로 삼게 됐다.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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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