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독서리뷰

하우애공식계정
- 작성일
- 2022.1.22
아무튼, 여름
- 글쓴이
- 김신회 저
제철소
매일 반복해서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려고 애쓴다면 그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일까?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아서 해내고 있는걸까? 어제 대화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한파로 온몸이 얼어붙는 날이나 남산을 오른 이유를. 나는 아침마다 남산을 올라간다. 그냥 그러고 산다. 그게 어쩌다 바뀐 자연스러운 일상이라 여겼지, 나는 왜 비오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남산을 올랐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를 번쩍 깨달은 것이다.
내 주변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랬다. 남산이 좋아서 간 것도 아니고, 오르는 과정이 즐거워서도 아니었다. 평지에 익숙한 몸을 경사로에 올려놓는 일은 어느 정도의 결심이 필요한 일. 그걸 해내려고 했을 때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남산을 걷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해준, 지금은 퇴사한 직장 선배가 있었다. 매일 남산을 오르며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신 분. 그때도 시도하지 않은 남산 오르기를, 언제부턴가 나 스스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도 모른 채.
묘하게도 , 그때 그 선배가 있던 자리에서 내가 똑같은 업무를 보고 있다. 그러고보니 남산 타워 아래서 만난 또 다른 직장 선배 분이 건네 주신 말의 의미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너도 왔구나'. 남산을 수 개월 간 오르고, 때론 심장이 터져라 오르막을 전력을 다해 뛰었던 건 잘 버티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심란했던 마음, 편안하지 않은 마음이 산을 오를 때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 남산을 다녀왔을 때 기분이 전환되는 그 느낌이 좋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이 된다고 느꼈던 거다.
대체 그때 나는 뭘 원했던 걸까.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116쪽)
내가 그리워한 건 남산이 아니라 남산을 걷는 나였다. 이 책 <아무튼, 여름> 의 김신회 작가 말을 살짝 내 이야기로 돌리면 이렇다. 평소에 이유도 모르고 해내는 일, 혹은 매달리는 일들이 있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다 있을텐데 당시엔 그걸 감지하지 못 하기도 한다. 수 개월, 혹은 수 년이 지나고 나서야 왜 그랬는지 알게 되는 숨은 의미들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남산을 반복해 오르는 이유를,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처럼. 그것은 번쩍하고 순간에 오기도 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혹은 글을 쓰다가도 알게 된다.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33쪽)
매일 보면 익숙해지고 점점 가까운 사이가 된다. 환경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일 보는 사람과는 친한 사이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유가 있어 오르기 시작한 남산은 처음 오를 때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가 됐다. 남산은 아무 말 않지만 남산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좋아하게 된, 즐기는 한 가지가 생긴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일상의 밀도가 높아지고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아무튼, 여름>을 읽으면서 저절로 이 말에 공감했다. 좋아하는 게 많을수록 내 일상도 그럴 거라 기대하게 된다.
글을 쓰며 알았다. 나 역시 좋아하는 게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저 유난히 내성적인 여름 덕후였다는 것을.(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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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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