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 서평

타자치는다람쥐
- 작성일
- 2022.2.21
용서하지 않을 권리
- 글쓴이
- 김태경 저
웨일북
제목: 용서하지 않을 권리
지은이: 김태경
펴낸 곳: 웨일북
1990년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혐오 살인을 저질렀던 연쇄 살인마들의 시기를 지나, 데이트 폭력과 디지털 범죄 등 점점 교활하고 지능화된 범죄 수법에 우리는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뉴스와 시사 프로는 잔혹한 범죄 수법과 범인의 심리 분석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가야 할 유족의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때론 차라리 그 무관심이 나은 경우도 발생한다. 피해자에 관한 악의적인 추측과 비난으로 2차 가해를 가하는 기가 막힌 상황도 속출하는데, 그건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유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하는 행위다. 사회는 말한다. 그만 범인을 용서하라고.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어느 누가 피해자와 유족에게 용서를 논할 수 있는가! 피해자들에겐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임상수사심리학자 김태경 교수의 첫 책 《용서하지 않을 권리》는 그런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분들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지 객관적이고 완곡한 시선으로 분석하며 길을 알려준다.
범죄의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눈을 맞추다.
세월이 흐르면, 끔찍하고 괴로웠던 당시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트라우마 사건에 대한 기억을 잊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강렬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뇌는 그 기억을 덮지 않는다. 김태경 교수는 범죄 피해자들이 그 트라우마를 과거로 흘려보내고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함께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에게 주변에선 어서 잊으라고 재촉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와 웃기라도 하면, 어쩜 저런 일을 당하고도 웃을 수 있냐고 수군거린다. 인간이 지닌 세 치 혀의 사악함에 소름이 돋는 순간이다.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닐지. 한데, 잘 생각해보자. 범죄 피해자들은 어쩌다 그런 몹쓸 일을 당하게 됐을까? 그동안 못되게 살아서? 당할 만한 사람이어서? 아니, 그들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운'이라는 단어로 이 상황을 표현해야 하다니 마음이 너무 불편하지만, 실제로 범죄자들은 그렇게 말한다. 자신이 욕구를 도저히 억누를 수 없을 때, 하필 그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고. 그럼 반대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아직 범죄 피해를 당한 적이 없다면? 그건 당신이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서가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사실만 확실히 인지해도 우리는 범죄 피해자를 어떤 마음과 태도로 대해야 할지 반은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용서는 상대가 청한다고 해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위해 용서를 결심한다고 해서 마음속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심리학책, 인문에세이 《용서하지 않을 권리》 p96 중에서...
우리는 피해자에게 어떤 시선과 태도로 다가가야 할까?
우리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순간,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다 실수하곤 한다. 진심이 담겨 있다 하더라고, 섣부른 위로나 부적절한 말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잠시 입을 다물고, 묵묵히 곁을 지키자. 때론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과 태도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다면, 꼭 알려달라'라는 말이 최선일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막막할 때 내뱉는 '힘내'라는 말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는 더 최악이니 조심하자. 이 책은 상담자의 시점으로 범죄 피해자와 그 피해자를 대하는 주변인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제시한다. 사회를 경악에 빠트린 흉악 범죄 이야기나 범죄자의 심리 분석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로지 범죄의 잔혹함에만 주목하는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며,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한 거의 유일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 번이라도 꼭 읽어봐야 한다. 인간 행동과 사회 환경으로 인해 2차, 3차 가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피해자의 상황을 보면 세상은 더없이 가혹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 애쓰는 이웃을 보며 김태경 교수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선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편 우리 역시 그들이 겪은 일에 귀 기울이려는 선한 의지가 있는 거라고. 그런 선량한 이웃이 매일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작을지언정 분명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마음속에 반짝 켜진 작은 빛 하나. 그 따스한 온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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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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