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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 작성일
- 2022.3.7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 글쓴이
- 정현우 저
웅진지식하우스
슬픔을 읽었다. 사랑이 늘 성공하기만 하는 건 아니고, 때론 아름다움보다 추함에 가깝다는 걸 익히 알고 있음에도 내가 기대했던 건 달랐다. 일상이 피로할수록 현실에 존재치 아니할 법한 무언가를 갈망하기 마련이고, 일종의 도피처로서 사랑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마도 난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었던 듯 싶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충분히 열리지 못한 탓에 저자가 머금은 사랑을 받아들이기까지 적잖이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이 분명했지만 사랑으로 읽히지 않았던 이야기가 마냥 낯설어서 이를 정의할 수 있는 다른 용어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 더디게나마 나의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크게 두 축의 시선이 보였으니 하나는 부모를 대하는 애틋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친구 ‘수’를 향한 감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가난이 뒤따라왔다. 부모는 이를 저자에게 물려주려 들지 않았을 터이나 저자는 늘 부모의 지난날을 헤아렸다. 부모에게도 부모가 있었고, 아마 그 위로도 여러 차례 끊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존재할 터이다. 즉,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됐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 버거울 정도로 뿌리가 깊은 게 가난이었다. 처음부터 부모가 되고자 태어난 존재는 없다. 그의 부모 또한 그러했지만 오늘날에 이르자 부모로서의 삶 외에 남은 게 없었다. 저자는 어머니의 일기를 남몰래 들추며 지금껏 결코 알려 들지 않았던 것들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부모가 부모가 아니었던 시절, 부모 아닌 존재가 부모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스스로에게 대입하는 과정은 어딘지 모르게 시렸다. 혹 이를 예전에도 알았더라면 좋은 자녀가 될 수 있었을까. 가정이 현실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단 걸 잘 알아서인지 나에게는 그가 느꼈을 후회보다 가난으로 인한 무게가 더욱 막중하게 느껴졌다. 등단 연도로 추측컨데 많아도 내 연배일 텐데, 그는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가난을 체감하며 성장했다. 또래와 아마도 많이 상이했을 처지로 인해 정을 붙이기 힘들었기에 고양이 묘묘에 대신 사랑을 쏟는 순간이 잦았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까. 제 편이 단 하나도 없어 외로움에 한없이 떨어야 하는 이들에 비하면 나은 처지라고,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무책임한 말을 입안에 담고 웅얼거려본다. 이 역시도 사랑일 거라고, 사랑하는 건 사랑받는 거보다 행복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기를 바란다고.
온전히 그가 짊어져야 할 일은 아니지만 수의 죽음에 대해 그는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이따금씩 내비친 수의 외로움을 외면했다는 죄책감. 하지만 누구라도 그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죽음은 쉬이 입에 담을 수 있는 소재가 아니어서,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무언가여서. 저자는 계속해서 수에게 속삭인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이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안에 가깝다. 수가 떠난 건 오래 전이지만 아직 자신은 수를 보내주지 못하겠어서, 좀 더 사랑해주었어야 마땅한 이의 이름을 반복해 부른다.
궁극적으로 그의 모든 시선은 사라지는 것들을 향해 있었다. 부모는 끊임없이 나이 들어 언젠가는 소멸할 존재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고아로서 위태로이 현재를 버티는 중이다. 수는 저자로선 알지 못하는 저 세상에 이미 속해 있다. 윤동주가 읊었던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언지, 그는 수를 떠올리는 순간 배울 수 있지만 아직은 이를 애써 거부하는 모양새다. 수가 없다는 건 그리 쉬이 받아들일 수 없다. 잠시나마 그가 곁을 내어 주었던 몇몇 생명체들과 더불어, 언젠가는 그 역시도 사라지는 존재가 될 것이다. 사라지는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걷는 자신 또한 긍휼히 여기는 게 가능하다. 세상 모든 존재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기를. 내가 흩어진 이후에도 사랑만은 이 세상에 남기를.
묘한 잔상이 내게 남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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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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