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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3nia
- 작성일
- 2022.3.21
구의 증명
- 글쓴이
- 최진영 저
은행나무
그 사람을 알기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 선입견을 먼저 갖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에서 형성되는 선입견은 대부분 안 좋은 면으로, 문학에서 형성되는 선입견은 대부분 좋은 면으로 머리에 인식됐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입력봉사를 위한 책으로 박민정 작가의 산문집 <잊지 않음>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는데 최진영 작가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 멈추었고 <구의 증명>을 구입하게 되었다. 대출이 아니라 구입이다. 작가들은 모를 거다. 나에게 구입이 어떤 의미인지.
최진영은 내게 뜨거운 감자 한 알을 손에 쥐고 미소 지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쥐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해 저글링이나 하는 나와 다르게 그녀는 손바닥 피부가 다 벗겨질 때까지 그것을 움켜쥐고 가만히 견디는 사람이다. 나는 내 상상 속 이러한 그녀의 모습이 못 견디게 좋았다. - <잊지 않음, p42>
한 끼를 때우는 일은 부차적인 일이고 우울해도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우울에 익숙해진 사람임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적지 않게 당황했을 것 같다. 박민정 작가의 말처럼, 나라면 저글링이나 하고 있을 그런 얘기를 가만히 쥐고 있다. 뜨겁거나 피부가 벗겨지는 건 부차적인 일이라는 듯, 쥐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연인들이 있다는 걸 최진영 작가는 알고 있어서다. 서로를 먹는 것 외엔 사랑할 다른 방법이 없는 연인들.
작가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했길래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이 소설에 비하면 아프지 않은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랑을 했던 나는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랑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소설을 절대 써볼 수 없음에 나를 비껴간 불행들을 원망해야 하는가. 사람을 먹을 일이 없었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번 읽고 또 읽는다.
이 책이라도 먹겠다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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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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