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랑의 파란

차해완
- 작성일
- 2022.3.22
이방인
- 글쓴이
- 알베르 까뮈 저
새움
영어통역학을 전공한 지 올해로 사 년째다. 사실 통번역학은 그 언어에 얼마나 능숙한지가 관건이라 교육과정에서 이렇다할 번역의 특징이나 기술은 배우지 않았다. 다만 많은 글을 접하고 직접 번역하는 과정에서 글을 보는 눈이 늘었다. 부모님께서 어릴 적 큰 맘 먹고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에 손이 가지 않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 맥락 없이 끊어지는 문장이나, 번역투 특유의 단조로운 문장들이 글의 몰입에 방해가 됐다. 그래서 이미 익히 들어온 '이방인'이라는 작품이 새롭게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관심이 갔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이번 서평을 쓰기 위해 책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했다. 그리고 이런 평을 내렸다. 아주 잘 번역되었다.
물론 나는 아직 학부생이고, 번역학 자체에 대해선 아마추어 수준도 못된다. 어쨌거나 나의 전공은 영어에 중점이 맞춰져 있고, 이 글은 불어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상하고 잘 검열된 평가라기보단 가볍게 얹는 말 정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1) 오역에 대한 정정
새로운 번역에 중점을 둔 책인 만큼 오역에 대해선 확실하게 교정했다. 또, 오역이지만 너무 오래 사용되어 관형어처럼 굳어진 경우엔 우리에게 익숙한 번역을 사용하지만 거기에 대한 역자의 말을 상세히 적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을 읽지 않았어도 나름 책 좀 읽은 사람들은 알 만한 문장이다. 이 구절은 인터넷에 떠도는 '첫 문장이 인상적인 소설' 같은 게시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역자는 이방인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알려진 이 구절에 대해 오역이라고 정확히 짚고 있다. 이게 왜 오역인지 우리가 잘 모르는 불어의 원형과 해석을 함께 적어 설득력을 높였다. 독자들의 흐름을 지키기 위해 익숙한 원 번역을 사용하되 오역에 대한 확실한 피드백이 좋았다. 비로소 작품을 제대로 읽는 기분이었다.
2) 문장의 흐름을 고려하는 문체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 번역투가 느껴진다. 아마 대충 읽고서는 이게 왜 매끄러운 문체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한국인이 쓴 문장에 익숙해진 탓이다.
기존에 읽은 다른 영미 소설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이런 흐름이다.
'오늘이 바로 토요일이었다. 사장은 당연히 내가 일요일까지 쉬게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엄마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어제 치른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무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사장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적고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문장이 길어질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말만큼 끝어미가 다양한 언어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보통의 번역은 정석대로 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문체를 사용한다. 최대한 말을 단조롭게 줄인다. 뉘앙스 전달이 덜 되더라도 오역의 가능성을 낮추려는 목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나 '~터였다.' '~바이다.' '~하리라'와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이 빠진다면 글에 어쩐지 허전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식 어미 처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만일 이 책이 이 번역본을 통해 처음 한국에 나오는 것이라면 한국식으로 어미를 처리한 게 독단적이고 무지한 행동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방인'은 이미 여러 출판사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딱딱하게 적힌 번역본의 내용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역자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익히 알려진 작품에 대해선 조금 더 가능성을 열어놓고 맛깔나게 읽을 자격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역에 대한 분명한 교정과 매끄럽고 현장감을 살린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원문은 워낙 유명한 책이니 굳이 말을 얹지 않을 생각이다. 실존주의의 대표로 거론되는 이 책은 아직까지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는 사상에 의거해 결국 인간은 목적을 갖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점과 인간이 죽음을 깨달음으로써 실존을 깨닫는다는 점 등이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철학적 사유를 위한 책은 이왕이면 매끄럽고 정확하게 번역된 책이 좋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독서를 한 것 같아 기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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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