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누의 서재

시누시누
- 작성일
- 2022.4.30
오리진
- 글쓴이
- 루이스 다트넬 저
흐름출판
<총, 균, 쇠>에서 대륙의 모양이 인류의 발전에 미치는 매커니즘을 처음으로 조명했다. <총, 균, 쇠>는 인류가 역사시대 속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때로는 멸망하는지를 연구하는 새 지평을 열게 되었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피엔스>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을 수 있는 믿음, 어쩌면 능력이 인간을 이토록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오리진>은 인류의 역사를 뒤쫓는 또 한편의 대서사이다. 다만 이번에는 땅 위의 존재로부터 시간을 추적하지 않는다. 되려 땅 속의 존재. 지구의 깊숙한 맨틀과 지각의 거대한 불덩어리에서 시작되는 역사를 탐구한다.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만들어지고, 다시 수십 억 년의 시간이 흘러 우주로부터 나온 수많은 먼지가 뭉쳐 항성과 행성을 이루었을 때. 그 먼지의 소용돌이가 오늘날 땅 속의 무수한 물질로 변화할지 누가 알았을까.
<오리진>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즉 지질학의 관점에서 인류를 탐구하는 색다른 책이었다.
어쩌면 <총, 균, 쇠>에서 다루었던 대륙의 모양 또한 지질학적인 기반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태초의 거대한 판게아 대륙이 점차 그 아래의 멘틀의 대류에 의해 이동하며 현재의 대륙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대륙의 동서 길이와 남북 길이에 의한 기후 차이, 그로 인한 재배 가능 작물의 변화 또한 결국 지질학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설명된다. '땅'으로 인한 기후 차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황하 문명에서 밀과 쌀을 재배하는 것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험준한 지형은 당시 아프리카 초원을 살아가던 인류의 옛 조상들을 분화시키기에 이른다. 보다 원시의 모습에 가까웠던 그 존재들이 가까스로 산과 계곡을 지나 호수에 정착했을 때, 호수의 수위가 변화한 것은 그들이 다양한 작물에 적응하게 만들었다.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이는 결국 보다 큰 뇌 용량을 지닌 존재로의 진화를 이끌어 냈다. 여기에는 동아프리카 열곡을 다른 맹수들은 쉽사리 드나들지 못함으로써 우리의 선조들이 보호 받을 수 있었던 까닭도 크다.
'땅'의 존재로 인한 고립은 역사시대에 이르러서도 누군가의 역사에는 큰 영향을 준다. 프랑스와 좁은 바다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영국인들이 바로 그 대상이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위에 놓여 있던 구름다리처럼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던 육지에는 간빙기와 빙하기가 반복되며 점차 엄청난 양의 물이 고익 된다. 거대한 호수는 결국 붕괴되어 꽤나 길었던 그 '구름다리'를 마침내 끊어버리게 되었고 영국은 스페인이 한창 형님 행세를 할 때에도 별다른 침략없이 조용히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만약 도버해협이 38km보다 조금 더 길거나 짧았다면, 아니 영국과 프랑스가 연결되어 있었다면 그 옛날의 대영 제국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누가 과연 이러한 생각을 하겠냐 물을 수 있지만, 그렇기에 지질학이라는 색다른 학문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무척 미묘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동의 사막 국가를 황금의 땅으로 만들어준 존재, 검은 물.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화석 연료는 철저하게 지질학적 움직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석유 이전에 인류의 동력원이었던 석탄은 실제로 '석탄기'라 불리는 지질 시대에 주로 생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같은 석탄기라고 해서 전 세계에 걸쳐 모든 지역에 골고루 석탄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인적 자원만이 살 길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경우 그 흔하다는 석탄마저도 다른 국가에 비해 매장량이 적거나 매장 위치가 불리하지 않은가. 석탄기에 석탄이 많이 만들어진 까닭 또한 지질학에 있다. 당시 대륙의 구조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때문에 적도와 극지방의 열 순환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식물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기후의 한랭함을 불러일으켰다. 석탄이 쌓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느끼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수만 년 전 땅의 움직임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후로 인한 재배 작물의 차이, 재배 작물의 차이로 인한 인구 구조의 차이, 그로 인한 문명의 차이는 다양한 책에서 많이 다뤘기에 조금은 익숙했었다. 하지만 지질학적 구조로 인한 인류의 역사는 낯선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기후 또한 결국 땅과 한 몸을 이루는 것이었다. 지구라트가 지어진 지역의 건조한 기후 또한 수만 년에 걸친 땅의 역사가 만들어낸 것이었고 미국의 흑인 노예들을 피땀 흘리게 만들었던 비옥한 농토와 기후 또한 바다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결국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땅과 올려다 보는 하늘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인간의 삶을 만드는 위대한 자연이었다. <오리진>을 통해 이제껏 모르고 살았던 또 하나의 존재, 땅 밑의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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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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