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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잘하자
- 작성일
- 2022.5.27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 글쓴이
- 제러미 블랙 저
서해문집
영국의 저명한 교수라 해서 살짝 긴장했다.
오리엔탈리즘까지는 아니어도 서구 강대국 중심의 역사관이 묻어날까봐.
이틀 만에 다 읽었는데, 기우였다.
이렇게 균형잡힌 전쟁사학자는 솔직히 처음 본다.
이 책에 한국이 등장하는 곳이 여럿이다(이런 세계적 저술에서는 낯선 장면이다).
맨 처음 나오는 건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출몰한 왜구를 격파하는 장면(145쪽).
아직 기병이 없던 왜군이 고구려의 기병부대에 놀라 패퇴했다는 서술이 나온다.
임진왜란도 자세히 다룬다(233~240쪽).
부산에 상륙해 승승장구하던 왜군이 이순신장군과 의병 게릴라에게 발목이 잡혀 심각한 병참 문제를 겪으며 전세가 바뀐다는 서술은, 익히 우리가 아는 바와 다름없다.
거북선도 자세히 등장하고 이순신장군의 노량해전 전사도 서술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서술도 냉전의 당사자인 미국과 소련-중국 어느 쪽에 편파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다.
제러미 블랙이 30년 가까이 예일대출판부와 협업하며 방대한 내용을 기적적으로 압축했다는 걸 실감했다. 짧으며 깊고 그러면서 골고루 넓다.
요사이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서막인, 2014년 푸틴-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다루는 대목에선 이 책이 얼마나 현재적인지, 그래서 신상을 득템했다는 기쁨까지 맛봤다(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나라 서점에서 파는 전쟁사들은 대개 20년 전에 나온, 그러니까 20세기 판본들이다).
클라우제비츠, 손자, 조미니, 풀러 등 별과 같은 군사사 이론가들을 별도의 한 챕터로 정리해놓은 것도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겐 무엇보다 반가운 보너스다.
그래도 가장 감동적인 건 이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있다.
저자의 결기 같은 게 느껴져서 그대로 옮겨본다.
"덜 서구중심적인 군사사를 쓰고, 비서구 군사 역량의 원시화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지면 배분은 이런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할리우드나 유럽의 시각으로 만든 전쟁영화를 보면서 가진 울분들이 저자의 이 대목에서 녹아내렸다. 서구만이 최고라는 편견은 이제 그만!
과문한 탓이라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 이것저것 검색하며 두세번 더 읽어야겠지만,
그것도 큰 공부가 될 것 같은 예감.
5월 27일 현재. 올해,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알차고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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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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