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들

캡
- 작성일
- 2022.6.26
깨어있는 부모
- 글쓴이
- 셰팔리 차바리 저
나무의마음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한 우리, 부모와 아이의 관계
처음 살아보는 내 삶의 여정에서 문득 아내가 가져온 초음파 사진 속에서는 조그만 생명체가 꼬물거리고 있었고, 어느 가을날, 땅에 내리는 비와 함께 세상에 내려온 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번 생에서 부모란 역할은 처음이라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어리숙하고 불완전한 부모와 함께 아이는 쑥쑥 자랐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의 삶은 끝이 없으니 이제라도 "깨어있는 부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본다.
교도관이란 직업상 범죄자 상담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린 시절에 부모가 이혼하거나, 부가 주취 폭력이 심했다거나 부모의 이유 없는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사연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안정된 가정에서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적어도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았더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된다면 그들로부터 피해를 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부모의 역할은 이런 예에서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이 세상의 부모들은 나와 같이 모두 이번 생에서 처음 부모의 역할을 맡았고, 자신부터 불완전한 상태로 아이를 키우게 된다. 부모가 된다는 건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부모는 자식이라는 새로운 영혼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내면의 공간을 만들기 위하여, 기둥처럼 버티고 있던 자신의 기존 생활방식을 무너뜨려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부모로 산다는 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며 극한의 여정이라서, 우리의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나쁜 모습을 모두 끌어낼 수 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부모에게 아이에 대한 올바른 양육을 강요하면서 아이의 잘못을 모두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에 있다.
대개 부모는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기보다 자기 생각과 기대를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대입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타고난 자기 모습에 충실하게 하려는 좋은 의도를 가졌을 때조차도, 무의식적으로 부모 자신의 목표를 강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에게 고수하는 신념과 가치는 모두 이전에 검증받은 적 없는 것들이며 부모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도 되는 건 오직 아이보다 먼저 인생을 살면서 얻은 깊은 통찰력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무엇보다 먼저 아이는 부모와 다른 독립적인 인격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잘못은 아이에게 있으며, 아이가 부모의 권위를 무시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무의식이 반영된 주관적인 해석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혼자서 고통을 다스리는 데 익숙하지 않으며 오히려 고통이 느껴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것이 더 편하다. 앞서 말한 범죄자들의 어린 시절처럼,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은 종종 부모가 쏟아내는 분노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리 없다.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극복하고 아이를 존중하며 아이와 공감할 수 있는 깨어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아이를 대하기 전에 부모의 마음이 깨어나고 안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혼자 고요히 앉아 자신을 지켜보면서 지금 양육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이로 인한 분노가 과거 무의식에서 시작하는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해를 한 뒤에는 단순히 의식의 흐름대로 기록하는 기계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좋다. 매일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쓰면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아이에 대한 집착이 그저 생각일 뿐이라고 깨닫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홀로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는 것으로도 강화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약간의 거리를 두는 이런 훈련을 통해 아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려는 충동 없이 담담하게 자기의 무의식적인 고통을 경험할 수 있으며,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부모 마음을 안정시키면 이제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의 마음이 안정되고 나면,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이제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의 나직한 트림 소리와 한숨, 부드럽고 유연한 몸과 작은 손톱, 커다란 눈망울이 부모의 시선과 감촉에 닿는 지금, 바로 여기가 유일하게 의미 있는 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 품에 안긴 작은 생명체가 나의 유전자를 갖고 이 세상에 나와서 지금 내 옆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큰 안정감을 준다. 가만히 손가락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품 안에 따뜻함을 느끼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의 매 순간들이 우리에게 무척이나 소중하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곁에서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가 필요하다면 아이들이 먼저 말을 꺼낼 것이다. 부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구나.” 하는 말로 공감해주면 된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를 바라야 한다. 아이는 정말 보이는 모습 그대로이며, 이런 아이에게 부모가 기대하는 다른 모습이었더라면 하고 바라는 것은 가망 없는 바람이다. 가능하면 부모가 겁먹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키우도록 돕는 길이다. 아이들은 병이 들거나 다칠 수도 있고 시원찮은 성적을 받거나 엉망인 상태로 들어올 수도 있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어렵겠지만 때로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불만을 다스리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이 아이의 발달에 무척이나 중요하다. 또한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양육법이 된다.
우리는 아이들의 인생을 조종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인생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나면, 역설적으로 그때부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부모가 평소 아무 조건 없이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아이는 필요할 때 부모에게 다가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느 부모처럼 나 자신도,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았을 때 훈육이란 이름으로 혼내고 때로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으며, 그것이 지금 가장 후회된다. 아이가 성장한 지금은 영유아기 때보다 아이에게 다가가기 더 힘들고 어렵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권리와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는 때로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아이를 이용하는 덫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를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키우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아이를 이용해 자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려 하고, 아이에게 집안의 부당한 역할을 떠맡기는 일도 있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환상을 키우기 위해 아이를 이용하는 부모도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정인이 사건의 양모는 정인이를 입양하여 자기 친자식과 잘 어울리는 그림을 만들어 자기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돋보이고자 했다. 하지만 아이가 이에 따르지 못하자 아이에게 신경질을 내고 결국 한 생명이 꺼져가게 했다. 아이를 자기 삶의 예쁜 그림을 만드는 데 이용하려 한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에고는 우리가 최고의 부모로 보이기를 원하며, 자기가 바라는 모습에 아이가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불안해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로서 우리의 목표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점투성이인 자신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부모의 여정은 부모와 아이 모두가 정신적으로 새로워지는 경험이 될 수 있다. 부모와 아이는 매 순간 교감하고 서로 손을 맞잡고 있지만 각자 자기만의 영적 길 위에서 춤추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에게 올 때는 자신에게 있어야 할 것들을 다 가지고 온다. 아이의 타고난 모습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타고난 모습과 상관없는 기대를 품는 것은 무리수이다. 아이를 독립적 인격으로 생각하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면 우리 부모와 아이가 모두 서로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하루하루가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을날의 비를 타고 온 우리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서 이제 동네 철길 공원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나란히 길을 걷고 있고, 나는 뒤따라가며 그 모습을 바라본다. 철길을 걷는 아이와 엄마의 모습처럼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나란히 걷는 모습, 그것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양육이란 부모가 아이를 상대로 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더불어 경험해나가는 과정이다. 깨어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아이들은 이 세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발견하고 세상의 넘쳐나는 자원을 활용하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아이를 동반자로 보았듯 아이도 세상을 동반자로 보기에 살면서 어려움을 만나도 호기심과 설렘을 느끼고 진지하게 몰입하는 자세로 임한다. 우리가 부모로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실천한다면 아이는 세상에 나아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호기심으로 대하며 무너지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모로서의 나의 삶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책 속의 잘못된 예처럼, 아이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어릴 적 내 마음의 상처를 대물림하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도 쉬이 바뀌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와 내 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아이가 이 책 속의 지혜를 통해 조금이라도 세상의 깨어있는 부모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어느 봄날의 산책에서 바라 본 엄마와 아이의 모습처럼, 나란히 뻗은 철길처럼 서로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의지하는 것이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앞으로 쭉 뻗은 철길처럼, 함께 하는 나와 아이의 관계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이 책을 통해 얻은 "깨어있는 부모"의 모습과 지혜는 아직도 불완전한 부모인 나에게 여전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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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