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동그란세상
- 작성일
- 2022.6.29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글쓴이
- 김영민 저
어크로스
정치적이라는 말을 싫어했던 나는 이 책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정치적 동물의 길이라는 부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서모임(트래블링 솔)의 첫 번째 책이므로 읽어야 했다. 이 책을 선정한 선생님의 의도를 고민하면서 표지의 그림에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 김영민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다. 산문집으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공부란 무엇인가>와 연구서로 <중국 정치사상사>가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그 안팎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정치에 대한 사유를 폭넓게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실질적인 생활의 정치까지 다양하게 설명하고 펼쳐진다. 중간중간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고, 영화, 음악, 드라마까지 다양하게 넘나들며 생각을 이어 간다. 저자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마치 신발을 벗고 전력질주하는 마음으로 책을 마주한다.
미성숙한 인간들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성숙과 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어느덧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버리고 현자의 인자한 독재에 기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권력의 전횡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고 설명한 저자는 파리대왕을 예로 들어 정치의 시작과 끝을 설명한다. 파리대왕의 등장인물이 모두 어린이인 점도 유아적인 미성숙함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한 사람의 민주 시민으로 길러져야 함을 강조했던 김누리 교수의 책과 연결되어 공감이 많이 간 부분이다. 또 현자의 인자한 독재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현자라고 해도, 인자하다고 해도 결국은 독재가 아닌가? 인간의 존엄에 대해 말한 뇌신경 과학자는 뇌의 특성을 들어 설명했다. 뇌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편리성을 추구한다고. 현자라는 좋은 핑계를 대면서 정치에 쏟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이다. 그것이 뇌의 본질에도 맞고 인간의 귀찮음에도 맞는 것이니까. 그러면서 현자가 하는 정치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관심과 에너지를 줄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현자도 시간의 흐름을 감당해 낼 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선의는 시간을 당해내지 못하며 정점에 달했다고 방심해도 좋은 것이 정치는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일상을 관리하여 건강을 챙기는 것처럼 정치도 관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관리가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제도적 장치를 시대에 맞게 소외되는 사람들 없이 만들어 가기 위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정치에 관심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부정적인 정치의 이미지를 통해서 통치자들은 일반인들의 무관심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므로 모든 곳에 정치가 있다. 그 정치를 인정하고 정치적 동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함을 깨닫는 부분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선, 이것이야말로 리더의 핵심 자질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정 욕망에 함몰되어서는 안 되고 대상과 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모자를 사랑하지만 모자를 좇아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몰입의 쾌감 대신 아득한 피로와 슬픔이 있다. 그것이 전체를 생각하는 리더가 치러야 하는 대가다.
사유하는 정치학 교수의 시선으로 정치적 리더에 대한 부분을 읽는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처럼 지금 시대에 이런 정치적 영웅을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얼마나 현재의 정치인들과 괴리감이 생기는 것인지도. 일종의 거울 같은 문장을 통해 리더들을 본다. 모자를 너무 사랑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모자를 갖기 위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국민 주권이라는 허구를 거창한 연설로 포장하고, 깔끔하게 씻고 대중 앞에 나오는 정치적 행동을 한다. 어쩌면 정치인들은 몰입의 쾌감을 버리지 못하고 아득한 피로와 슬픔을 견디지 못하는 것일지도. 정치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몰입하지 못한다는 대가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모두가 환호하고 즐거워할 때 그 장면을 찍어야 하는 촬영기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작은 모임에서조차 소외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을 거스르고 기어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간혹 생겨난다는 저자의 말처럼 간혹 이런 정치 리더들이 생겨나기를 바라본다. 현자의 인자한 독재를 바라듯이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특히 약자는 계약서의 조항보다는 강자의 가변적인 선의에 의존하게 된다.
유사 가족 사회인 우리나라에 대해 말하면서 쓰는 표현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 그려지는 듯한 약자의 삶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모, 고모, 삼촌이 넘쳐 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음식점에서는 거의 모두가 이모를 부른다. 처음 함께 식당에 간 일행을 통해 들었던 이모라는 호칭은 낯설고 이상했다. 그 호칭을 부르는 일생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많은 호칭 중에 이모인가? 뭔가 좀 더 가까운 상태, 저자의 표현대로 유사가족관계를 의미하며 자신을 잘 대우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 들어간 호칭이지 않을까? 남자들은 거의 형, 동생이라고 하는데 저자의 표현이 통쾌하다. ‘내가 모르는 아버지의 아들이 있었던가?’
이렇게 유사가족관계가 난무하는 사회 안에서 약자는 강자의 가변적 선의에 의존한다는 말이 정확하면서도 아프다. 약자는 계약 조항보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강자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슷한 맥락으로 지난해 유행했던 “주라 주라”트로트는 우리의 이런 상황과 마음을 대변했다. “가족은 집에서나 찾으세요. 사장님 입은 닫고 지갑은 벌리세요.” 등의 가사가 모두가 품고 있던 말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강자의 가변적 선의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모양새고 시원한 복수일 테지만 이젠 계층 간 이동이 쉽지 않다. 강자, 약자에 대한 개념도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력은 어디에나 있는 정치처럼 어디에나 있다. 권력을 냉소하는 사람에게도 권력이 있으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버티는 사람에게도 권력은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권력을 인지하고, 강자로서 가변적 선의로 약자를 대하지 않은 자세를 꿈꿔본다. 자녀들에게도 엄마라는 권력을 가변적인 선의로 사용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문장이 되었다.
책의 제목처럼 인간으로 사는 일이 하나의 문제이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하자 인간으로 사는 일의 하나의 문제로 저자는 정치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그만큼 정치가 우리와 밀접한 관계이며 중요하다는 말이겠지. 완전한 자연상태에서 새롭게 정치적 제도를 세팅하고 성숙한 민주주의 인간을 함께 세팅하지 않는 한 완벽한 정치는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부정적인 개념과 시각으로 보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정치에 주체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제법 잘 살 수 있는 인간이 하나의 문제인 정치를 이해하고 공유하고 발전시키면 약자가 강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정치는 편 가르고, 자기 욕심만 채우고,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고 말 바꾸기가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다. 어쩌면 민주주의를 말하고 배우기 전에 먼저 이 책을 통해 정치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정치를 하고자 하는 순수한 젊은이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개념과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일상에서 모든 것이 정치임을 인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행간의 의미까지 깊이 있게 깨닫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더라도 괜찮다. 자기만의 이해와 감상을 하면 되는 거니까. 모르는 것이 잘못은 아니니까.
끝으로 정치를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책의 비유를 적는다.
정치는 과일 수레를 엎어버리고 싶은 원한이 애당초 생기지 않게 하는 일, 쏟아져 굴러다니는 사과를 차근차근 주워 담는 일, 그리고 제풀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과들 간의 균형을 잘 잡는 일이다. 비록 엎어진 수레를 방관하거나 과일을 밟고 다니거나 등 뒤에서 과일을 깎아 먹거나 굴러다니는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이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