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읽기(2022년)

블루
- 작성일
- 2022.6.30
노랜드
- 글쓴이
- 천선란 저
한겨레출판
분명 소설집이라고 칭하였으나 나는 하나의 주제로 된 각자의 인물을 말하는 장편으로 읽혔다. 하나의 이야기는 다른 소설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듯했고 작가가 추구한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공통된 단어의 언급이 그렇다. 우주와 외계 생명체, 지구. 우리가 이 세계에서 아주 잠시 머물 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광활한 우주에서 아주 찰나의 시간만 스칠 뿐이라는 것을.
인간 사회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거 같다. 지금도 땅을 찾겠다는 나라와 지키려는 자의 전쟁 중이다. 지구는 잠시 평화로웠을 뿐,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목숨을 빼앗는다. 잠시 머물다 갈 인간들이 이 세계에 영원히 살 것처럼 싸운다.
지구에서 머무는 인간들에게 지구 바깥세상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다. 인간을 죽이고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하지만 인간은 전쟁을 겪어온 경험으로 맞서 싸운다. 늑대의 유전자를 주입한 인간들은 크람푸스를 제거했고, 크람푸스가 사라진 세계에서 그들은 보통의 인간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었으므로 우주 밖으로 내쳐지게 되었다.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과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반인류로 여겨져 두려웠으리라.
지구의 침략자는 크람푸스 뿐만 아니라 바키타도 있다. 지구의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바키타는 인공화합물 뿐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문명의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인간들은 멸망한 지구에서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향한다. 이 부분에서는 인류가 일회용품을 마구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것을 꼬집는 것만 같다. 지구가 이렇게 일회용품 쓰레기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먹히고 말 것 같다는 것을 경고하는 거 말이다. 우리가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질문을 건넨다.
옐로스톤 폭발 이후 화산재에 뒤덮인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검은 연기로 가득한 지구에서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 인간들은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냉동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은 우주선에서 저 멀리 푸른 점으로 보일 지구를 안타깝게 그려 볼 뿐이리라. 직접 다가가지도,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받지도 못할 것이다.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은 또 다른 지구를 찾아 정착할 수 있을까.
소설에서 안개는 중요한 단서다. 지구가 멸망해가는, 한 마을이 사라져가는 매개체다.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안개 속에서 죽은 자들이 서로를 물어뜯는다. 죽음의 다른 변형이다. 어떤 외계 생명체는 안개를 피우며 조용히 다가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한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때로는 죽음 이후의 것을 말한다. 인간이 마음을 열었을 때 그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내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그들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해줄 뿐이다.
평소 접하지 않은 내용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미래의 인간 세계를 마주한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혼합된 세계. 우리가 머무는 세상 밖이 자기가 살아야 할 세계라고 여기는 거다. 지금 현재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인간 세상으로 들어온 과거 텍스트의 존재와 세상 밖으로 나간, 서로의 존재를 교체하는 세계. 두 세계의 접점은 우리의 심연 그 깊은 바다의 것인지도 모른다. 다분히 영화적이긴 하다. 그렇지만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을 연이어 떠나보내게 되면 마음은 주는 것이 아니라 보관해두는 것, 기댄다는 건 그것이 사라졌을 때 넘어진다는 것. 그렇게 생각했다. 떠난다는 건 붙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53페이지, 「흰 밤과 푸른 달」 중에서)
우리가 사는 지금이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찰나의 시간을 지날 뿐이다. 우주, 죽음, 소멸. 이 단어를 이루는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한 유리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실의 고통을 넘어 살고자 한다. 살아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살길 바란다. 그 마음이 중요하지 않겠나. 나의 존재를 실감하는 때이기도 하며 삶의 원동력이 되는 단어. ‘살아 있다’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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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